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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 Jul 01. 2021

Family, 가족

스페인 바르셀로네타 해변에서 마주친 그 순간 가장 행복해 보였던 가족

2018년 5월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 인생에 이보다 더 

마음이 간질간질해지는 사진이 있을까.

어쩌면 평생 잊을 수 없는,

살면서 두 번은 찍지 못할 사진 한 장.

평생을 논할 만큼 기억에 남는 사진을 벌써 3년 전에 남기다니, 나는 꽤나 운이 좋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로또나 한 번 당첨되면 좋을 텐데.)

 

축구팀 바르셀로나의 간판 수비수인 

<제라드 피케, Gerard Pique>의 팬으로서

스페인 바르셀로나 여행은 그 시작부터 기대가 컸다.

(아 물론 언젠가 쓰게 될 스페인 경찰서 이야기가 나오면 말이 달라진다.)


바르셀로나 여행 2일 차. '바르셀로나 꼭 가봐야 할 곳'을 검색하면 나오는 람블라스 거리를 향해 길을 나섰다.

나의 여행이 대부분 그러했듯, 거기에 가서 뭘 하겠다 라는 목적의식 따위는 없었다.

람블라스 거리를 따라 계속 걷다 보면 바르셀로네타라는 해변이 나온다기에 그저 천천히 구경이나 하며 해변이 나올 때까지 걸을 생각만 있었을 뿐. 끝없이 길게 펼쳐진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역시 열정의 도시 스페인, 선선한 바람과 함께 땅을 향해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가 지면을 찍고 다시 길 위에 서있는 사람들에게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길거리 좌판에 진열되어있는 형형색색의 꽃들은 반사된 열기에 아지랑이 흔들리듯 흔들렸고 거리 곳곳에서 버스킹을 하는 청년들은 연신 몸을 흔들어댔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보이는 서로 다른 사람들, 다른 가게들, 다른 공연들에 눈은 바삐 움직였고, 입가에는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나 스페인 잘 왔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을 만큼 눈도, 귀도, 입도 즐거운, 말 그대로 모든 게 완벽하게 느껴지는 람블라스 거리였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갑자기 눈앞에 광활한 해변이 펼쳐졌다. 뜨거운 햇빛, 선선한 바람, 청량하리만큼 푸른 하늘과 드넓은 해변 그리고 모래 위 각자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와 진짜 딱 외국 느낌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을 한 마디 내뱉고는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몸을 움직이며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을 눈에 담았다.

그때 눈앞에 동그란 쟁반 위에 모히또를 10잔쯤 올린 아저씨가  "모히또~ 모히또~"를 외치며 내게 

'모히또 한 잔 하지?'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사실 모히또 안 좋아한다. 그래서 그냥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눈인사를 하며 아저씨를 지나쳐 보냈다.

(물론 그 아저씨에게 나는 그저 수많은 에잇, 안 사네. 들 중에 한 명이었겠지만.)


모히또 아저씨의 목소리가 멀어져 갈 때쯤 바게트 샌드위치 하나를 사서 모래 위쪽 돌계단에 앉았다.

여행 메이트와 샌드위치 한 개를 나누어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한 입 거리를 남겨두었고 마저 다 먹으라는 여행 메이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입에 욱여넣었다. 


배도 부르고 바람도 선선하고 눈앞에 여유로움을 한껏 만끽하는 외국인들이 많아서였을까.

한참을 말없이 앉아 해변가의 사람들을 관찰했다. 외국 해변 하면 당연스럽게 생각나는 비키니 차림의 여성들과

웃통을 벗어던진 남자들부터, 공을 가지고 노는 남자아이, 돗자리 위에 누워 선텐을 하는 커플, 누워서 책을 읽는 남자, 뒤통수에서부터 느껴질 만큼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 중인 두 친구, 간식을 나누어 먹는 가족들까지 수많은 형태의 수많은 사람들을 보다가 딱 한 곳에 시선이 멈추었다.


비치타월을 대충 깔고 옷을 다 입은 채로 누워있는 

갈색 중장발의 아빠.

그런 아빠의 가슴팍 위에서 아빠의 두 팔에만 의지한 채 

붕 떠 비행기에 태워진 어린 남자아이.

굽혀진 아빠의 무릎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순수하리만큼 행복한 미소로 그 둘의 모습을 바라보는 여자아이.


Always have your camera ready.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나도 모르게 재빨리 아이폰 카메라를 켜고 

그들의 그 순간을 한 컷에 담아냈다.


사진 한 장으로 그 상황을, 그 기분을, 그 공기와 냄새를 다 담아낼 수는 없지만

사진 한 장으로도 그때, 그 순간 그들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알 수 있기에, 너무나도 잘 느껴지기에.

이 사진은 그날 이후 내게 많은 생각과 많은 감정을 전해주는 가장 아끼는 사진이 되어버렸다.


내게 있어 가족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단어로는 다 설명할 수 없이 모호하면서도 동시에 어떤 일로도 흩어지거나 변치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그런 존재였다.

가족으로써 지게 되는 여러 가지 의무와 책임, 그 안에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지는 믿음과 사랑.


그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가장 가까이에서 서로를 봐 왔지만 어쩌면 서로를 가장 모를 수도 있는 존재.


