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내 오랜 친구, 정미소-2

이별과 그리움

by 엘리

수술이 어느 정도 끝났는지 의사 선생님은 손소독 하고 들어오라고 하셨고, 나는 절개되어 있는 미소의 뱃속을 보았다. 배 부위에 구멍이 뚫린 초록색 천이 미소를 덮고, 몸의 한가운데를 비추는 조명이 켜져 있었다.

수의사 선생님은 "이제 봉합하고 소독제 바르고 마취에서 깨어나기만 하면 돼요. 저 녀석이 미소 힘들게 했어"라며 눈짓으로 수술대 옆 스테인리스 판에 놓인 커다랗게 부푼 적출된 자궁을 가리켰다.

하마터면 떼어져 나온 그 장기를 주먹으로 칠 뻔했다. 제때 치료해 주지 못한 내 잘못이었으면서...

봉합을 마치고 주변부 피를 닦아낸 후 소독약을 배에 바르고 흘러내리는 침으로 가득한 미소의 입 주변을 닦아주면서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잘했어. 수고했어.. 이제 일어나자. 집에 가서 너 좋아하는 간식 많이 먹고 산책도 하자.'

미소는 마취에서 깨어나려 거칠게 시도했고, 일어나려고 바둥거리는 통에 가져온 담요로 꽉 감싸고 집에 올 때까지 그 몸부림에 가까운 행동을 제어하느라 애를 좀 먹었지만 그 움직임에 감사했다.

수술 부위를 핥지 못하게 넥카라를 했음에도 하체를 연신 흔들어대며 자기 몸을 통제하려 감각을 깨우는 작은 개. 그렇게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온 미소가 고맙고 귀했다.

그때 그 수술로 이른 이별을 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아찔해지기도 한다. 그와 동시에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인 그녀와 그것을 도운 손길에 잔잔히 떨려오는 내 마음을 마주하게 된다.

조금 더 오랜 시간 머물며 내게 선물한 보물 같은 순간은 미소가 살아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돌이켜보면 나는 미소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15년을 같이 살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어떤 놀이를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제일 편안하고 만족스러운지를 다 내 기준에서 생각했던 게 아닐까 한다.

그 때문일까? 미소는 집을 탈출하고 자유롭게 돌아다녔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 같이 사는 내가 답답해서.


산책하고 돌아와 발을 씻겨 드라이기로 말리는 그 과정을 참 싫어했던 미소. 목욕시킬 때는 이빨을 드러내고 온몸으로 저항했다. 그것은 정말 저항이었다.

항문낭을 쥐어짜도, 엉킨 털을 빗질할 때도 가만있는 미소인데 발. 발을 건드리는 걸 언짢아했다.

특히 발톱을 깎을 때는 내 온몸이 식은땀으로 줄줄 흐를 정도였다. 다 휘어 부러질 것 같은 발톱을 그대로 둘 수 없으니 간식으로 유혹하고 달래 가며 다듬었던 날이면 진이 다 빠져버렸다.

그래서 산책을 자주 시켜주지 않았다. 집이 큰 편도 아니고 작은 공간에서 얼마나 갑갑했을까 생각하면 너무 미안해서 가슴이 뻐근하다. 말을 하고 요구를 하지 않는다고 참 무심했구나 하고 후회된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미소는 열린 대문으로 두 번이나 집을 나갔다.


한 번은 옥상에 빨래 널러 가던 엄마가 현관문을 헐겁게 닫는 바람에, 또 다른 한 번은 누군지 알 수 없지만 대문을 열어두고 가서 그 틈에 미소는 신나게 내달렸다. 아마 평소에 산책했던 방향대로 가볍게 걷다가 낯선 이의 집을 우리 집으로 착각하고 들어간 모양인데 그 덕에 나는 두 번 모두 미소를 찾을 수 있었다.

어딘가로 들어가지 않고 길에서 길로 이동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집이 위치한 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언덕에 있는 주택가. 짖는 소리 만으로 미소라고 확신하며 그 집 문을 두드렸던 아빠에 의해, 그리고 무언가에 홀린 듯 우리 집 길 건너편의 추어탕 가게에서 희미하게 낑낑대는 미소의 소리를 듣고 달려간 나에 의해서 미소는 우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미소 자신에게 좋은 결과였을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게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나는 안다.

잃어버린 채, 어디서 어떻게 , 무슨 일을 당하며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지 못하고 살았다면 내 삶은 매우 불행했을 것이기에. 그건 너무 끔찍하고 잔인한 전개이다.


빈곤의 시기를 지나 부요하진 않아도 평범의 범주에 들게 된 삶에 접어들 때까지, 미소는 내 곁에 있어 준 가장 진실한 친구였다. 그런 친구를 두고 나는 떠났다. 친정집에 맡겨두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려.

결혼 후 매주 한 번씩 꼬박꼬박 친정집에 들러 미소와 시간을 보내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정신이 쏙 빠져 한동안 찾아가지 못했는데 동생이 보내온 사진 속 미소는 많이 늙어 있었다.

친정집을 떠나오기 전에도 노견이었던지라 눈이 잘 안 보이고 걸음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못 본 사이 심하게 마르고 털이 빠진 모습에 나는 불안해하면서도 애써 그 모습을 지우려 했다. 멋대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을 것이라 단정 짓고 마음껏 희망적으로 지냈었다. 그리고 아픈 4월이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감정을 추스르지도 못하고 또 이별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외면했다. 아닐 거야. 아직 아니야.


그러나 죽음은 늘 그렇듯 갑작스럽다. 추석 전날 밤 새벽, 검은빛이 푸르게 변하는 시각, 미소는 눈을 감았다. 예사롭지 않다고 여겨 살뜰히 챙겼던 가족들이 피로한 몸으로 선잠에 든 그때.

아무에게도- 귓가에 잘 가라, 고마웠다, 사랑한다는 말을 전달받지 못한 채로.

'전날밤에 어쩐지 가고 싶었는데, 아이 때문에...'라고 후회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고, 지나간 일이 된 내 친구의 아픈 죽음.

소식을 듣고 아침 일찍 도착해 차갑지만 굳어지지 않은 연한 몸의 미소를 손으로 한번 쓸어보고는 울었다. 흐리고 뿌옇게 변한 눈동자로 끝까지 시선을 둔 곳은 어디였을까?

광폭하게 우는 나를 향해 돌도 안된 아이가 놀란다며 친정엄마가 달랬지만 그냥 계속 울었다. 목구멍이 뜨겁고 귀가 먹먹해져 나는 내가 큰 소리로 우는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었다. 어쩔 줄 모른다는 것은 몸을 가만히 둘 수 없는 상태를 이르는 말이란 걸 그때 알았다. 그리고 이별했다. 그때의 감각을 다 떠올리며 쓰는 것이 실로 힘든 일이라 짧고 담백하게, 덤덤하게 구는 내 심정을 누군가는 알아주시겠지, 한다.


-미소야. 보고 싶어. 아직도 네 발 꼬순내를 기억해. 귀털을 머리카락처럼 접어 비빌 때 네 표정도.

네가 있어서 지나올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어. 알지? 네게만 말했던 내 슬픔을, 방울 가득 들어찬 고민을 들어줘서 고마워. 뒤돌아보던 곳에서 나를 늘 바라봐줘서 고마워. 사랑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