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손이 없냐, 발이 없냐?
여자는 공주로 태어나는 걸까요? 공주로 만들어지는 걸까요? 1학년 여자 아이들 중에도 공주과의 아이와 그 반대의 아이가 눈에 띕니다. 어른들은 흔히 무수리과라고 하지만 1학년에게 무수리라니? 글의 흐름상 시녀과라고 해보겠습니다.
사실 1학년 여자아이는 모두 그 자체로도 빛을 발하는 공주입니다. 성 안의 귀한 공주처럼 키워지고 있으니까요. 긴 웨이브 머리카락에 드레스를 입고 구두에 액세서리까지 치장한 아이가 새침 떨며 약한 척하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공주입니다. 반면에 힘세고, 남의 일 참견 좋아하고, 잘 싸우고, 청소 같은 걸 매우 잘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목소리도 크고 동네 부녀회장처럼 정보도 빠릅니다. 공주과의 아이랑은 결이 좀 다릅니다.
공주과의 아이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도 다른 아이들에게 시키기를 잘합니다. 반면에 시녀과의 아이는 자발적으로 다른 아이들을 도와주는 걸 좋아합니다. 공주과의 아이가 실내화를 잘 못 신고 있으면 신겨줍니다. 집에 같이 가야 하는데 공주과의 아이는 좀 느리거든요. 그 꼴을 못 보는 거지요. 우산도 챙겨주고 실내화 가방도 챙겨줍니다. 척척척 잽싸게 손이 야무집니다. 교사에게는 정말 예쁜 아이지요.
공부시간에도 그렇습니다. 공주과의 아이는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찾습니다.
"나 이거 못해. 도와줘."
"나 도와줄 사람!"
그렇게 말이라도 하면 다행입니다. 아예 못하는 척 우아하게 앉아있습니다. 머리카락을 배배 꼬며 여기저기 흘끔흘끔 쳐다보죠. 그러면 분명히 달려오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너 이거 못해? 내가 도와줄까?"
아주 기쁜 마음으로 공주의 일곱 난쟁이를 자처하지요.
남자아이들은 어떤 여자 아이를 더 좋아할까요? 이상스럽게도 남자아이들은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여자에게 더 끌리나 봅니다. 뭐든 척척 잘하는 여자 아이를 피합니다. 한 번 잘못 걸리면 된통 당한다나요. 그리고 무섭다고 표현합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은 자신을 칭찬해주고 인정해주는 사람을 더 좋아하나 봅니다.
어느 날 그 적극적이고 뭐든 척척 잘하는 여자 아이가 좋아하는 남자애랑 싸우고 있습니다. 화가 단단히 났습니다. 목소리가 커서 어떤 상황인지 모두 알 것 같습니다.
"너는 왜 자꾸 쟤만 도와주는 건데? 쟤가 손이 없냐, 발이 없냐? 너 때문에 쟤가 스스로 못하잖아."
남자애는 머쓱하니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머뭇거리는 남자애를 여자애가 밀쳐버립니다.
상황인즉 그 남자애가 공주 같은 그 여자애를 좋아하나 봅니다. 예쁜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를 입지 않으면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아이, 바깥활동이 있는 날에도 한결같이 드레스와 구두 차림인 그 아이, 표정도 행동도 느릿느릿 여유가 넘치는 아이입니다. 애교까지 많아서 사실 귀엽게 보이기도 하는 아이지요. 남자아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기도 하고요. 공주의 흑기사가 되어 공주에게 인정받고 싶은 거지요.
그런데 갑자기 공주과의 여자애가 시녀과의 여자애를 다른 곳으로 끌고 갑니다. 그리고 천천히 말합니다.
“얘, 여자가 약해야지 남친이 말을 잘 듣는대. 너는 왜 그렇게 힘이 센 거야?”
1학년 여자애가 어떻게 벌써 남자를 사로잡는 법을 알았을까요? 너무도 궁금해서 공주과의 여자애에게 살포시 귀띔을 요청합니다.
"누가 그래? 여자가 약해야 남자가 말을 잘 듣는다고?"
"울 엄마가요. 여자는 힘이 세면 안 된다고 그랬어요."
아무래도 공주는 만들어지는 게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