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산골영화제 (2025. 6. 6. ~ 2025. 6. 8.)
낭만.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낭만 하세의 시대, 죽어버린 낭만이 좀비처럼 돌아다니는 시대. 현실만을 쫓아 내달리는 것이 당연하고 일상적인 것이 되어버린 시대.
현실에 지쳐 잃어버린 것들이 그리워지는 순간 사람들은 비일상을 찾는다. 그리고 영화제는 훌륭한 비일상의 공간이다. 자신이 사는 곳에서 훌쩍 떨어진 도시에서 개최된다면 더욱 그러하다. 영화라는 것은 본래 러닝타임만큼은 관객을 그가 속한 현실에서 이탈하게 만드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 시간 말고는 모든 것이 현실에 예속된 예술일지라도. 그러니 영화로 종일이 가득 차는 영화 축제란 낭만을 찾기에 좋은 공간이다. 영화제를 찾는 관객이 근래 들어 크게 증가한 것도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일까.
사실 대부분의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대중에게 인지도가 높은 상업영화보다, 독립·예술 영화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프로그래머들과 영화제 조직위원회가 상영될 영화를 미리 보고 프로그램을 기획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영화가 명작일 리는 만무하며 개개인의 입맛에 맞을지 아닐지도 개인이 직접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영화관에서도, OTT에서도 볼 수 없는 영화들도 영화제에서 상영된다. 구조상 입소문을 타기 어려운 영화나 마니아층만 알음알음 아는 영화도 많기 때문에, 아무런 정보 없이 상영관에 들어갔다가 크게 실망감을 느끼며 나오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러나 이조차도 낭만이라면 낭만이다. 평소 영화관에서는 만날 수 없는 영화들을 만나는 시간이, 다양한 색을 가진 창작자들의 미숙하거나 간결하며, 때로는 격정적인 시선들로 세상을 만나는 시간이 낭만적이지 않을 리 없다. 일정 기간 이어지는 영화 축제에는 다른 곳에서 실종된 특별한 것들도 한데 모여 존재하기 때문에, 현실이라는 사막에서 낭만이라는 갈증을 느끼는 여행객들에게는 어느덧 오아시스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했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 티켓 값의 상승과 OTT의 확대로 영화관을 찾는 관객수는 줄어드는 추세지만, 최근 몇 년간 영화제의 관객수는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지난 5월 성황리 막을 내린 전주국제영화제는 관객수, 예매율 면에서 올해 신기록을 세웠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관객들은 영화제에 열광했다. 그리고 찾아온 무주산골영화제. 이제는 전 정부가 된 그 정부가 지원금을 모조리 삭감하며 기간이 사흘로 줄어든 영화제. 영화제 존폐 위기라는 말도 나온 만큼 올해는 꼭 무주를 찾아야겠다는 관객들이 많았다. 나 역시도 그중 하나였다.
평소 영화를 즐겨보긴 하지만 ‘시네필’이라기에는 조금 아쉬운 정도. 영화제 조직위원회에서 일한 적도 있고, 가끔 영화제를 방문하기도 했지만 이틀 이상 가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올해만큼은, 이 작디작은 영화제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들었다. 역시 나 조차도 부족한 낭만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며, 이 작은 영화제가 없어져버리기 전에 소생에 동참해야겠다는 생각이 깊었던 것이다. 무주가 진짜 낭만이라던데. 그 말에 홀리기도 했고.
우선 숙소부터 잡았다. 혼자 여행을 할 땐 종종 게스트하우스에서 잠을 잔다. 파티 등 게스트 간의 교류가 있는 곳이라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재미도 있고, 혼자 잠만 자는데 굳이 호텔이나 펜션 같은 숙소를 잡을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제 시작 두 달 전부터 인지도가 있는 게스트하우스들은 모두 마감이었기 때문에, 최근 후기가 하나 없는 구천동의 한 게스트하우스에 냅다 예약을 넣었다. 가장 최근 후기가 2017년이었기에 살짝 걱정이 되긴 했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숙소를 잡아 놓았다는 사실조차 잊힐 때 즈음 진행된 티켓팅은 많은 관심 속에 진행된 만큼 피 튀겼지만... 몇 시간이나 모니터 앞에 앉아 취소표를 잡아가며 결국 궁금했던 영화들을 예매하는 데 성공했다.
