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리와 삐약이

by 엘리

초롱이가 집을 나간 뒤 혹시나 돌아올까 싶어 기다리는 마음으로 처리하지 못했던 개집과 밥그릇, 장난감을 정리하기까지 한 달여 정도 걸렸다. 매일같이 드나들던 곳에 있어야 할 존재가 사라지자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전처럼 신이 나질 않았고 어떠한 기대감이나 즐거움도 없이, 그리고 애써 지워져 버린 그 존재를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시간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90년대에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판매하는 아저씨와 마주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교문 앞에 놓여있는 병아리 상자로 내가 걸어갔으니 아저씨를 만나게 된 것이지만 말이다.


두 마리를 사면 500원, 모이는 서비스. 쌀이랑 현미 불려서 주고 빵, 과일, 배추는 1주일 지나면 주기.

끊기지 않고 삐악거리는 소리가 나는 작은 상자를 들고 집으로 가면서, 나는 아저씨가 한 말을 주문처럼 중얼거리며 걸었다. 엄마에게 혼날 걱정이 몰려와 겁도 나긴 했지만 될 대로 되라지 라는 마음으로 일부러 천천히 걸음을 떼며 무슨 말로 부모님을 설득할까 고민하며 집으로 향했다.

(이 시절의 나는 지금보다 더 무계획이고 용감했던 것 같다. 눈치를 보긴 하지만 무시하는 경우가 더 많은)

걱정했던 것과 달리 엄마는 별다른 반응 없이 아빠에게 큰 박스가 필요할 것 같다고, 이왕이면 두꺼운 게 좋겠다고 하셨고 아빠는 집 앞 상가 방앗간에서 옥수수가 그려진 박스를 구해오셨다.

봄에서 여름으로 향하고 있을 무렵이었고 쌀쌀한 날씨도 아니어서 엄마는 신문지만 깔면 된다고 했지만 큰 박스 안에 작은 병아리 두 마리만 있으니 허전하고 추워 보여 천을 돌돌 말아 넣어주었다.

간장 종지로 쓰던 사기에 물을 담고, 플라스틱 통에 아저씨가 준 모이를 덜어낸 후 쪼그리고 앉아 지켜보았다.

걸어 다니면서도 삐약. 가만히 있으면서도 삐약.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을까.

혼자서 상황극까지 해가며 두 병아리의 대사를 읊어주고 이내 다리가 저려와 다시 내 방으로 들어갔다가 삐약거리는 소리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 부엌으로 돌아가기를 여러 번.

이제 그만 자라는 아빠의 말에 내 방 불을 끄고 누웠다. 볼륨을 낮춰도 들려오는 안방 티비 소리를 들으며 뒤척이는데 밤이 되자 삐약거리지 않는 병아리들이 신기하고 고마웠다. 잠이 들었고 꿈속에서 이런 다짐도 했던 것 같다.

'초롱이가 있던 그곳에 병아리들이 있어. 이름을 지어줘야지. 같이 오래 살아야지.'


학교에 머무는 동안, 집에 있을 두 녀석만 생각이 나고 공책에 이름을 썼다 지웠다,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고민한 다음 결정한 이름을 마음에 품고 집으로 달렸다.

아리와 삐약이. 조금 더 크게 우는 쪽이 삐약이.

그날 오후 집에 도착한 나는 병아리 걸음 속도가 나보다는 느릴 것이라 판단했고 화장실 가는 통로의 옆을 장독대로 막아두고 아리와 삐약이를 상자에서 꺼내 내려놓았다. 낯선 환경 때문인지 처음에는 느릿느릿 걷더니 아뿔싸! 두 마리가 다른 방향으로 내달리기 시작하는데 정신이 쏙 빠져서 엄마! 엄마! 하고 호들갑을 떨어 한 마리를 손바닥을 포개어 잡아 후다닥 상자에 넣고 장독대 사이에 난 틈으로 나가려는 다른 한 마리도 잡아 올려 상자에 쏙.

무슨 일이냐며 뛰어오신 아빠는 내 이야기를 듣고 잠시 머뭇거리시다가 사진을 찍자며 카메라를 들고 오셨다.

초롱이는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다. 그걸 기억하고 계셨던 걸까?

그리운 존재를 머릿속으로만 떠올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아셨던 걸까?


촌스러운 머리띠와 옷을 입고 그을려 까만 피부와 어색한 미소로 병아리 두 마리를 들고 찍은 사진은, 내가 사진첩을 볼 때마다 반기며 오래 눈길을 주는 사진 중 하나다. 잘 찍어두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여전히 시끄럽고 분주할 것 같은 두 친구와의 시간이 조금 더 우렁차게 말하는 쪽인 삐약이가_ 새들의 죽음이 그러하듯 _싸늘하게 떠나면서 그리 길지 않을 것임을 실감케 했다.

가재 수건에 싸서 묻어주고 오겠다는 아빠를 따라가지도 못하고 마지막 순간에 스쳤던 그 감촉만 떠올리며 울다가 (아빠가 기르던 잉꼬 한 쌍이 고양이에게 물려 죽었을 때는 내가 아주 어릴 때라 만졌던 기억이 없다) 숙제도 하지 못하고, 다음날 피아노학원에도 가지 않아 엄마에게 혼이 났다.

상실과 죽음은 같은 선상이긴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잘살고 있을 거라는 마음과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음을 깨닫는 마음의 차이는 다른 차원의 슬픔이고 아픔이었다.

"너는 삐약이보다 소리도 작게 내고 힘도 더 없어 보이는데.. 이제 너만 남았으니 내가 더 잘 돌봐줄게."

펼친 손바닥 위로 올라온 아리를 다른 손으로 살살 쓰다듬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계절이 바뀌자 잘 먹고 잘 싸다가(설사가 계속되는 것은 모든 동물에게 위험신호다.) 어느 순간부터 삐악거리는 소리가 줄어들더니 병아리라고 부르기에 다소 민망한 모습으로 아리는 바뀌었다.

박스에 가두기에는 너무 커버렸고, 가끔 뛰쳐나와 닥치는 대로 쪼아대는 통에 엄마는 아리를 이모네 시골집에 보내는 게 좋겠다고, 그곳 풀숲에서 닭들과 어울리고 사는 게 아리는 더 좋을 거라고 나를 설득했고 그즈음 단짝 친구네 집 강아지 '하늘이'에게 푹 빠진 나는 그러라고 해버렸다. 며칠 뒤 크게 후회할 줄도 모르고...

보송보송하다는 단어의 뜻을 손끝으로 느끼게 해 준 아리와 삐약이, 나의 두 번째 작은 친구들은 그렇게 내 어린 시절 사진 몇 장으로 추억되며 인연이 끝났다.

아리야. 삐약아. 나랑 지내는 동안 즐거웠니? 허전한 마음을 웃음으로 채울 수 있게 해 줘서 나는 기뻤어.

*글/그림 다 제가 작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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