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해야만 하는 이유

여행의 이유

by 정주구



그런 사람, 그런 사랑 그리고 그런 인생이
이 세상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그런 세상의 일부인, 나의 존재를 분명히 이해하는 것



바르셀로나의 빈티지마켓에서 구매한 어느 무명 화가의 습작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익숙지 않은 환경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돌발상황에 대처해야 하고, 그에 따라 평소보다 조금 더 피로해지며, 운이 좋지 않으면 위험한 일에 휘말리게 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특별히 시간을 따로 마련해야 하고, 많든 적든 돈을 써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꽤 자주 훌쩍 떠나버리곤 한다.

마치 꼭 그래야만 살 수 있는 사람처럼.

나는 생각해야만 했다.

스스로에게 여행은 살아감에 있어서 왜 필수불가결한 것인지, 왜 나는 자꾸만 떠나야만 하는 것인지 말이다.




낯선 곳에 떨어지게 된다.

편한 세상에 태어나서 가고픈 모든 곳을 4k 해상도로 예습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화질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화면이 극적이면 극적일수록, 실제 그곳에 떨어졌을 때의 낯선 느낌은 배가 된다. 마이너스인 본인 시력보다 과하게 좋은 화질 탓도 분명 있을 것이다. 영상과 구글 이미지로 예습했던 것과 다르게 한결 낙후되고 색이 바랜 그곳들은, 어쩌면 다행히도 우리를 완전한 이방인으로 만들어준다.

그렇게 우리는 예상과 다른 곳에 뚝하고 떨어진다. 낯선 곳에서는 낯선 것 투성이. 좁은 세상(일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에서는 감히 경험할 수 없던 것들을 접하게 된다. 그 앞에 우리는 모두 서툴다. 낯선 패션스타일, 라이프스타일, 말투, 매너, 사람의 생김새, 향, 건물의 디자인, 관계, 지형, 풍미, 자연, 색감, 소리, 날씨 같은 것들과, 해결을 필요로 하는 돌발상황 앞에서 말이다.


여행의 한복판에서는 위에 나열한 낯선 무리들을 결코 무시할 수 없기에 알음알음 그것들을 인식하고 이해해야만 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가령, 나의 일상에는 없지만 스페인의 거리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오렌지 나무들은 나에게 'yes'로 인식되고, 스페인 가게들의 긴 브레이크타임은 'no'로 인식된다.

생경하게 마주하는 모-든 것들을 'yes'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yes'든 'no'든 일단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행을 통해 쌓인 'yes'와 'no'들은 세상을 인식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이 세상에는 내 인식 밖의 많은 일이 일어나곤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나만의 좁은 세상 너머에 낯선 무리들이 분명히 실제 한다는 것을 이해하며, 나의 영역은 점차 넓어진다.




혹자는 질문할 수 있겠다. '나' 외의 것을 이해하는 게 도대체 왜 중요하느냐.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인데, 하며.


'나'와 상호작용하는 것에 '나'도 포함되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타인의 모습을 한 '나'는 '나'에게 가장 많은 질문을 던지고 때론 선택하기를 보채고 결과에 대해 비난하고 지나간 과거를 책망하고 다가올 미래를 따져 묻는다. 어쩌면 정말로 완벽한 타인은 자기 자신일 것이다.


그런 사람, 그런 사랑 그리고 그런 인생이 이 세상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또한 그런 세상의 일부인, 나의 존재를 분명히 이해하는 것.


그것이

내가 여행을 해야만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