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우리는 결국 지구를 위한 답을 찾을 것이다』
푹푹 찌는 날씨가 연일 가라앉을 생각을 안 한다. 더위에 무척이나 약한 나로서는 여름철에 쉽사리 피로를 느끼고 잠이 많아지는 터라 운동하는 시간 역시 자연스레 줄어든다. 체력 관리에 소홀하다 보니 건강은 갈수록 나빠지고 결국 더 많은 피로를 부르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여름의 내음이 짙어질수록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모종의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어나는 이유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더위가 온몸을 감싸고 놓아주지 않을 정도로 기승을 부리진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해가 갈수록 체감온도가 훅훅 오르는 걸 피부로 오롯이 느끼고 있자니 지구온난화라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전 지역 어디서나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임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이 들쑥날쑥한 기현상이 눈에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도 아니거니와 더욱이 양극단의 계절에만 그 위세를 경험할 수 있는 특수성 때문에 ‘그저 지금만 버티면 그만’이라는 태도로 상황에 임해버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그 안일한 태도의 기저에는 초등학교 적부터 수백 번은 들어온 ‘지구온난화’라는 말에 너무도 익숙해진 나머지 기후변화 현상 자체에 그리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도 깊숙이 깔려있듯 싶지만 말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곧 그러한 이유로 인해 우리는 지구온난화가 현재 심각한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테다. 이러한 전제 아래 책 <우리는 결국 지구를 위한 답을 찾을 것이다>는 기후위기를 전후한 오랜 역사부터 이상기후의 결정적인 원인 및 시사점까지 다양한 정보를 종합하여 독자에게 제공한다. 나아가 새로운 시대를 주도하기 위한 국가와 개인적 차원의 노력까지 한차례 짚어줌으로써 궁극적으로 지구온난화를 다각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고 다가갈 수 있게끔 도와주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책의 저자인 김백민 작가는 극지 전문가이자 기후과학자이다. 그는 2014년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기후변화가 북극과 큰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고작 첫 장을 읽으면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지구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우리 인류가 상당히 추운 시기에 살고 있다는 점이었다.
매년 다가오는 한여름 더위에 두 손 두 발 다 드는 나로서는 지금보다 훨씬 뜨거운 지구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심지어는 지금 밟고 있는 이 땅이 탄생 초기에는 수천 도가 넘는 불덩어리 그 자체였다는 사실이 여간 믿기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때 생명체가 살지 못할 정도로 이글이글 타오르던 세상은 이후 언제 그랬냐는 듯 돌변 추워지며 눈덩이 지구로 바뀌기도 했단다. 빙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몇천 도를 오가던 과거의 지구 앞에서 끽해야 수십도 안팎으로만 움직이는 요즘 날의 날씨가 사뭇 초라해지는 순간이다.
저자가 들려주는 지구의 기후 역사를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다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인류가 얼마나 수많은 우연성을 거쳐 기적적으로 탄생한 존재인지를 말이다. 만일 태양 빛의 세기와 온실기체의 절묘한 균형이 오래전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면 오늘날의 인류는 태곳적부터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태양 빛이 약했던 과거에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량이 지금보다 1,000배 이상 많아 온실효과로 지구를 극심한 추위에서 지켜줬고, 태양 빛이 점점 강해지는 시기에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줄어들면서 지구가 지나치게 뜨거워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 『제1장. 지금보다 10°C 더 뜨거운 세상이 있었다』 중에서
이 진귀한 균형이 생명의 생존, 더 나아가 인류의 출현에 필요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또 다른 예로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도록 몇억여 년 동안 대기에 대량으로 산소를 공급한 ‘시아노박테리아’의 출현이 없었더라면? 혹은 태양과 조금 더 가깝다는 이유로 지금의 금성과 같이 넘실대던 바다가 모두 증발하고 온실효과로 500°C 이상이 꾸준히 유지됐다면? 지구는 금성에 이어 ‘제2의 죽음의 행성’으로 거듭나 생명체가 살지 않는 황량한 땅이 되어버렸을 수도 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오랜 역사와 우연을 스쳐온 지구의 변화무쌍한 기후변화 중 대부분을 인간이 전혀 겪어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금껏 10번이 넘는 빙하기를 거친 후 약 2만 년 전부터 시작된 간빙기가 이전의 간빙기와는 달리 이상하리만치 안정되고 따뜻한 기후가 오래 유지되는 것이었다.