약 두 달 뒤 다가온 6월 6일. 숙소를 잡고 예매를 할 때는 직장인이었지만, 약 2주 전 다시 백수로 돌아온 나는 생활 패턴이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전날 밤에도 역시 잠이 오지 않아 날 밤을 그냥 새버린 이 백수는, 아침 7시 캐리어 하나를 끌고 무주로 출발했다.
아래부터는 영화 감상평이 섞여있다.
1일 차
구천동에 숙소를 잡았기 때문에 무주에 도착하자마자 짐 보관소에 캐리어를 먼저 맡겼다. 덕유산 대집회장 야외상영을 제외한 영화 상영과 부대행사는 모두 무주터미널 근처 등나무운동장과 한풍루, 산골영화관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영화제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짐 보관소를 첫날과 마지막날 유용하게 활용했다. 짐을 맡긴 뒤 굿즈샵에 방문에 반다나와 배지 등 몇 가지를 기념으로 구매했다. 무주산골영화제는 굿즈를 잘 뽑는 것으로도 시네필들 사이에서 유명한 영화제인데, 올해도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한 것 같다. 나중에 오며 가며 들어보니 반다나는 특히 인기가 많았다고. 티켓 부스의 줄도 굿즈샵의 줄도 꽤나 길어 인기를 실감케 했다.
첫 영화가 오후 4시가 넘어서 예정되어 있었기에 마침 열린 오일장, 반딧불시장을 구경했다. 반딧불시장은 등나무운동장에서 천을 건너 자리하고 있다. 천을 따라 걷는 길이 참 좋았다. 6월 초의 무주는 그리 덥지 않았다. 마치 환상 속에 잠긴 여름처럼. 밤에는 바람막이가 꼭 필요할 정도로 일교차가 심했다.
첫 식사는 오일장인 반딧불시장 안 쪽에 있는 할매국수에서 했다. 보리밥 5천 원, 국수 4천 원이라는... 몇 년 전에 시간이 멈춘 듯한 저렴한 가격. 보리밥을 주문하면 국수를 맛볼 수 있도록 함께 내어준다. 보리밥 곱빼기로 주문했는데 곱빼기도 6천 원으로 매우 저렴했다. 맛은 딱 집밥이다. 내가 전라도 사람이라, 밑반찬은 고향에 있는 식당에서 먹는 그런 맛이었다. 보리밥은 매우 고소했는데, 깨가루 맛이 진했다. 국수는 간간하고 고소했다. 시원한 맥주 한잔 곁들여 매우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쳤다.
식사 후 한풍루를 둘러본 뒤 형설지공도서관과 김환태문학관·최북미술관을 구경했다. 한풍루에는 키즈존이 있었고,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었다.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도 많았지만 가족 단위로 오신 분들도 많았다. 무주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볼거리도 많으니, 가족 여행으로도 참 좋을 듯하다. 형설지공군립도서관은 상상반디숲이라는 건물에 문화센터 등과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무주는 정말 반딧불과 태권도의 도시구나 싶었다. 공간 조성이 아주 잘되어 있었는데, 공부는 물론 편하게 뒹굴면서 책을 볼 수 있는 공간도 잘 만들어져 있었다. 김환태문학관·최북미술관은 같은 건물에 있었다. 김환태는 일제강점기 시기 활동한 무주 출신의 평론가로, 구인회 소속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최북은 무주가 본관인 조선 후기 화가로, 「추경산수도」, 「누각산수도」 등을 그렸다. 자가 칠칠(七七 ) 이신데, 七七 을 합쳐 쓰면 北이다... 내 스타일이시다...
