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음식
2023년 겨울,
세비야의 알지 못하는 거리에서 공항이 왔다.
고명하다는 가게의 디너코스요리를 먹었는데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여행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아 신체적˙정신적인 체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나긴 전채코스 다음으로 본식인 양고기 스테이크가 나왔다. 육안으로 보아도 퍽퍽해 보이는 양고기를 작게 잘라 입안에 넣는 순간 잡내와 함께 향수가 일렁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숨을 쉬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나가야만 했다.
여행으로부터 사진, 동영상, 일기, 기념품 따위가 아닌 음식을 행行갈피(글_'당신의 행行갈피는 무엇인가요?'참조)로써 가지고 오게 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이미 수년 전부터 이루어진 문화개방으로 여러 나라 음식을 간편히 맛볼 수 있게 되었을 뿐 만 아니라 ‘톡파원 24시’, ‘세계테마기행’과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출연진들의 훌륭한 맛 표현과 인간의 시력보다 좋은 것만 같은 화질로 낯선 음식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2017년 여름, 나는 몽골에 있었다. 봉사를 하러 갔는데, 하루는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 도심에서 벗어나 노는 시간이 있었다. 비포장 도로를 지나 도착한 곳에는 말도 안 되게 넓은 초원이 놓여있었다. 분지 형태였는데, 그 초원이 어찌나 드넓은지 중간즈음에 있는 공중화장실이 레고모형 같이 보이기도 하였다.
늠름한 말도 있고 귀여운 양도 있는 자유로운 초록의 초원에서 동료들은 마구 걷고, 앉아서 쉬고, 사진을 찍는 자유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그곳은 초원이다. 있는 건물이라곤 공중화장실이 다였다. 두 볼이 불그스레해서 왠지 부끄럼을 타는 것 같은 현지사람 몇 분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고 그중 가장 볼이 붉었던 아주머니가 양을 데려왔다. 아까 친구들과 같이 사진 찍고 마구 귀여워하는 시간을 보냈던 바로 그 양이었다.
예리한 직선을 긋자, 연회색과 초록사이로 선홍이 흘러나왔다. 양이 눈을 감지 않은 것을 나는 보았다. 그리곤 그 작은 몸에 어떻게 들어가 있었는지 의문이 드는 분량의 내장이 쏟아져 나왔다. 옆에는 가마솥에서 김이 나고 있었고, 소리 없는 경악을 내지르던 우리는 숙연해진 채 자리를 떠났다. 다시 돌아오라는 얘기를 듣고 찾아간 곳엔 붉은 볼 아주머니만 계셨다, 찐 내장 그리고 약간의 채소를 곁들인 삶은 고기와 함께. 그 주위엔 따듯한 양고기 잡내가 풍기고 있었다.
이미 냄새에 압도된 대부분의 동료들은 사색이 된 얼굴을 하며 굶겠다고 했고, 몇 명은 호기롭게 도전했다가 오만상을 찌푸리면 떠났고, 소수는 맛있게 먹었고 또는 맛있게 먹는 척을 했다. 가장 후자가 나다. 붉은 볼을 한, 왠지 모르게 순박한 미소를 띠고 있는 그들의 호의를 무시할 수 없었던 나는 맛있게 먹는 척을 했다. 선홍빛 피와 양의 눈, 그리고 비위를 거스르는 냄새가 목구멍을 막아대서 괴로웠다. 그것이 양고기 첫 경험이었다.
그렇게 양고기는 나에게 ‘X’가 되었다.
그 후 어쩌다 회식으로 양고기를 다시 한번 대면하고서는 놀랐다, 잡내가 거의 나지 않는 것이었다. 양고기가 이런 맛이었다니, 하며.
그렇게 칭따오를 곁들인 양고기는 ‘X’에서 ‘△’가 되었다. 하지만, 먹은 뒤 미세하게 올라오는 잡내는 몽골 초원을 떠올리게 했고, 그래서 끝끝내 ‘O’이 되지 못했다.
‘△’ 양고기를, 세비야에서 한입 했을 때 심한 잡내가 올라왔다. 그와 같이 몽골의 향수가 밀려들어왔다. 한 입에 연회색과 초록 사이의 선홍, 한 입에 무언가를 응시하는 양의 시선, 또 한 입에 경악하는 친구들의 표정, 마지막 한 입에 붉은 볼을 한 사람들.
그것들이 트리거가 되어 나는 가게를 뛰쳐나가 알지 못하는 세비야의 거리에서 숨을 밀어 넣으며, 내 안의 구역질 나는 것들을 희석시켜야 했다. 같이 세비야를 갔던 여행메이트인 고모와 고모부에게는 급체를 한 것 같다고 둘러대고 눈물을 마구 흘려댔다. 아마 내가 사실을 말하지 않아도 그들은 조카의 눈물이 양고기 탓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나의 손을 두 분이 양쪽에서 꽉 붙잡고 걸었던 것을 떠올리면 말이다.
음식의 기억은 의도한다고 가져올 수 있는 행갈피가 아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여행에서 가지고 오게 되는 건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추억을 먹고사는 우리에게 일용한 식량이 될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행여 필자의 양고기같이 아름답지만은 않은 행갈피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풍족한 마음으로 간직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