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 가면 짧은 다리로 열심히 코를 킁킁거리며 걷는 강아지에게 눈길이 간다. 캄캄한 밤 으슥한 골목에서 아슬아슬 끊어질 듯 들리는 고양이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발밑에 개미,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새, 풀과 나무 뒤로 숨어있는 그림자로 시선이 꽂힌다. 앞서 말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좋다. 사람과 작은 친구들. 사랑했던 기억을 쓰는 사람과, 사랑을 아는 작은 친구들.
짧게는 5일, 길게는 15년을 작은 친구들과 나는 서로의 숨과 온기를 나누며 살았다. 동물과 함께 사는 삶은, 자발적으로 생명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경우와 인연이라 여길 수밖에 없는 우연의 연속이 가능케 했다.
동물권이라는 것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동물에 관한 전공이나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아닌 내가 그들과의 기억을 떠올리며 굳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귀엽다고 어떤 책임이 따르는지 살펴보지 않고, 무작정 들이고 유기하거나 파양 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돌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엉켜있는 그들과의 추억을 잘 풀어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서. 또는 나와 같은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이 기록이 위로와 즐거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러 이유로 쓰게 되었으나 정리된 글이 하나 둘 늘어갈 때마다 왜 시작하게 되었는지가 드러나고 있다.
뒤죽박죽 엉망인 기억 속에 살고 있는 그들에 대한 그리움.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했는가 하는 자기반성을 거쳐 용서받고 화해하고 싶은 나의 바람. 그렇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고 싶었다는 것.
주제보다 누가 읽을 것인가? 에 더 집중해서 글을 써야 한다는 기준에 턱없이 부족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내어놓기가 두렵다. 유익하고 본보기가 될 만한 이야기들과 비교해 부끄러운 글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괜찮지 않을까? 들려주지 않으면 모를 일을 써도 되지 않을까?
그들과 나의 이야기가 어떻게 읽는 이에게 가닿고 작용할지 알 수 없지만 작은 기대를 한다. 자신이 겪은 이별과 지금 함께 지내는 일상을 나누고 싶어 내게 말을 걸어오기를, 나처럼 미처 하지 못한 말을 누군가에게 전할 용기가 생겨났다고 전해오기를. 어떤 식으로든 내 경험이 독자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작은 친구와 함께 살 준비를 하는, 현재 함께 살고 있는, 상실과 후회로 오래 괴로웠을 누군가에게 말이다.
*글/그림 제가 다 작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