전시관 아래층에서 '넥스트 시네아스트: 박세영' 전시도 하길래 둘러봤다. 박세영 감독의 단편 영화들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I Love You Michael Snow>가 기억에 남는다. 마이클 스노우의 신작 <시티스케이프>를 보려다가 못 본 박세영 감독이 친구 이소정 감독과 함께 그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을 담아 <시티스케이프>의 로그라인을 바탕으로 찍은 영상이라고.
4시쯤 등나무운동장에 입장해 유다빈밴드의 공연을 봤다. 평소 즐겨 듣는, 애정하는 밴드 중 하나다. 이날은 CALLING이 그렇게 좋더라.
어디야 뭐하고 있어 온 힘을 다해 꺼냈던 그 말은 떠나고 싶어
살짝 떨렸던 것 같아 난 그저 웃고 있었지만
"CALLING" 中
그리고 드디어 첫 영화를 관람했다.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 허범욱 감독 作 (2024)
단적으로 말하자면 감독의 욕심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재도 좋고 창의력도 뛰어나지만 영화 자체가 수다스럽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너무 많았고 그것들을 영화에 모조리 우겨 넣고 있음에도, 그 대사들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몇 가지 되지 않았다. 뻔하고 노골적인 대사들이 반복해서 '인간만이 자행할 수 있는 비인간성', '군대 내 폭력이나 학교 폭력 등 인간성이 퇴화된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부조리' 등을 강조한다. 좋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나름 신선한 소재도. 하지만 길다. 스토리가 지겹도록 길게 늘어짐에도 불구하고 여백 없이 대사를 쏟아내며 메시지를 음미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그래도 칭찬하고 싶은 점은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를 잘 살렸다는 점이다. 그로테스크한 묘사도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잘 활용해 표현력을 극대화시켜 그려냈다. 한국에서 이런 작품이 나왔다는 점도 참작할 만하다.
영화가 끝나고 다시 등나무운동장으로 돌아왔다. 잠시 에피톤프로젝트의 공연을 감상한 뒤, 개막작 <바람>을 관람했다. 영화 시작 전 노을이 참 예쁘더라. 바람도 점점 시원해져서 나중에는 바람막이를 걸쳤다.
<바람>, 빅토르 쇠스트룀 감독 作 (1928)
올해 무주산골영화제의 개막작은 무성영화 <바람>이었다. 무주에서는 매번 무성영화와 라이브 공연을 함께 선보여 왔다고 알고 있는데, 올해 역시 영화와 함께 라이브로 음악과 더빙을 함께 선보였다. 밴드 '반도'의 음악은 적절했고, 더빙 역시 훌륭했다. 무성영화를 새롭고 풍성하게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음악과 더빙이 없었더라도 나는 충분히 이 영화에 압도당했을 것이다. 경외심을 들게 하는 바람에 첫 번째로 압도당하고, 레티에게 두 번째로 압도당해 그녀와 함께 성장했을 것이다. 매우 스타일리시한 연출로 눈을 뗄 틈이 없었고, 바람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그 바람을 타고 날아갈 뻔했다, 이리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람>에서 바람은 바람만 의미하지 않는다. 감정이자 삶이다. 인간의 힘으로 바람을 멎게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끝내 바람을 피하지 않게 된 그녀는 더 이상 삶과 감정이라는 이름의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녀는 두려움이라는 자신의 감정에도, 자꾸만 시련과 알 수 없는 미래를 안겨주는 삶에도, 자꾸만 자신을 겁주고 유혹하는 남자들에게도 맞서 싸웠고, 그 거친 바람에 맞서 싸우며 성장했기 때문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릴리안 기쉬가 아주 오래도록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녀가 표현하는 감정들은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오롯이 전달됐다. 풋풋함도, 돌풍과도 같은 감정도, 광기까지도.
야외상영이라 더욱 좋았다.
