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의 초롱아.

글/ 그림 : 앨리

by 엘리

1990년대는 반려동물이 흔하지 않았던 때라 티브이를 통해 귀여운 동물 친구들을 보며 언젠가는 나만의 작은 친구를 만날 수 있기를, 여덟 살의 나는 조용하고도 강하게 바라고 또 바랐었다.

목공소 집 향미가 가게 한편에 마련한 공간으로 데려가 새끼고양이 두 마리를 자랑했을 때도, 골목 끝 집 주연이가 앙증맞고 윤기 나는 털을 가진 말티즈 사진을 보여주며 아직은 어려 만지게 해 줄 수 없다고 집으로 초대하지 않았을 때도 참을 수 있었다. 부모님께 떼를 쓰지 않을 수 있을 만큼만.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 친구들이 작은 친구를 만나는 걸 지켜보기만 하는 게 힘들어 어느 날은 작정하고 하루 종일 엄마에게 들러붙어 요즘말로 '나만 강아지 없어.. 나만 고양이 없어.. 나만 없어."로 랩을 해댔다.

그렇게 무서워하던 아빠에게도 진짜 잘 키울 수 있다고 소리 내어 조를 정도로 나는 간절하게 원했다.

그때 우리 집은 가게 뒤 편에 방이 붙어있는 구조로, 주인집은 2층에 살고 1층 공간은 부모님이 커튼과 버티칼, 이불과 패브릭 제품을 만들어 파는 일을 하는 가게 겸 집으로 쓰이고 있었다. 세 들어 사는 형편.

집의 현관이 가게 출입문이었고, 방 두 개가 붙어는 있으나 칸막이 없이 한방처럼 쓰는 상황에 무슨 반려동물이냐며 절대 들어주지 않을 의지가 잔뜩 담긴 몸짓으로 엄마는 나를 등지고 서서 말씀하셨다.

"부엌도 좁고, 화장실도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때마다 개가 짖어봐. 그건 민폐야.

다음에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면 그때 가서 한 번 생각해 볼게."

더 주장하고 싶었지만 저절로 수긍되는 그 기분은 뭐였을까? 네-라고 대답하고 돌아서는데 묵직하고 뜨겁게 타고 내리는 눈물방울들. 다 틀렸어. 잔뜩 풀이 죽어 프뢰벨 전집을 펼쳐두고 툭-툭 눈물이 떨어지는데도 눈길 따라 그림책을 읽어 내려가며 속상한 마음을 달랬다.

그렇게 더 꿈꿔보지도 못하고 새벗(어린이잡지)에 나온 동물들에게 혼자 이름도 붙여주고 청승을 떨던 어느 날, 부엌 지나 화장실 가는 마당 쪽에서 낑-낑 대는 소리와 함께 아빠가 나를 불렀다.

"나와봐라. 외삼촌 동네에 돌아다니는 개라는데 주인 없이 떠돈다길래 데려왔다."


한낮의 열기가 사라지지 않고 머무는 여름저녁, 과일박스에 넣어 데려온 갈색 점박이 개, 초롱이와의 만남.

부모님은 절대 방 안에서 같이 지내는 건 안 된다고 강조했으나 언제고 기회가 되면 내 이불속에서 몰래 재워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그 당부를 가볍게 흘려들었다. 뱅글뱅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초롱이의 꼬리와 이름 그대로 초롱초롱 빛나는 눈망울에 푹 빠져서 말이다.

초롱이는 아주 어린 강아지는 아닌, 사람으로 치면 초등학교 5~6학년 정도의 나이였던 것으로 짐작해 본다. 사기로 된 국그릇에 우유를 한가득 부어주면 통통하고 불룩해지는 분홍 배가 사랑스럽고 쩍~하고 입을 벌려 하품할 때와 멸치볶음을 하고 남은 큰 멸치를 열심히 뜯어먹는 모습이 귀여운 내 친구.

눈처럼 새하얀 털은 아니고 미숫가루 한 스푼 탄 베이지와 아이보리의 중간쯤, 등과 꼬리 쪽에 갈색의 동그란 점이 있고 긴 몸통에 비해 다리가 조금 짧지만 탄성 좋은 발걸음으로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


사료를 먹여야 한다는 걸 뒤늦게야 알게 된 것도 그렇지만, 나 어릴 때도 다 이렇게 키웠다며 한사코 국에 밥을 말아 주는 아빠 때문에 초롱이는 우리 집에 온 지 한참 지나서야 사료를 먹을 수 있었다.

가끔 고기나 뼈다귀를 주면 입 양쪽 털에 잔뜩 기름 자국을 만들고는 드러누워 배를 보이고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개집으로 들어가는 초롱이에게 나는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개가 먹으면 위험한 음식도 준 적이 있었다. 사람이 먹는 과자, 빵 같은 것들.

내가 좋아하는 달콤한 것들을 초롱이도 좋아할 거라는 무지함과 처음이라 서툴렀을 내 행동들 때문에 불편하고 어쩌면 고통스러웠을, 초롱이를 향한 미안함은 새로운 작은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나를 괴롭게 한다.

이 간식을 초롱이가 먹었다면 어땠을까? 산책이라는 걸 같이 했다면 좋아했으려나? 추운 겨울밤 문을 하나 달았을 뿐 거의 밖이었던 부엌 한구석 작은 집에서 외롭지는 않았을까?


커튼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과 못 입게 된 옷들을 초롱이가 지내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개집에 넣어두었지만 분명 추웠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초롱이를 쓰다듬으면 털은 차가웠고 비릿한 바람냄새 같은 것이 났으니까. 그러다 몇 번 격렬하게 뛰어올라 드러눕고 나와 인사하다 보면 이내 따뜻한 온기가 내 손에 닿았다.

초롱이가 혀로 몇 번 손등과 얼굴을 핥고 빤히 나를 쳐다보고 있으면 그 순간이 정말 좋았는데..

여름에 만난 초롱이는 겨울을 지나 봄이 올 무렵 집을 나갔다. 가게 문으로는 지나갈 수 없게 막아두긴 했는데 주인집과 통하는 뒷문이 열려있었던 모양이었다. 밤이 되어 더 이상 찾을 수 없을 때까지, 어디로 어떤 생각으로 길을 나섰는지 헤아릴 수도 없는 긴 여행을 초롱이는 혼자 떠나버렸다.

줄로 묶어놓을걸. 더 잘해줄걸. 집 안에서 같이 지낼걸. 후회만 가득한 나의 첫 친구와의 이별의 기억이 매우 아파서인지 그 이후 얼마나 울고 슬퍼했는지가 또렷하지 않다. 머릿속에 담아두지도 못할 만큼 아팠나 보다.


초롱- 그렇게 나가서 어디로 갔어? 누구를 만났니? 내 생각은 났어? 미안해.

*글/그림 다 제가 작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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