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 혼취미③ 반려식물과 함께 자라는 1인 가구의 초록 루틴
꽃시장을 구경하다가 발견한 어여쁘고 작은 화분. 파스텔 컬러가 섞인 그 조그만 꽃의 이름을 보고 어머나! 작은 탄성이 터졌다. “댄스파티 수국”?
왈츠를 추는 여인들의 드레스 자락을 내려다본 것 같은 아름다움으로 붙인 이름이겠으나, 나는 엉뚱하게도 다른 장면을 떠올렸다. 왠지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가 배경음악으로 깔리고, 등산복 차림의 중년들이 어깨춤을 추는 한국식 댄스파티 장면을 상상해 버린 것이다. ‘꽃 이름이 참 귀엽네’ 싶어서 살짝 웃음까지 터져 나오니, 나는 그 수국을 집에 데려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작은 화분 앞을 지날 때마다 흐뭇하게 “땐스!”를 추는 나를 보며, 식물이 일상에 어떤 활력을 줄 수 있는지 실감했다. 하지만 동거는 오래가지 않았다. 관심이 부족했고, 돌보는 법을 몰랐던 나는 어느 날 말라버린 화분 앞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경력 있는 ‘식집사’였다면 댄스파티는 좀 더 오래 이어졌을까. 마른 장작이 되어버린 화분을 수습하는 식집사의 심정은 참담하다.
하지만 다행히, 초보에게도 친절한 식물들은 분명히 있다. 스투키나 산세베리아처럼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는 식물, 햇빛이 부족한 집에서도 잘 자라는 스킨답서스, 그리고 허브류인 로즈메리나 바질처럼 먹고 기를 수 있는 실용적인 식물까지. 흙과 분갈이가 부담스럽다면 수경재배 키트나 ‘플랜테리어 패키지’를 활용하는 것도 좋다. 관심을 갖는 순간부터 식물은 내 곁의 생명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식물에 이름을 지어준 적 있나요?
재택근무의 영향으로 시작해서 MZ세대의 반 이상(56.1%, 2022 조사)이 현재 반려식물을 키우고 있다던데, 내 경우에는 ‘키우고 있다’기 보다는 ‘죽어가는 걸 지켜보고 있다’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군. 고작 주말 동안 집을 비웠을 뿐인데 시들시들 바삭바삭 말라버린 화분. 식물들이 나약한 걸까 아니면 내가 문제인 걸까. 내가 세상에서 가장 못하는 일이 ‘무언가를 키우는 일’이 아닐까 싶어 자책까지 하게 된다. 최근에는 ‘반려식물 클리닉’도 등장했다던데, 아픈 식물들을 데려가서 진찰, 진료를 받는 심정을 공감하게 됐다.
최근에는 식물에 이름을 붙이고 가족처럼 돌보는 ‘패밀리플랜트’ 문화도 확산되고 있다. SNS와 유튜브에서 ‘식집사’들이 식물 키우는 팁, 병해충 관리법, 분갈이 노하우를 공유하며 서로의 반려식물을 자랑하고, 지역별, 관심사별 식집사들이 모인 카카오톡 오픈채팅방도 활발하다. 단순히 화분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 교감의 대상으로 여기는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고, 말은 없지만 존재감 있는 생명과의 교류가 마음의 공백을 채운다. 식물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우울증 완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 반려식물이 급부상한 기저엔 피로감과 우울증·외로움이란 애달픈 사회적 코드가 깔려있다는 의견에 씁쓸한 마음이 든다.
식물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다
혼자 살다 보면 가끔 놓치게 되는 것들이 있다. 바쁜 하루를 버티는 데만 집중하다가 어느새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흐릿해지기도 한다. 처음 식물을 들였을 때도 그랬다. 무언가를 키운다는 생각보다는 충동구매에 가까웠다. 그냥 예뻐서 샀고, 그저 놓아두었다. 물 주는 것을 자주 잊었고, 빛을 쬐어주는 일에도 무심했다. 나는 식물에게만 무심했을까, 혼자 살면서 ‘나’를 돌보는 일조차 종종 건너뛰고 있지는 않았을까.
식물이 내 곁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조금씩 리듬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도 하루 중 몇 분은 그 앞에 서게 되고, 잎의 색을 확인하거나 흙의 상태를 살피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식물의 삶, 식물의 루틴을 따라가다 보니 내게도 루틴이라는 것이 생긴다. 이제는 ‘키운다’기보다 ‘함께 살아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듯하다.
식물은 은근하고도 정확한 생명이다. 말은 없지만, 변화는 분명하다. 빛이 부족하면 잎이 늘어지고, 물을 너무 주면 뿌리가 썩는다. 처음엔 시들어가는 모습에 당황했고, 작지만 생명인 존재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나는 이 작은 생명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에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그 질문은 자연스럽게 내 삶으로 이어졌다. 요즘 나는 잘 먹고 있는가, 제때 자고 있는가, 쉴 땐 제대로 쉬고 있는가. 해가 잘 드는 창가에 식물을 옮기듯, 나도 내 마음이 따뜻해지는 곳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건 완벽하게 키우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갖고 지속하는 일이다. 매일 조금씩 살피고, 물을 건네고, 이름을 불러주며 나는 초록빛 생명과 함께 자라고 있다. 빠르지는 않지만 확실한 성장. 그 초록의 루틴 속에서 나는 매일 조금씩 다정한 사람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