2일 차
가장 최근 후기가 2017년이었던 게스트하우스는 깔끔하고 편안했다. 쾌적하게 묵을 수 있었다. 아래 카페를 함께 운영하시는 사장님은 말수가 적으셨지만 엄청 친절하셨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려고 카페에 방문하였는데, 게스트하우스 투숙객에게는 무료로 음료를 내어주셨다. 다정하고 유쾌한 카페였고 커피도 맛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구천동에서 예체문화관으로 가는 버스를 탑승했다. 가는 길에 우연히, 점심에 도리뱅뱅이를 함께할 일행이 생겼다. 우선 예매해 둔 영화가 있어 영화가 끝나고 만나기로 했다.
<새벽의 Tango>, 김효은 감독 作 (2024)
단편이었다면 참 좋았을 영화다. 필요 이상으로 영화를 늘려놓았다. 애틋하다. 하지만 작위적이고 답답하다. 스토리를 왜 이렇게 진행시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30분 안에 감정을 응축시켰다면 차라리 애틋하고 아름답게 와닿았을까. 아니면, 차라리 고백을 했다면. 사랑인데 사랑이 아닌 척 탱고의 박자가 한없이 느리게 흘러간다. 사랑한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는 동안, 잘 설정해 둔 캐릭터들을 소모적으로 써버리는 동안 와닿았던 애틋함은 흩어지고 이해하려던 스토리는 허망하게 녹아버린다. 소재는 좋았는데, 상당히 아쉬웠다.
점심은 아침에 우연히 만난 일행과 섬마을에 갔다. 도리뱅뱅이와 빠가어죽. 분명 어렸을 때 먹어봤던 음식들인데, 그 맛이 기억이 나지 않아 처음 먹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도리뱅뱅이는 정말 맥주와 잘 어울렸다. 짭짤하니 중독되는 맛이었다. 어죽은 몸보신하는 맛. 감기 걸렸을 때 생각날 것 같은 죽이었다. 동행인들은 나 포함 세 명 모두 서로 초면이었으나, 그다지 어색하지 않았다. 영화제와 영화이야기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점심을 함께 했다. 이후 밤에 덕유산 대집회장에 동행하기로 했다. 나는 오후 4시 30분에 다음 영화가 있어서 다시 영화관으로 향했다.
<3670>, 박준호 감독 作 (2025)
솔직히 스토리가 너무 유치했다. 2025년 대한민국 사회에서 소수자 중의 소수자인 탈북민이자 동성애자인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거들떠도 보지 않을 전형적이고 유치한, 그렇다고 특별히 매력적이지도 않은 사랑 이야기. 바꿔 말하자면 탈북민이자 게이라는 이중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탈북자 커뮤니티에서도, 게이 커뮤니티에서도 외로운 이중 소수자, '철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영화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그런 영화'가 될 수 있었던... 전형적으로 뻔하고 미숙한 사랑 이야기였지만 감독의 어수룩한 척하는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가 영화에 대한 평가를 한 단계 올려줬다. 인물들의 감정선을 참 섬세하게 캐치해 냈다. 어느 순간부터 철준의 용기에, 철준의 속앓이에, 철준의 상처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철준의 '회전목마' 열창은 빙빙 돌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용기를 준다. 영화관을 나서는데 발걸음이 가볍더라.
영화가 끝난 뒤 무주산골영화제의 백미인 덕유산 야외상영장에 자리를 잡았다. 모기에 물릴까 살짝 걱정이 되었으나 추워서 모기는 없었다. 마이클 그레이시 감독의 <베러맨>과 션 베이커 감독의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감상했다. 구름이 많아 별은 보이지 않았지만, 차갑고 상쾌한 밤공기와 치킨을 곁들인 소맥, 야외상영의 삼박자는 완벽했다. 그때 그 시간을 두 글자로 쓰자면 낭만임이 분명했으니.
3일 차
아침에 이틀간 묵었던 게스트하우스 자리를 정리하고, 캐리어를 들고 나와 카페에 한 번 더 들렀다. 오늘도 커피 한 잔을 선물 받았다. 사장님께 감사인사를 전한 뒤 다시 예체문화관으로 향했다. 짐 보관소에 캐리어를 맡긴 뒤 마지막 날인 만큼 부대 행사들을 쭉 돌아보고, 아침 겸 점심을 먹으러 향했다.
