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인연-1
나비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앞둔 기말고사 기간에 친구와 시험공부를 하기로 한 날, 나와 친구가 구조한 아기 고양이다.
집으로 들어가려던 길목 어귀에서 힘 없이 "냐~냐아오옹~" 하는 소리를 들었고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귀를 기울여 찾아보다가 트럭 밑에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는 아기고양이를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몸 한쪽이 이상해서 가까이 다가갔다. 도망칠 기운도 없는지 오지 말라고 소리치듯 울음소리만 커질 뿐,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게 아닌가.
친구에게 지켜봐 달라 부탁하고 얼른 집으로 가서 수건 하나 들고 다시 길가로 나왔다.
-이리 와 봐. 해치려는 게 아니고 너 도와주려고 그래.
그때는 집에 같이 동거하는 동물이 없던 시기라 데리고 와도 문제없을 거라 자신하며 구조에 열을 올렸다.
친구가 반대쪽에서 내쪽으로 몰고 아기 고양이는 뭔가에 밀리듯 내쪽으로 넘어왔는데 세상에...
기름인지 뭔지 끈적한 검은 액체가 한쪽몸에 가득해 털이 다 엉겨 붙고, 몸은 야위어 조금만 힘을 가하면 다리가 부러질 듯 가녀렸다. 수건을 버릴 생각으로 폭삭 덮어 품에 안고 집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시험공부하려던 계획은 뒤로 하고 따뜻한 물을 대야에 받아 아기 고양이를 씻기기 시작했다. 집에는 고양이 전용 샴푸가 없었기에 비누로 몇 번씩, 털을 손가락으로 비벼 검은 액체를 씻어내고 수건으로 말려준 후 심하게 엉킨 부분은 가위로 조금씩 잘라내었다. 그 다음 찬장에 말린 멸치를 손으로 찢어서 그릇에 담아내어 주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된 친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떠났고 나는 이 고양이의 이름을 무엇으로 불러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시험공부는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 고양이 뒤통수만 쳐다봤다.
낯선 고양이를 발견한 동생은 좋아했고 부모님은 난감해 하셨으나 결국 같이 지내는 것을 허락하셨다.
참 단순하게도 이름을 나비라고 정했다. 이후 어느 집 고양이의 이름도 나비. 어르신들이 지나가는 이름 모를 고양이를 부를 때도 나비라고 하는 것을 듣고 어쩌다 고양이는 나비라고 불리게 된 걸까 궁금하기도 했고, 그러는 나는 왜 나비라고 부르기로 했는지도 의문이 들었다. 이름의 유래를 찾아본 결과 재빠르고, 나비를 쫓아가는 것을 좋아하며, 뒤에서 본 귀 모양이 나비 모양과 흡사하여 그리 불리게 되었다는 말뿐 확실한 정보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뜻이나 의미를 담지 못한 채, 양쪽 귀 끝에 스라소니의 그것과 같은 털 몇 가닥이 진하게 튀어나와 있는 (이것을 냥집사들 사이에서는 "똑띠 털'이라 부른다고 한다.) 고양이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눈색깔이 오묘하며 짧게 오뚝 솟은 콧대가 예쁜, 나비는 참 아름다운 고양이었다.
아빠가 갈치구이를 손질해서 먹여주었을 때 냈던 그 소리는 아직도 귀에 선명하여 잊히지 않는다.
고양이들이 정말 기분 좋을 때 내는 소리라는데 흔하게 들을 수 없었던 소리라 귀하게 간직하고픈 순간이었다. 또 기억하고 싶은 순간 중 하나는 잠을 자다 가슴 부분이 답답해서 눈을 뜨니, 내 명치 위에 올라와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던 나비의 모습이다.
불빛도 없는 방 안에서 눈이 마주쳤는데 흠칫 놀란 내 반응에도 요동하지 않고, 웅크린 자세 그대로 있다가 손으로 슬쩍 밀어내자 야~옹 소리를 내며 침대 밑으로 내려갔다.
언젠가 아이들의 숨을 빼앗아 가는 작은 괴물로부터 밤새 주인공 아이를 지켜주는 고양이 이야기를 영화로 본 기억이 있어서인지 나비가 나를 지켜준 것 같아 그 순간이 내게 특별히 더 기억에 남는 듯하다.
