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짐과 흐름의 관계

여행과 바다

by 정주구


모태산인山人이라지만, 51 대 49 비율로 근소한 차이다. 바다와 산을 고르라면 말이다.


바다는 계속 변함으로써 변함없음을 유지한다. 거기서 나는 안정을 취한다. 아니 위로라고 해야 할까.


어제는 산에 대해 생각했으니 오늘은 바다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오늘은 49퍼센트에 대해 생각하고 싶은 날이니.




나서부터 줄곧 서해바다만 접해서 그런지 바다는 회색빛이 기본인 줄 알았다. 대학 때문에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 응당 그렇게 믿었다. 푸른 동해와 투명한 남해를 몇 번이고 접한 지금도 사실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동해와 남해는 '별종'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곳이 바다의 고향이라 그런지 남들이 생각하는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는 해수욕장의 모습과는 다르게 나는 쓸쓸한 색감을 떠올린다.


끊임없이 어디론가 흐른다. 결국은 어딘가에 닿는다. 부서진다. 돌아간다. 또다시 어디론가 흘러간다.


바다는 일련의 과정을 하염없이 반복한다, 저 멀리에서 흘렀다가 결국에는 여기 와서 부서지고는 다시 어딘가로 돌아가는 과정을. 흐르는 모습과 부서지는 모습 중 무엇이 더 좋냐 묻는다면 나는 고민 않고 후자를 선택한다. 이것은 51 대 49처럼 근소한 차이가 아니다.


정처 없이 어딘가로 흐르는 모습은 여행자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부럽지만서도, 뿌리 없이 부유하는 것처럼 느껴져 오싹한 기분이 든다. 뿌리 없이 표류하는 여행자라, 나는 그런 것을 무서워하고 있는 가보다.

부서지는 모습은 위안을 준다. 수 만 km를 흘러온 결과가 고작 소리를 내며 산산이 부서지는 게 다 인데도 곧바로 모여 다음 여행을 시작하는 모습이 주는 그 씩씩함에 위로받는다. 마치 '부서져도 괜찮아, 나를 봐-'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부서지고 싶을 때면 바다를 떠올린다.




바다와 산은 대척점에서 서로를 바라본다.

어디로든지 흐르는 것과 한자리에 성근이 뿌리내리는 것.

그 어중간한 사이, 나는 그 어디쯤에 서 있다.


나무의 안착을 지향하면서도 바다의 자유로움 흠모한다.

뿌리를 내리고 싶지만서도 어딘가에 구속되는 것은 싫은, 그런 어지러운 상태라는 말이다.



나는 부서지고 싶을 때 바다에 간다.




<사진>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