보이기 싫은 모습을 들켜서, 보여주지 않았으면 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내가 바라고 기대한 모습과 다르게 말하고 행동해서, 차이를 이해해주지 않고 다르다고 해서 생기는 

기분 나쁜 찝찝한 감정에 어쩔 줄 몰라 가끔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준 것이 후회되어 툭 던지는 사과 한 마디와 사실은 오래 고민해서 사온 과자 한 봉지를

무심한 듯 건네고 받으며 스르륵 풀리는, 가장 대하기 쉬우면서도 어려운 그런 심플하고도 복잡한 관계.

나에게 있어 가족이란 그런 존재였다.


이 한 장의 사진을, 이 가족의 행복했던 순간을 내 작은 아이폰 안에 담은 그 순간부터 나의 가족에 대한 정의는 심플해졌다.


가족이란, 가장 행복하고 찬란했던 날들을 함께 해 준, 앞으로도 그 순간들 만큼은 꼭 함께 해 주었으면 하는 내 인생의 1순위 (물론 나에게 있어서의 정의다. 가족은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나의 어린 시절이 스쳐 지나간다.

아빠는 늘 퇴근 후에 나와 동생에게 비행기를 태워주셨다. 동생도 나도 아빠 다리 위에 배를 걸치고 위아래로, 좌 우로 왔다 갔다 하며 한참을 꺄르르 거리며 웃었던 그때.

아마 그때 나와 동생의 표정, 아빠의 표정, 요리하며 그런 우리를 바라보는 엄마의 표정도 이 사진 속 가족과 같았을 것이다. 내 기억에 의하면 이와 같거나, 이보다 더 행복했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해주고 가끔씩 그 수많은 기억들을 꺼내어 "이때 이래서 되게 웃겼어" "이때 이렇게 해서 이러이러했었어" 하며 놀리기도 하고, 아예 알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해 주기도 하고, 정말 가끔은 더 잘해줄 수 있었을 텐데 처음이라서 서툴렀다며 미안하다고, 다음에는 더 잘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해 주시는 부모님.


너무 힘들어서 울며 뱉었던, 정작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뱉어낸 말들을 기억하고 한참이 지난 뒤에 그때의 이야기를 꺼내며 무심한 듯 가장 든든한 위로를 해 주는 동생 놈


어릴 땐 불 좀 꺼줘, 물 갖다 줘, 이거 해 저거 해 등 '얘는 손 발이 없나?' 싶을 만큼 너무 많이 시켜서 싫었던, 하지만 지금은 어쩌면 친구들보다 더 친하고 더 잘 아는 짜증 나지만 인정해야 하는 베프 큰 놈.


이들을 위해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많아 가끔은 벅차고, 이들이 기대하는 만큼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가끔은 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이들이 있어 내가 이만큼 기억되고, 추억되고, 챙김 받고, 사랑받으며 그렇게 건강하고 아름답게, 행복하고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학대, 폭력, 살인, 성폭행 등 가족 같지 않은 가족에 관한 여러 가지 뉴스 기사들이 점점 더 잦은 빈도로 쏟아져 나오는 요즘. 가족으로 인해 눈물 흘리고 자신을 잃고, 더 나아가 심한 경우 생명까지도 잃는 이들이 점점 많아짐에 가끔은 내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내 가슴이 뜨거워지고 머리가 지끈거릴 만큼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받게 되는 이 나라의 법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의 무능함에 이내 무기력해지고 만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지만

그게 신체적 정신적 학대나 폭력 등이 되어서는 안 되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여러 감정을 느끼고 느끼게 할 수 있지만 그게 모멸감이나 박탈감 또는 증오가 되어서는 안 되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그게 범죄에 있어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사랑을 주고받아야 하고, 수많은 대화 속에 이해와 관심을 주고받아야 하며, 상처를 준 만큼 치유해 줄 수 있어야 하고, 오고 가는 책임과 의무 속에 함께 성장해야 한다. 


이 삶의 끝에 언젠가는 결국 끝이 날, 언젠가는 결국 안녕을 말하게 될 우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끝에 가장 큰 기억이 될, 가장 큰 위로와 추억이 될 우리이기에.


오늘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밥 한 끼, 대화 한 번, 전화 한 통, 하다못해 이모티콘 하나라도 주고받으며 그렇게 하루하루 더 가까워지길.


그 하루하루가 모여 큰 추억이 되고 잊지 못할 기억이 되어, 삶의 끝에 지금 이 순간 느껴지는 감정보다 후회가 덜하고 웃음은 더 한 <후회 최소화, 추억 최대화 법칙>

(제가 만들었습니다.)의 승자가 되길.    




P.S. 얼마 전 글을 쓰기 위해 다시금 이 사진을 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이 가족 정말 찾고 싶다.'  


아 뭘 하려는 건 아니고요. 가끔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례가 생각났습니다. 우연히 찍힌 사진이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건너 건너 퍼지고 퍼져 결국은 그 주인을 찾게 되는 그런 영화 같은 사례들이요.


이 사진 속 가족들은 자신들의 행복한 순간이 한 컷의 사진으로 존재하는 줄도 모르고 있겠죠?

언제가 되었든 꼭 이 가족을 찾고 싶다는 생각뿐입니다.


누군가에게 추억을 전달해 주는 기분이 꽤나 감동적이고 좋을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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