탄생 초기부터 혹독한 자연환경과 싸워온 인류를 위해 지구 혹은 신이 축복을 내려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라고 저자는 말한다. 만일 이 모든 것이 인류의 행보를 판단하기 위한 신의 계략이었다면, 그는 현재의 병든 지구를 보면서 조금은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결국 인류는, 저자의 말과 같이 기후위기를 넘어설 답을 찾아낼 존재이기에. 새삼스럽지만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삶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도록 이 땅을 내어준 지구에 연일 감사함을 느끼고 이 푸른 행성을 조금은 더 소중히 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제5장에서 언급된 ‘카야 항등식’이다. 카야 항등식은 온실기체가 증가하는 요인을 분석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등식으로서 결과적으로 ‘전 세계가 잘살게 될수록 온실기체를 많이 배출한다’는 결론을 내놓는다. 개인적 차원으로 범위를 조금 더 좁혀보면 윤택한 삶이 온실기체를 많이 배출하는 삶이란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부자가 될수록 온실기체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걸 의미하며 같은 선상에서 온실기체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개인이 윤택한 삶의 일부를 포기해야 함을 뜻하기도 한다. 카야 항등식의 결론에서 도출할 수 있는 핵심 철학은 갈수록 윤택한 삶을 추구하는 개인의 이상과 열망이 환경적인 측면에서 온실기체를 더욱 적게 배출해야 하는 ‘불편한’ 삶과 끊임없이 맞닥뜨리고 대립한다는 것이다.
그래. 나도 잘 알고 있다. 기후위기가 현재 심각한 단계이고, 이것이 악화하는 현상을 막기 위해 전 인류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도. 그러나 윤택한 삶이 주는 일상의 편리함은 나를 늘 흔들리게 한다. 당장 무더위를 벗어나기 위해 눈앞의 에어컨과 선풍기를 틀고, 높은 건물에 들어서면 자연스레 엘리베이터 앞으로 향하는 일이 다반사다. 매주 아르바이트 장소까지 가는 데 들어가는 교통비도 줄일 겸 대중교통 이용을 줄이기 위해 야심 차게 사 놓은 자전거도 정작 요즘은 더운 날을 핑계로 자꾸만 외면하게 된다.
그나마 카페에 갈 때마다 주섬주섬 챙겨가는 텀블러 하며 슈퍼 혹은 편의점을 향할 때마다 들고 나가는 장바구니, 덧붙여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 배달음식도 최대한 자제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매번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기후위기에 맞선 환경적인 노력은 물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개인에게 삶에 대한 일말의 희생을 반드시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다시 말해 기후위기를 해결해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기후위기로 파생된 전 지구적 변화가 현세대의 인간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 나아가 지구 생태계를 살아가는 모든 생물 종에 방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인간은 현재 인류가 빚어낸 지질시대인 인류세에 접어들면서 살기 좋고 쾌적한 지구를 만든다는 명목 아래 지구환경을 크게 바꾸어나가고 있다. 저자는 이와 같은 급진적 변화가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명에게는 수억 년 동안 이어져 온 삶의 터전이 초토화됨을 의미한다고 명시했다. 그 결과 인류를 제외한 대부분 생명체가 생존을 위협받고 급기야 많은 종이 멸종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고 말한다. 이른바 '제6차 대멸종'이 시작되었다고 경고하는 연구 결과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이유다.
다양한 생물 종이 감소하면서 결국 그 피해는 인류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온다. 지구상의 특정 생명체가 사라지면 그 생명체가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수행하던 중요한 기능도 함께 사라지게 되어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자리한 인간 역시 그 필연적 재해를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대로 인류는 여섯 번째 대멸종을 피해갈 수 있을까? 환경을 지키는 것은, 곧 대지를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와 전 세대, 그리고 지구 생태계를 지키는 것임을 기억하며. 인류는 부단히 힘을 합쳐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늘 답을 찾아왔고, 찾았으며, 찾아갈 존재이기에.
“인간의 행동으로 대량 멸종이 초래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미래 세대가 가장 용서하지 않을 범죄다.”
- 에드워드 O. 윌슨
전문은 아트인사이트에서도 확인 가능합니다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5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