3일 간 여정의 마지막 식사는 삼용이네에서 했다. 보쌈 정식에 천설주를 곁들였다. 보쌈은 양이 적어 보이지만 적당했고, 고기가 부드러웠다. 겉절이가 맛있었다. 막걸리는 천마가 2% 함유된 막걸리인데, 부드럽게 넘어갔다. 천마향이 짙지는 않았고 그냥 일반적인 막걸리 맛이었는데, 내 입맛에는 많이 달았다.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입맛인지라, 객관적으로는 보쌈이랑 잘 어울리는 술이었다.
이후 마지막으로 수상작을 관람했다. 수상작 상영1은 대상인 '뉴비전상'을, 수상작 상영2는 '감독상'을 상영했는데, 내가 예매한 것은 수상작 상영2였다. 감독상 수상작은 <3학년 2학기>였다.
<3학년 2학기>, 이란희 감독 作 (2024)
견뎌내는 만큼 줄곧 담담한 척, 가혹한 만큼 자주 울컥이고 울렁인 105분.
다정과 안전이 당연한 세상이 되길 바라며.
올해 무주산골영화제에서 본 경쟁작 중 가장 좋았다. 연출은 담담했다. 아이들이 괜찮은 척 견뎌내고 이겨내는 만큼 담담했다. 현실은 이제 막 사회에 나아가는 아이에게 한없이 가혹했고, 과하지 않은 연출은 그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 105분간 얼마나 가슴이 울렁이고 또 울컥였는지. 눈시울을 붉힐지언정 어른 앞에서 눈물 한 번 제대로 쏟지 않는 창우를 보며 입술을 몇 번이고 물었다.
나는 사람이 일하다가 죽을 수 있는지 몰랐어.
열아홉 살이 그걸 어찌 알겠는가. 애초에, 어째서 안전함이 당연한 것이 아닌 것일까. 어째서 가혹함이 어리숙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까지 해당되는 것일까. 사회는 노동의 대가가 안전하지 않은 것이야말로 당연한 것처럼 군다. 자꾸만 사람이 일하다 죽는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반복된다. 영화는 무엇을 고발하겠다 외치고 있지 않지만 현실을 똑바로 응시한 채 외압을 견디며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나이를 먹고 마주하는 현실의 폭을 조금씩 늘려가며 사람은 변하거나 성장한다. 열아홉에서 스물이 된다는 것은 조금 더 특별한 변화다. 나 역시 그 변화를 겪었던 사람으로서 창우의 불안함에 공감했고, 그 아이보다 어른으로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가 너무 많은 것을 견뎌야 함에 가슴이 아렸다. 미친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창우들을 응원한다.
찾아다닐 수밖에 없는 것들에 대하여
축축한 초여름의 흙내음 섞인 공기. 밤이 되면 떨어지는 산골의 기온과 서늘한 바람. 숙소를 나오면 느껴지는, 녹음의 짙은 향을 가득 안은 아침 바람. 구름 낀 하늘에 쏟아질 것 같은 별은 보이지 않았지만, 가로등이 없는 동네의 새끼만 하늘. 그곳에서 연주되는 어떤 영화들의 선명한 선율. 갑작스럽게 닿은 새로운 인연. 상영관 1층에서 나던 아래층 수영장 냄새와 작지만 정이 들어버린 상영관. 영화관에 들어가며 가진 설레임, 나오며 느낀 만족감 또는 아쉬움. 시간이 멈춘 것 마냥 현실에 얽매일 필요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던 사흘. 찾아다닐 수밖에 없는 것들의 단상들이다. 수많은 이들이 영화제에 중독되는 이유이기도 하겠지. 영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니 영화제도 계속될 것이다. 다음 여름에도 무주에 다시 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