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생활
집에 반려동물이 살게 된 경로는 동생이 원해서 바우(강아지)와 호두(고양이)를 데려올 때 펫숍에 돈을 줬던 걸 제외하면 나머지는 다 길에서 구조했거나 누군가에 의해 맡겨졌거나, 소개받아 함께하게 된 경우였다.
미소는 그중 누군가에 의해 맡겨졌다 오래도록 우리 집에서 한식구로 지내게 된 강아지였는데 나이가 정확하지 않았다. 이유는 사찰에 온 어떤 이가 유기하고 간 후, 우리 동네 슈퍼 아주머니의 눈에 띄어 그 집으로 가게 되었고, 안쓰러워 데려오긴 했으나 키울 형편이 되지 않았던 아주머니가 여기저기 키울 사람을 알아보던 중 우리 집에 오게 된 것이라 언제 태어났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워낙 강아지를 좋아하니 다른 사람 구해질 때까지 우리가 잠시 맡아보겠다는 엄마의 말에 슈퍼 아주머니는 우리 집으로 미소를 보내면서 며칠은 우셨을지도 모르겠다.
하얀 털에 앙증맞은 눈과 윤기 나는 역삼각형 검정코, 작은 체구의 말티즈.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고 이리 오라고 해도 못 들은 척 우리 집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가 미리 준비해 둔 배변패드에 소변을 보고 구석에 자리 잡던 미소와의 첫 대면.
얼마 있다 헤어질 수 있으니까 너무 마음 주지 말자하며 애써 모른 척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곱절로 불어나는 애정을 어찌할 수 없어 동생과 나는 부모님께 떼를 썼고 결국 우리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풍족하지 않지만 생명을 책임지는 일에 자주 나서는 우리와 함께 미소는 살게 되었다. 사료와 예방 접종 비용, 철마다 드는 병원비, 배변 패드, 장난감 외에 산책 리드줄과 쿠션 등 부수적으로 들어가는 돈이 부담되는 형편이었으나 어떤 식으로든 충당하며 함께했다.
항상 기분 좋은 일만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미소'라고 이름 지어주었고 아빠는 이왕이면 성까지 붙여주라고 별명으로 '정미소'라고 부르셨다. 아빠만의 유머 코드는 늘 나와 맞지 않았지만 이때는 웃겼다.
미소는 나비가 떠난 빈자리를 채워주는 존재였고, 성격이 부드러운 편은 아니었지만 나는 약간은 불친절한, 그 까칠한 면이 마음에 들었다. 정말 똑똑해서 배변 실수 한번 한 적 없고 가끔 사람이 먹는 음식을 탐내다가 상에서 떨어진 치킨 조각을 입에 물고 도망갈 때 뭐라고 혼내면 입에 있던 것을 "퉤-" 하고 뱉으며 노려보기도 했는데 '치사해서 안 먹어.'라고 말하는 듯한 그 태도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식구 중 유독 나를 따르고, 옆에서 같이 잠들고 깨는 시간이 쌓여갔다. 아무도 믿지 않을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내가 슬프거나 눈물 흘리면 앞발로 슥슥 긁으며 위로하고,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쳐다봐 주곤 했던 미소는 내 소중한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너밖에 없어.'라는 말을 수없이 주고받던.
길어지면 엉키기도 하고, 물릴까 봐 정해진 날짜보다 늦게 목욕시키면 기름기가 줄줄 흐르던 미소의 털을 나는 좋아했는데 손가락으로 살살 돌리면 마음의 불안이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에는 모든 고민들이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미소의 낮은 숨소리와 손에 닿는 털의 감촉에만 집중했다.
미소는 사는 동안 새끼를 3마리 낳았고, 나는 그 과정을 지켜봤다. 진통을 하고 양수가 터진 순간부터 병원에서 제왕절개를 하고 회복하기까지 내가 옆에 있었고 새끼를 돌보는 일도 같이했다.
갓 태어난 새끼들을 면수건으로 문지르자 첫울음을 터뜨린 장면의 기억은 지금까지 생생하다.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싶은 정도로 세고 빠르게 문지르라 했지만 물렁거리는 작은 몸에게 그럴 수야 있나.
어리숙한 손길에도 새끼는 자신의 존재를 큰 소리로 알렸고, 미소는 마취에서 서서히 깨어나면서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듯했다. 나보다 작고 약한 존재라 생각했지만 생의 경험에 있어서는 훨씬 어른스럽고 크고 단단한 존재로 느껴졌다. 작은 수술실에서 회복하고 있던 미소에게 장하고 멋지다고 계속 말해주었다.
눈은 감은 채로 귀는 살짝씩 움직이며 다 듣고 있었던 미소. 수술한 부위가 아프고 쓰라릴 텐데 새끼들이 젖을 먹으려고 배를 양발로 짓누를 때마다, 옅은 신음은 냈지만 한 번도 새끼들을 물거나 밀어내진 않았다.
간혹 어미에게서 오래 떨어진 새끼들을 알아보지 못해 공격하고 멀리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걱정했었다. 수술 후 회복하는 시간이 길어진 미소가 새끼를 못 알아볼까 봐서. 그 염려로 태어날 때 문질렀던 수건을 옆에 두고 자주 새끼들을 닦아준 덕분에 그들의 평온한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고등학생을 지나 대학생, 그리고 휴학생이 되어 바쁘게 지내던 어느 날, 그전부터 미소의 털이 푸석푸석하고 부쩍 야윈 모습을 보며 걱정했었는데 배변패드에 혈뇨를 보고 아랫배에 물컹한 것이 만져졌던 그날,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아직은 안되는데... 하며 온갖 걱정을 끌어안고 동물병원으로 향했고, 자궁축농증 진단을 받았다. 빨리 수술해야 한다 해서 부모님과 상의 후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통화를 끝내고 아르바이트하던 때라 모아둔 돈이 있음을 다행이라 여겼다. 궁한 시절이었더라면 며칠 더 고생시켰을 것이다. 아니다. 아마 지체된 시간으로 인해 이미 터져버리거나 썩은 자궁을 품은 채 숨을 거뒀을지도 모를 일이다.
수의사 선생님은 오랜 진료의 경험으로 봤을 때, 수술 중 위험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셨다.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나를 안심시키셨지만 이미 앞에 들은 말 때문에 눈물이 멈추질 않는 나를 두고, 수술실에 들어가셨다가 잠시 나오셔서 이 한마디를 하셨다.
"보호자 기운 다 느껴요. 담담하게 잘 될 거라고, 믿고 있어 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