나를 잘 따르고 바닥에 내려놓아도 내 손짓에 걸음을 맞춰주었다. 살갑고 유한 성격이라 발톱을 세워 나를 할퀴거나 깨문 적도 없는 나비는 오랫동안 내 곁에 함께하리라 생각했는데 호기심 왕성한 나비가 집 안의 커튼을 다 뜯어놓고 이불을 찢어 놓는, 작은 사고를 만드는 일이 늘어나면서 아빠의 심기를 건드렸고, 결국 이웃 아주머니의 친척 집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돼버렸다.
'그렇게 할 것이다'라고 일방적으로 통보받고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나비가 없었다. '말만 그렇게 하신 걸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이별의 인사를 할 시간도 없이 일어난 일에 나는 허망했다.
책상에서 뭔가를 할 때면 항상 발목 근처를 돌던 나비의 털, 그 감촉이 떠올라 의자에 앉은 채로 엎드려 계속 눈물만 흘렸다. 나는 그때까지 이렇다 할 연애를 해보지 않아서 (또래 친구들은 남자친구를 꽤 만났다) 연인들의 이별을 다룬 이야기에 크게 공감하기 어려웠는데 나비가 사라지자 그 애절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비야.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밤마다 내 곁에서 잠들고 날 지켜줬던 그 시간들을 오래도록 지켜가지 못해서 미안해. 네가 얼마나 착한 아이였는지 나는 이제야 알아.
호두는 펫샵에서 3만 원에 데려온 새끼고양이었다. 이미 집에 미소가 함께 살고 있었던 그때 아빠가 무슨 바람으로 그러셨을까? 동생이 아빠에게 자신을 따르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게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미소는 나를 유난히 잘 따랐기 때문에 동생의 품에 있을 때보다 내 곁에 있을 때가 많았고, 같이 지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동생은 자신을 따르는 동물친구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작은 생물과의 동거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그들로 인해 불편하고 번거로운 일보다 기쁘고 힘이 되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알 것이다. '나'에게 좋은 것보다 '너'에게 좋은 것을 주기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마음도 배운다. 그 과정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믿고 따르는 존재와 더 밀접하길 원하는데 아마 동생도 그런 생각이지 않았을까. 이것도 추측일 뿐,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우리 집에 건강이 좋지 않은 호두가 오게 되었다.
그 당시 펫샵에 있는 강아지나 고양이는, 이른바 품종이 뛰어나거나 인기 있는 종이 아니면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호두는 정성과 사랑을 받지 못한 티가 나는, 관심받지 못한 수많은 펫샵 고양이 중 하나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약하고, 눈곱은 덕지덕지 붙어 바들바들 몸을 떠는 호두를 집에서 대면한 순간, 어쩐지 곁을 내주기가 망설여졌던 것은 앞으로 다가올 이별에 덜 아프고 싶었던 못난 내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집에 온 지 5일 만에 내 배 위에서 호두는 숨을 거뒀다. 첫날 약한 모습과 다르게 2~3일은 뛰어다니기도 하고, 소변 실수를 하긴 했지만 배변도 원만하게 이뤄지는 것 같았는데 5일째 되던 날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평소와 같이 낮 2시쯤 안방 TV를 켜고, 누워서 만화영화를 시청하는데 몸 위쪽으로 호두가 올라왔다. 등부터 쓰다듬으며 작고 따스한 온기를 느끼고 있었는데 갑자기 울어대기 시작했다.
뭐지? 호두야, 왜 그래? 하고 눈을 마주쳤는데 미동도 없이 외마디 비명 같은 울음소리를 뱉고 수수깡 같은 얇은 다리 사이로 오줌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사지가 점점 차갑게 식고 굳어갔다.
오줌의 양이 많지 않았기에 나는 바로 호두를 내려놓지 않았다. 호두의 몸 전체를 손으로 쓸어주었다. 얼굴과 등, 꼬리와 다리를 부드럽게 만지고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가족을 찾아 이제야 왔는데...
호두가 떠난 후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음식이나 재료의 이름을 반려동물의 이름으로 지은 것을 참 많이 후회했다. 그 이름과 관련된 이야기나 글씨만 봐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일은 매우 자주 일어났기 때문이다.
정이 쌓이기에 5일은 부족한 시간이었고 추억이라 부를 것도 없었지만, 그가 세상에 태어나 살다 간 두 달여간의 삶이 녹록지 않았음에 짙은 연민을 느끼며 오랜 기간 마음 아파했다.
호두야. 가족의 손길과 온기를 느낀 그 잠깐의 시간이 네게 행복이었기를 바라. 짧은 생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