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꿀잠 Apr 05. 2022

길을 잃은 봄날에

봄에는 길을 잃자

봄은 따뜻하고 그늘진 곳이 없어 길을 잃어도 좋은 계절이다.

오늘도 정해진 목적지로 가던 중 융통성 있는 내비게이션이 본인이 가고 싶은 곳으로 잘못 안내하는 바람에 한 번도 안 가본 동네에 들르게 됐다.

적당히 차를 세우고 벚꽃이 만개한 곳으로 다가가니 보이지 않는 저 멀리까지 산책로가 흡족할 만큼 펼쳐져 있다.

사르르 바람이 불자 벚꽃이 여기저기 흩날려 그 순간을 담고 싶은 두 눈이 바쁘다.

벤치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 고요할 만하면 또다시 우수수 흩날리는 꽃잎들을 한없이 보고 천천히 느껴본다.

언뜻 눈을 들었는데 엄마와 걸어가는 아이도 벤치에서 쉬는 할머니도 머리에 하나씩 벚꽃을 붙이고 있다.

저도 모르게 하늘에서 내리는 축복을 저마다 얹고 가는 것이다.

집에 돌아온 뒤에도 봄 한가운데에서 느낀 따스함이 남아 아직도 마음에 훈기가 돈다.

오늘은 길을 잃어서 더 좋은 날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젊음이 질 무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