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함께 지낼 수 있는 생물의 종류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던 시절에 생소했던 조그만 존재들과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려보면 이렇다.
ep1) 경주에 살던 초등학교 시절 주말이 되면 아빠를 따라 산에 오르며 떨어진 모과를 줍기도 하고, 다람쥐도 만나고 정말 빠른 속도로 땅을 파고 내려가는 두더지도 발견하는 시간을 참 좋아했다. 가끔 이건 독이 있는 뱀이라며 긴 나뭇가지로 들어 올려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가오는 아빠의 모습만 빼고.
그 무렵 어렵게 시작한 사업이 어느 정도 입소문을 타고 안정권에 들었을 때, 볼링동호회 활동을 시작하며 바빠지셨던 아빠가 무슨 바람인지 사냥하겠다고 장총을 사들여 온 날 나는 속으로 뜨-악 하고 놀람과 동시에 약간의 실망도 했던 것 같다. 꿩사냥을 하겠다며 총자루를 쥐어 내게 보이는 아빠가 낯설었다.
총을 쏘다니.. 도대체 왜 그런 일을 하려고 하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얼마 뒤 박제되어 온 꿩 한 마리가 징그러운 플라스틱 눈알을 하고 안방 장식장 안에 진열되었을 때의 기분은 말로 형언하기 힘들 정도로 매스꺼웠다.
한동안 무엇인가에 홀린 사람처럼 산짐승을 잡겠다고 밤낮 가리지 않고 외출하던 아빠는 어떤 계기로 인해 그 생활을 그만두고 가정에 충실했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셨다. (고통 속에 신음하는 장면을 마주한 것일까?)
다행이라 여기며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지내던 어느 날, 아빠는 시골에 집을 하나 마련하고 싶다고 감나무가 있는 산 아래 농가로 나를 데려갔고 그곳을 구경시켜 준 뒤 뒷산에 올라 보자고 하시길래 따라나섰다.
산에 가면 가끔 도롱뇽알을 발견하거나 개구리와 가재를 본 적은 있었는데, 그날은 작은 도마뱀 한 마리가 나뭇잎 위에서 위장한 채로 꼼짝 않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빠는 재빠르게 잡아 간식으로 들고 온 깨스틱 통에 넣어주시고는 집에 가서 조금 관찰하다가 다시 산으로 돌려보내 주자고 말하고 나보다 앞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와 방학 숙제로 잠자리와 매미를 잡을 때 썼던 채집통에 도마뱀을 옮겨 넣었다. (나는 방학숙제를 제출하지 않았다. 잡고 풀어줬다. 표본을 만들 수 없었다. 나비는 더욱더 그렇게 하기 싫었다.)
모형처럼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녀석은 그렇게 오래도록 있었는데 얼음 땡 놀이처럼 내가 쳐다볼 때만 얼음이 되는 건지 계속 그 상태로 움직이지 않는 건지 그건 알 수 없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산에 풀어주기 전까지 밖으로 내놓지 말라는 말을 어기고 꺼내놓았는데 순간 정말 빠르게, 그리고 아빠가 잡았을 때는 손안에 바로 가둬서 꼬리를 자를 새도 없었던 모양이었으나 내 손이 스쳐 지나간 그 순간에는 꼬리를 끊고 말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
잘린 꼬리는 얼마간 미꾸라지에 소금 치듯 격렬하게 움직였고 그것이 신기해 한참 쳐다봤었다.
"네가 살던 곳에 데려다주지 못한 것 잘못했어, 도마뱀아. 마당 넓은 이웃집으로 갔다면 살기 괜찮았을 텐데 살 곳을 잘 찾아냈길 바라."
ep2) 이것은 순전히 아빠의 호기심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일말의 책임이 내게도 있기에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글을 써본다. 성인이 되기까지 강아지, 고양이, 새(병아리와 앵무, 참새), 토끼, 물고기, 도마뱀 등등 여러 존재들을 경험했지만 직장인으로 살아가던 시기, 유튜브에서 고슴도치 옷을 만들어 입히고 귀여운 사진과 영상을 찍어 올리는 채널에 빠져 나도 내 손길을 아는 고슴도치랑 지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저녁 식사 시간에 그런 이야기를 했고 같은 상실의 경험을 겪었던 가족들은 허전한 마음을 저렇게 표현하는가 보다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아빠는 흘려들으시질 않고, 참 신기하게도 못 키운다고 내놓은 고슴도치를 고물상에서 데려온 것이다.
몇 년이 되어도 먹이 주는 사람에게 그대로 가시를 세우는, 숨어있기 좋아하는 그 녀석을.
무턱대고 일 저지르는 데는 뭐 있다고 엄마에게 한소리 잔뜩 들으시고도 기어이 안방에 케이지를 넣어두고 먹이를 챙겨주던 아빠는, 장갑을 매번 끼고 만져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언젠가는 녀석이 마음을 열어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으셨다. 끝내 가시를 세웠던 아이지만 말이다.
나는 고도리라고 불렀는데 아침 시간부터 퇴근 후 돌아오는 시간까지, 어쩌면 꿈적도 하지 않은 건 아닌가 할 정도로 녀석은 움직임이 없었다. 하지만 호불호의 소리는 분명했다.
만지려고 한다거나 심기가 불편한 상황이면 바람 빠지는 듯한 쒜-쒜- 소리를 내고, 짧고 얇으며 앙증맞은 다리를 있는 힘껏 뻗어 발을 굴렀다. 코를 길게 빼고 위로 쳐들면서.
내 눈에는 그 모습이 엄중한 경고 또는 위협으로 보였다.
[건들지 마라. 가만두지 않겠어.]
일반적으로 어느 정도 교감이 가능하다는 반려동물에 비해, 고슴도치는 그렇지 못할 거라는 주변의 의견이 있었다. 경험한 바로 그러했다. 하지만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유대감은 못 느꼈지만)
일례로 명절에 우리 집에 온 작은 아빠가 "고놈 참 못생겼다~." 하는 말을 듣고 들썩거리는 등을 보았다.(잔뜩 성이 난) 평소와 다른 움직임이었다. 통 안에 손을 넣어 꺼내려던 작은 아빠에게 잡아 올리지도 못하게 뾰족한 가시를 세워, 작은 아빠는 성질도 고약하다며 한마디 했는데 나는 그런 소리를 듣는 고도리가 짠해서 징그러운 밀웜도 기꺼이 집어 간식 통에 넣어주었다. (생긴 걸 가지고 지적하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참지 않아야 한다)
몇 달이 흘렀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다.
몇 번 고도리에게 손을 물린 아빠는 지인 중 고슴도치를 키워보고 싶다는 자녀가 있는 집에 결국 보내기로 하고 짐들을 정리하셨다. 처음 같이 살게 된 사람에게서 우리에게로,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로.
길들이려 하지 않고 그저 돌본다는 목표로 고도리를 대했다면 어땠을까. 여러 환경을 거치면서 고도리는 더 깊이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게 된 것은 아니었을지 이제야 헤아려본다.
"고도리. 내가 괜히 이야기 꺼내는 바람에, 끝까지 보살피지 못할 부족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 와서 힘들었지?
기다릴 줄 알고 너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