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동생의 관계

여행과 반려식물

by 정주구


여행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왠지 모르게 낯선 느낌이 들곤 한다.


혼자 불을 켜고 들어가서는 아직 내 냄새가 나는 낯선 그곳을 두리번거리다가 한 곳에 시선이 닿으면 안심한다.

창가에서 나를 기다렸던 그것과 눈이 마주치면 안도의 숨을 내쉰다.


'아- 드디어 돌아왔구나, 똑같은 이곳에.' 하며.




우리 집엔 반려伴侶가 있다. 동반자겸 짝꿍인 그것은



1. 매일매일 믿을 수 없을 만큼 조금씩 자란다.

2. 하지만 확실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생장한다.

3. 사시사철 푸르다.

4. 아주 여린 것이 훗날 아주 단단한 것이 된다.



나는 나무를 키우고 있다. 10년 후에는 레몬을 맺는다고 하는 걸 보니 레몬나무 인가 하며 어림잡아 짐작한다, 지금은 그저 20센티 조금 넘는 초록일 뿐이기에.

'양지구언니'가 2022년 1월에 택배를 보냈다. 받는 이는 '정주구'로 되어있었다. <취급절대주의>라고 써져 있는 걸 보곤 조심조심 열었더니 정말 <취급절대주의> 해야 하는 주먹만 한 화분 하나가 있었고 그 위에는 여리디 여린 초록 떡잎 한쌍이 틔어 있었다. 어찌나 설계 고안을 잘해서 보냈는지 택배 박스 안에는 흙 한 줌 떨어져 있지 않았고 행여 목이 마를까 물에 적신 휴지를 화분 표면에 덮어서 보냈다. 작은 초록과 함께 박스를 가득 메우고 있는 소중한 마음도 같이 받은 것이다.

뜻밖의 초록은 어느 겨울, 나의 반려식물이 되었다.


퇴근 후에 터덜터덜 집에 들어오면 창틀에 놓여있는 작지만 든든한 실루엣이 보였고 나는 위로받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그 왜소한 윤곽으로부터 위로받던 여러 밤들이 생각난다.


'너는 오늘도 많이 자랐구나- 언니가 늦어서 미안해- 내일은 일찍 올게' 하며 인사하면 그는 보답하듯 잎을 살짝 흔들었다. 말소리의 파동이 닿은 것일 테지만, 그건 개의치 않는다.


양지구언니는 하나의 레몬에서 동시에 얻은 씨앗 세 개를 싹 틔워 나를 포함한 세 명에게 보냈다. 그중 '그루(나의 작은 레몬나무의 이름)의 성장이 가장 더디다. 그들의 잎은 벌써 손바닥만 하고 풍성하다. 그루의 가장 큰 잎은 그들의 3분의 1이 될까 말까 한다. 속이 상했다. 느린 아이를 키우는 기분이 들었다. '좋은 말도 해주고 물도 잘 주고 영양제도 잘 주고 관심도 잘 주는데 왜-' 하며 책망하다가, '그래- 우리 그루는 건강하게만 자라줘' 했다. 여러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는 인정한다. 그루는 자신의 속도로 자라고 있을 뿐인 것이다. 이제 퇴사를 하고 매일 마주하다 보니 그 성장이 날로 눈에 보인다. 미세하지만 부모들만 아는 차이랄까.

그루의 이파리가 며칠이고 성장하지 않아도 이제는 걱정하지 않는다. 그 시기에는 잎을 지지하는 줄기가 단단해지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단단한 한 겹을 그 여린 것이 만들어내는 게 참 신기할 따름이다. 겹을 만들어내는 긴 시간을 겪은 후, 그루는 새로운 잎을 틔운다. 느리지만 안정적이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매일 그루에게 배우고 있다.


회사일로 긴 출장을 가거나 여행을 갈 때면 그루가 생각난다. 그루가 목이 많이 마를 정도의 시간을 가진 않았지만 그래도 항시 가기 전에는 물을 듬뿍 주고 창가에 정확히 둔 후, 현관문을 나서기 전에 한번 더 확인하고 나간다. 사실, 나는 그루가 외로울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 주인장 이게 무슨 오그라드는 소리요, 이건 식물이잖소. 하겠지만, 이 필자는 정말로 걱정을 한다. 이 걱정을 그루가 듣는다면 사춘기 소녀처럼 떡볶이 대신 물을 듬뿍 퍼먹으면서 '언니 지금 뭔 소리를 하는겨'하고 부끄러워할 것만 같다.

부모의 마음이란.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현관문에 들어오면 안정적인 냄새가 나는 낯선 공간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 여행지에서 숙소를 찾을 때처럼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창가의 그루를 보면 집의 분위기가 화-악 하며 바뀌는 것을 나는 느낀다. 그동안 새끼손톱만큼 자란 것을 대견하게 여기며 말을 건다. 너도 나도 그 시간 동안 성장했구나-


여행에서 되돌아왔을 때 나를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란,

긴 여행을 갈 때 스스로의 부재를 걱정하게 하는 반려란,

이전의 외로움을 자각하게 만드는 동반자란,



나는 이제 긴 여행 못 간다,

집에 기다리는 동생이 있어서.




<사진> 식물과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