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나 깊은 현재가 있다.

잠들지 않는 손 그리고 고모

by 정주구


여행으로부터 돌아와서,
비로소 나는 이 여행이 좋아지는 중이다.


나는 여행 중 자주 그녀의 손을 잡았다.
때때로, 그냥 그렇게 나는 하고 싶었다.


나도 옛날에는 너처럼 여린 애였어.
그것만 알아둬.


리스본 벨렝 탑 맞은편의 초록에서의 고모


고모와 나는 많이 다르다.



리스본에서의 이른 밤에 고모는 잠을 자고 있었다. 아주 혼곤한 잠에 빠져있는 게 느껴질 정도로, 맛있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누구라도 입맛을 다실만한 그런 단잠이었으리라. 설령, 이 잠을 위해 많은 수면제의 힘을 빌렸다 할지라도.




그녀의 어머니는 일찍이 남편과 헤어졌다. 그래서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그녀는 편부모 가정에서 자라게 되었다. 옛날이야기를 할 때면, 뒤에 이어지는 얘기가 어찌 됐건 간에 나의 아버지와 고모는 입을 모아 '여자 혼자 아이 키우기 참 힘든 세상이었어.'를 덧붙인다, 그 누구도 그들의 어머니를 모함하지 않았는 데도 말이다. 내가 어렸을 때의 할머니를 회상해 보면, 황소가 연상될 정도로 그녀는 강하다 못해 성난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아주 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빚도 아주 많은 사람이었다.


고모는 울며 현금 다발을 세고 있었다고 했다, 지금의 나보다도 한참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서. 지방의 작은 읍내에서 하룻 장사로 번 것이 그리 많은 돈은 아니었을 테지만, 돈은 어린 그녀가 관리했다고 한다. 돈을 세는 그런 류의 복잡한 행위는 어린 또 여린 그녀의 손에 쉬이 익지 않았으리라. 자꾸만 실수가 생겨서는 몇 번이고 같은 돈을 세었으리라. 설상가상으로 그 미숙함에, 눈물 닦는 손마저도 도움 되지 않았으리라.

지는 해를 뒤로 하며 남아있는 빚을 헤아리고, 일출과 함께 만두를 빚고 김밥을 말던 그녀의 유년시절을 나는 감히 가늠해 본다. 그로부터 멀지 않은 훗날, 어린 그녀로부터 밤과, 낮과, 눈물을 몰수했던 어머니의 빚을 모두 탕감하고 공교롭게도 그녀는 요식업의 대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밤과 낮과 눈물과, 그리고 여린 손은 더 이상 없어진 채로.


이십 대 초반에 사업을 시작한 이후 30년 동안 요식업의 범주안에서 갖가지 부류의 사업을 했고, 모두 만족하며 끝을 냈다. 그들 안에서 그녀의 역할은 제각각 '요리'의 행위에 가깝거나 약간의 거리를 둔 채 달라져갔다. 다만 대망의 마지막 비즈니스에서 그녀는, 마침내 '요리' 그 자체로 지내게 되었다. 30년을 돌고 돌아 결국 '요리'로 끝맺은 것이다.

유년시절의 빚, 그 사연 하나만을 원동력 삼아, 쉬지 않고 30년을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후에도 내가 함부로 상상할 수 없을 법한 시련이 끊이지 않았다는 걸, 사실 나는 안다.


나는 여행 중 자주, 그녀의 손을 잡았다. 때때로, 그냥 그렇게 나는 하고 싶었다. 그것은 단단하고 약간은 굽어있었다. 본체는 얇고 매가리가 없는데 그것만은 굵고 야무지니, 자리를 잘못 찾은 퍼즐인 것만 같았다. 분명 혼곤한 잠에 빠져있는데도 왠지 모르게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움켜쥘 것만 같은 그런 손이었다. 잠들지 않는 그 손은, 제 주인을 지키는 신경질적인 도베르만처럼 예민하고 강해 보이기도 했다.

30년 간의 빈틈없는 노동 끝에 처음 온 여행인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꾸만 새로운 시작을 구상했다. 여행 기간 내내 일종의 약속처럼 돈벌이에 대해 얘기하는 걸 보며, 이런 것도 어쩔 수 없는 습관이려나 하고 나는 생각할 뿐이었다.




후에 여행이 끝나고 그녀의 시크한 포르쉐를 타며 달리고 있을 때, 문득 잃어버린 물건이 생각난 듯이 그녀는 말했다.


'나는 사실 고마운 마음도 있어. 그때 그런 일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이런 정신력을 가질 수 없었을 거야. 그렇게 되면 돈도 이만큼 못 벌었을 테고. 그래서 나는 그 부분은 고맙게 생각해. 뭐든 당연한 건 없으니까.

그 기억이 상처가 되진 않았냐고? 뭐 어떡해. 이미 벌어진 일이고, 해결해야 했고, 해결했고,

이 왕이면 그 기억을 내 발전 기반으로 삼으면 좋잖아.

뭘 자꾸 물어 가시내야. 나도 옛날에는 너처럼 여린 애였어. 그것만 알아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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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으로부터 돌아와서, 비로소 나는

이 여행이 좋아지는 중이다.




리스본에서의 밤의 기록 _ 따듯한 빛이 인상적이다.
리스본에서의 흐린 낮의 기록
리스본에서의 아침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