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의 법칙
나는 지금 시간을 거스르고 있다.
기내에 착석하고 이륙과 함께 좌석벨트 표시등이 꺼지면 묘한 희열이 느껴진다. 시간을 거스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벗어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으로부터 도망칠 뿐만 아니라 절대적인 무언가 위를 뛰어다니며 또다시 어떤 절대적인 것의 지배를 받을지 선택함으로써 순간 몇 시간 동안 나는 절대적인 것 상위의 존재가 된다. 매일 같은 시계의 태엽을 감다가 오랜만에, 새로운 시계를 선택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같은 태엽을 감고 비슷한 긴장이 퍼져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 그런 것들로부터 작별하는 것이다.
좌석벨트를 풀고 다시금 눈을 감았다. 누군가 시계 태엽을 감는 일과 엔트로피의 법칙, 삶에 대해 얘기한 것이 생각났다. 태엽을 감으면 내부에 가한 긴장이 풀리며 톱니바퀴가 돌아가서 동시에 모든 것이 조금씩 무질서해진다는. 사람 또한 시간에 따라 점점 무질서해지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바로 엔트로피의 법칙에 굴복하는 것이라는 얘기였다. 갑자기 잘 알지도 못하는 과학이론이 떠오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왜인지 모르게 엔트로피의 법칙은 여행 내내 기억의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시 눈을 뜨고 기내 디스플레이를 보며 지구본 같이 떠 있는 지구의 모습을 바라봤다. 여러 개의 시계 톱니바퀴로 구성되어 있는 지구에서, 제각각 돌아가는 톱니바퀴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을 했다. 착륙하면 그 구간의 톱니바퀴가 나를 잘 받아줄까, 혹시나 끼어들어가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비행시간을 확인했다. 도착까지 열두 시간 남짓 남은 것이 보였다. 다음 톱니바퀴는 멀구나 하고 생각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