타인과 함께 식사하는 것은 대표적인 사회적 행동이지만, 오롯이 자신만을 마주하는 ‘혼자의 식탁’은 스스로가 혼자일 때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한 혼밥 문화는 당시에 우리가 바라본 욕망이 무엇인지를 드러낸다.
수렵과 채집이 먹거리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선사시대에는 같이 사냥하고 식량을 구해서 나누어 먹었다. 무리 지어 생활하는 것이 추위와 배고픔, 동물들의 공격이나 폭풍우 등의 자연재해에 대응하기에는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수렵 채집을 하는 파라과이의 원시 부족 아체족을 보면 힘들게 잡은 고기를 자기 식구끼리만 먹지 않고, 항상 무리의 전체 구성원들과 한자리에 둘러앉아 공평하게 나누어 먹는다. 그래야 자신이 사냥에 실패했을 때 주위 사람 또한 먹을 것을 나누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나눔이 최고의 생존 보험인 셈이다.
"혼자 먹는 음식은 맛이 없다"? 1980년대에 나온 책을 보면,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해야 소화도 잘된다면서 밥 먹을 때 침묵하는 전통문화를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을 정도로 공동 식사를 중요시했기에 혼밥은 ‘외톨이의 식사’ 혹은 ‘젊은 세대의 반항’ 정도로 취급되었다. 그러다 팬데믹 시기에 감염병 예방 차원에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면서 비로소 당당한 혼밥의 풍경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혼자 밥이나 술을 먹는 문화가 비교적 일찍 퍼져 있던 서양문화에서는 ‘혼자 먹을 때 꼭 더 잘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덜하다. 유럽에서는 50% 이상의 인구가 점심을 샌드위치로 해결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 지금까지도 산업이 발달한 지역은 혼밥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자아’에 집중한 것이 아닌, 짬날 때 빠르게 식사를 해결하는 것에 중점이 있는 ‘생업’에 맞춰진 혼밥의 필요는 지금까지도 기사식당과 같은 모습으로 남아있다. 중고생 30%가 학원 앞 편의점에서 혼밥을 한다는 것도 유사한 맥락.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의 혼밥과 혼술 문화는 좀 더 적극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같이 먹을 때 즐길 수 없는 것들’을 혼자 먹을 때 누리고 싶어한다. 예컨대 상사와의 식사 자리에서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시키지 못하는 사람들, 그룹 단위로 몰려다닐 때에는 ‘다른 사람이 먹는 대로’ 시키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 ‘혼밥’과 ‘혼술’ 속에서 심리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눈치를 보는 문화, 나이나 직급에 따른 차별이 심한 문화에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말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하지만 혼자 먹을 땐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으니, 마음껏 혼자 먹고 싶은 것, 주변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 ‘나만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식사를 통해 관계를 맺고 사회적 역할을 정의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한국의 식문화. 식사 동반자의 서열을 재빨리 측정해서 대응해야 하는 피로도 높은 식사 자리는 많은 현대인들이 혼밥을 선호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공동 식사는 여전히 대단히 공식적이고 계층적인 사회 체계의 불평등을 나타내기에 혼밥 행위 자체가 억압적인 전통으로부터의 자유이기도 하다.
공동 식사를 사회적으로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근현대 이후 한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만 보편적인 비주류 현상이다. 이런 문화적 기반에서 생겨난 우리나라의 혼밥 문화의 특징은 ‘이왕 혼자 밥을 먹는다면, 반드시 맛있는 것을 먹겠다’는 열망이 유난히 강하다는 점. 사람들은 ‘같이 먹을 때 즐길 수 없는 것들’을 혼자 먹을 때 누리고 싶어한다. 공동 식사에서 희생해야 했던 개인의 취향을 혼밥을 통해 맘껏 발산하며 심리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다. 점점 많은 혼밥 식당과 기업들이 ‘혼밥 경제’를 지원하며 1인용 주방용품, 소포장 식재료 등을 제공하고 있고 우리의 혼밥은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창작 무용극인 <속삭임의 식탁>의 프롤로그로서 직접 작업했던 '혼밥의 역사'의 글을 리메이크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