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시대의 새로운 면역력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이 확산되며 매시간 약 100명이 관련 질병으로 사망한다는 결과가 발표되고,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6월, 외로움을 새로운 ‘공중보건 위기’로 규정했다. 다른 사람과의 연결을 핵심으로 하는 ‘사회적 건강’의 측면은 우리 건강의 핵심 부분임에도 너무 오랜 시간 무시돼왔다는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나는 시대, ‘외로움=질병’이라는 프레임이 고정되면 오히려 악영향이 있을까 하는 우려가 생기기도 한다. 이런 인식이 자칫, 혼삶이라는 생활 형태를 택한 1인 가구들을 ‘생존 취약 계층’으로 일반화할 수도 있다. ‘외로움은 나쁜 것, 혼자는 위험한 것’이라는 전제를 강화할수록 우리는 외로움을 피하려는 데 에너지를 쓰고, 역으로 자연스러운 연결의 능력을 잃기도 하지 않는가.
외로움을 ‘질병’으로만 정의하면 우리는 스스로를 환자처럼 다루게 된다. 그러나 외로움은 결핍이 아니라 신호에 가깝다. 몸이 피로하면 휴식을 요구하듯, 마음이 외로울 때는 ‘연결’과 ‘돌봄’을 필요로 한다는 메시지다. 병처럼 숨기거나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감지하고 대응할 줄 아는 감정의 감각이다. 외로움을 제대로 인지하거나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외로움, 혼자라서 생기는 게 아니다
WHO의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이 낮은 국가일수록 외로움을 느끼는 비율이 두 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외로움은 단순히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삶의 조건이 불안정할수록’ 심해진다는 것인가. 이런 관점에서 보면, 외로움을 개인의 성격이나 관계 능력의 문제에서 기인한 결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혼자라서 외로운 게 아니라, 혼자일 때 버틸 구조가 없어서 외로운 것이다.
외로움은 제거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신 ‘다루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혼삶력, 즉 혼자 살아가는 힘이다. 혼삶력은 독립적인 생활 기술이 아니라, 감정의 균형을 조율하고 외로움에 대응하는 자기 인식의 능력이다.
외로움을 느낄 때 “나는 지금 어떤 연결을 갈망하고 있지?”, “누구에게 인정받고 싶은 걸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사람은 이미 혼삶력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자신의 감정을 관찰하고, 타인의 부재 속에서도 자신을 돌보는 능력. 이것이 외로움에 대한 진짜 면역이다.
혼자 사는 시대의 새로운 면역력
“비 맞으면 감기 걸려”, “이불 덮고 자”, “따뜻한 물 마셔”, “비타민C가 좋대”
우리는 감기를 예방하기 위해 어떤 생활 습관이 필요한지도 알고, 증상을 완화하고 회복하기 위한 방법도 안다. 외로움이라는 질병에 대해서는 어떤가. 외로움은 질병이기 이전에 명확한 ‘증상’이기도 하다. 그 질병의 원인, 예방법을 모르면 대처하고 치료하는 것도 서투르다. 심지어 외로움이라는 증상 자체를 가볍게 여기거나 회피하기도 한다.
혼삶력은 외로움에 대한 면역 체계라고 할 수 있다. 면역이란 병이 아예 오지 않게 막는 것이 아니라, 병이 와도 무너지지 않게 만드는 힘이다. 혼삶력 역시 외로움을 없애는 게 아니라, 다가오는 외로움을 견뎌내고 회복하는 힘이다.
슬프게도, 평생 감기를 완벽하게 피하며 살기는 어렵다. 다행히도, 감기에 한 번 걸리면 몸은 고열과 피로로 괴롭지만, 그 과정을 지나며 스스로 면역을 만들어낸다. 외로움도 이와 같다. 처음엔 낯설고 아픈 감정이지만, 그 속에서 버티고 회복하는 힘이 생긴다.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움 대신 관찰의 시간으로 바꾸면 마음의 면역 체계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타인에게서 얻던 안정 대신 나로부터 오는 회복력을 배우게 되고, 그때 비로소 ‘혼삶력’이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