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타인
이번 여행을 마친 후, 그 간의 나의 모든 여행을 꺼내놓고 생각했다.
'관계의 여행이라는 것이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나의 치부를 보여주고,
너의 모서리를 느끼는 과정을 분명히 겪는다.
그런 류의 특별함도 있더라-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한다.
어쩔 수 없다-라는 무책임한 태도를 덧붙이며, 나는 '어쩔 수 없이'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한다. 그리 적지 않은 사회에 속하며, '타인은 지옥이다. 그것도 아주 생생히 살아있는 지옥이다-'고 속으로(라기엔 이전에 글로 써본 적이 있지만)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예전에 발행했던 글에서도 얘기했으니, 그 정도가 얼만큼인지는 더 설명하진 않겠다. 괜히 머쓱한 시간을 오래 만들고 싶진 않으니 말이다.
나의 치부, 더불어 너의 결핍이 갑작스레 공유되는 교통사고 같은 상황이 싫다. 나의 부족함을 보이며 상대의 의중을 계산하는 것과 너의 모난 부분이 나를 자극하는 상황말이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싫은 건 어쩔 수 없다.
여행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나는 여러 번의 타인과의 여행을 경험했었다. 경험들을 토대로 곰곰이 생각하니, 타인과의 여행에서 '시련'의 역할을 하는 것은 가치관의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행은 인생을 이루는 작은 인생이다. 저마다 인생을 사는 법, 대하는 태도가 다른 것처럼 여행 또한 다들 비슷해 보이지만 저마다의 고집이 있다. 누군가는 단기간에 티비에서 봤을 법한 유적지를 탐방하는 것, 또는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하며 지도를 보지 않고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이는 것, 누군가는 그 여행지만의 음식이나 생활 따위 같은 문화를 경험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는 등 여러 가지의 서로 다른 고집이 있다. 이 우주에든 저 우주에든, 우리와 똑같은 우리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비슷해 보일 순 있지만 같은 것은 없다. 그런 가치관 사이의 간극을 나는 때때로 견디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간의 여행의 대부분을 타인과 함께 했다. 그중 자발적으로 간 것도 꽤 많다, 아니 상당히 많은 여행을 타인과 함께 했다. '애증'의 마음으로 함께 했다. 증애가 아니라 애증 했다. 그 둘은 미묘한 차이가 있어서 둘 중 어떤 마음을 고를지,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애증과 증애는 [사랑과 미움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는 같은 의미를 공유하는 동의어다. 사랑 애, 미울 증으로 한자 또한 같다. 다만 배열이 다르다. 애증은 사랑이 먼저고 증애는 미움이 먼저이다. 이런 해석으로 나는 타인과의 여행을 애증 한다. 그래서 그 간의 여러 타인과의 여행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애'를 관장하는 건 여행이다. 여행의 즐거움과 호기심이고, '증'을 관장하는 것은 타인이다. 타인과의 불안함, 불편함을 담당한다. 결국, 여행에 대한 호기심이 불편함을 이겨내어 그 간의 여행이 성사된 것이다. 그동안 그런 식으로 타인과의 여행을 견뎌냈을 것이다, 아마도,
이번 유럽여행 또한 타인과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여러 이전들보다 튀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아예 타인이라기엔 가깝고 가깝다고 하기엔 다소 어색한 친척과 함께 했다는 점이고, 국내여행이 아닌 유럽으로 장장 11일간의 긴 여행이라는 점이다. 이전에도 각각 비슷한 점을 가진 여행이 있었지만, 이런 조합은 처음이기에 준비 기간부터 불안에 절여져 있었다. 물론, 여행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어떤 나라에서든 시끄러운 캐리어 소리가 따라다니는 것처럼, 어디든 크고 작은 불협화음이 따라다녔다.
이번 여행을 마친 후, 그 간의 나의 모든 여행을 꺼내놓고 생각했다.
'관계의 여행이라는 것도 있다.'
타인과의 여행에는 관계의 여행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원하든 원치 않든 나의 치부를 보여주고, 너의 모서리를 느끼는 과정을 분명히 겪는다. 너의 부족함 뿐만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공유하는 것. 공유는 [두 사람이 한 물건을 공동으로 소유함]을 의미한다는 것과, 여행에 대해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자.
타인과 여행을 공유한다. 나만의 여행에 타인은 '행갈피'로서 여행의 시작부터 함께하는 셈이다. 언젠가 반드시 끝나는 순간을 공유하는 것. 같은 것을 보고 다른 것을 느끼며, 어쩌면 절대로 느끼지 못할 그 다른 것을 공유하며 여행의 풍미를 더해주는 것. 그것이 타인인 행갈피의 역할이며, 사람을 싫어하는 내가 타인과의 여행을 계획하는 이유이다. 웬만해서는 사라지지 않을 그 행갈피는 어쩌면 무한히 지속되는 관계 속에 여행을 공유하며 여행의 유한성을 지우고 그 공간을 보충할 것이다.
그런 류의 특별함도 있더라-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저 그뿐이다.
또다시 타인과의 여행을 준비하며 불안함에 질식될 테지만,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혼자서는 느끼지 못하는 풍미를 분명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런 류의 특별함도 있더라- 라고 말이다.
*이전에 발행했던 [당신의 '행行갈피'는 무엇인가요?], [여행을 상실할 때의 설렘에 대하여]가 이 글의 맛을 더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