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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A Nov 23. 2021

[장티푸스]

KUA Conte #19 호안 미로(Joan Miró)




순결하고 생기 있어라, 

더욱 아름다운 오늘이여

사나운 날갯짓으로 

단번에 깨뜨려버릴 것인가

쌀쌀하기 그지 없는 

호수의 두꺼운 얼음

날지 못하는 날개 비치는 

그 두꺼운 얼음을

백조는 가만히 지난날을 생각한다

그토록 영화롭던 지난날의 추억이여, 

지금 여기를 헤어나지 못함은 

생명이 넘치는 

하늘나라의 노래를 부르지 않는 벌이런가.

이 추운 겨울날에 근심만 짙어진다.

하늘나라의 영광을 잊은 죄로 해서 

길이 지워진 고민의 멍에로부터 

백조의 목을 놓아라, 

땅은 그 날개를 놓지 않으리라

그 맑은 빛을 이 곳에 맡긴 

그림자의 몸이여, 

세상을 멸시하던 싸늘한 꿈 속에 날며

유형의 날에 백조는 모욕의 옷을 입는다.


- 백조 / 말라르메






 그해 여름부터 이듬해 4월까지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약국에 출근했다. 

출근길은 대개 맑았다. 공기에서 신선한 햇살 냄새가 맡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 가는 길을 채운 것은 잘 구운 빵냄새, 스크램블 에그의 고소한 냄새, 그리고 커피향이었다. 나는 기분 좋게 아침 거리의 분주함과 설렘을 구경하며 점심에 먹을 샌드위치를 소중히 품에 안고 약국에 가고는 했다.



 약국 가는 길은 늘 같은 경로였지만 하루하루가 새로웠다. 내가 늘 곁눈질로 흘끔거리며 보아온  사과 파는 여자 아이가 무슨 일인지 웃으며 인사해준 날도 있었고, 발 아래에서 운좋게 제법 큰 동전을 발견한 날도 있었다. 길거리의 어른들도 항상 친절했다. 남들보다 부지런히 하루를 맞이하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일종의 연대감을 형성했다. 



 물론 즐거운 출근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루는 말발굽에 치인 것인지, 아이들의 장난에 다친 것인지 길바닥에 납작하게 찌그러져 날개를 펼치고 죽은 비둘기를 목격하기도 했다. 평소 길에 있는 비둘기는 귀엽다기보다는 성가신 축에 속했지만 왠지 서글프고 무서웠다. 



 약국의 일은 꽤나 단순했다. 회계사가 되려고 공부를 하고는 있었지만 나는 아직 하루의 매출을 기록하고 돈을 맞추는 점원에 불과했다. 다만 약국의 규모에 비해 손님이 많은 편이라 숫자를 틀리지 않으려면 꽤나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초반에는 잠시 한 눈을 팔다가 거스름돈을 틀리기 일쑤였다.  



 복잡한 업무는 아니었지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폐를 끼치면 안된다'는 성격 때문에 긴장을 많이 하기도 했고, 말이 많지 않은 편이라 종일 손님들을 상대하다보면 기운을 땅바닥에 뺏긴 기분이 들었다. 다만 하루가 끝나고 숫자가 딱 맞는 정산서를 보면 개운하기도 했다.




 월급을 받아 처음으로 산 것은 물감과 화구였다. 부모님이 사준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새로 나온 물감의 풍부한 색깔을 꼭 써보고 싶었다. 아버지는 내가 그림 그리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겼기 때문에 매번 새로운 물감을 사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매일같이 퇴근 후에 스케치 연습을 하기 위해서는 튼튼한 새 화구도 필수였다. 아주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한 번 써보니 손에도 잘 맞고 문제가 없는 듯 했다. 



 나는 이 즈음 일어난 일들을 떠올릴 때면(지금은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가장 최근의 일들보다 오히려 하루하루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물론 모든 기억이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의 내 삶은 기본적으로 잘 정돈되어 있었고, 안정적이며 순탄했다.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약국에 갔고 하루가 다 갈 쯤엔  집에 와서 그림을 그렸다. 내겐 학교 졸업과 시험 준비 등 여러 관문이 남아 있었지만,  평생 이렇게 산다고 해서 큰 불만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내가 회계사가 되길 원하는 부모님도, 그림을 그리고 싶은 나도 그럭저럭 만족시킬 수 있는 성실한 삶이었다. 



 다만 길을 걷다가 아무 경고 없이 차에 치일 수도 있듯이, 사람의 인생은 때때로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당시의 나는 내 앞에 그렇게 거대한 운명이 거대한 입을 벌리고 내 목을 낚아 챌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날 무엇이 문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과 파는 아이가 건네 준 사과였을까, 햇빛에 둔 샌드위치였을까, 어쨌든 나는 배탈과 고열에 시달려 퇴근 무렵에는  제대로 서있기 어려울 정도로 몸이 안 좋은 상태였다. 집에 가는 시간이  천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나는 비틀대며 집에 돌아와서 그대로 앓아누웠다. 



집에 온 의사는 환자에 거의 흥미가 없었다. 메마른 사막에서도 가장 마른 나무뿌리 조각같은 자였다. 나의 고통과는 별개로 이런 증세를 보이는 환자는 흔한 것 같았다. 그는 따뜻한 날씨에 음식을 밖에 오래 두면 안된다, 약을 처방해 주겠지만 나아질 지는 지켜봐야 한다, 와 같은 무미 건조한 말을 내뱉고는 도망치듯 집을 떠났다.



 내 일상은 하루 아침에 볕이 내리쬐는 평온한 들판에서 시베리아 한복판으로 떨어져버린 것 같았다. 신이 마치 나의 안온한 삶을 가지고 이리저리 굴리며 장난을 치는 느낌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에게 익숙하고, 온전히 내 것이었던 몸은 더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정시에 배가 고프고 정확히 용변을 배출해내던 몸은 온데간데 없고 계속해서 액체를 쏟아내는 괴상한 생명체, 그것도 얼마 생명이 남은 것 같은 몸뚱아리가 축 늘어진채로 나의 정신을 담고 있었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고, 고열에 매일같이 시달리는 나는 헛소리를 해댔다. 



 깜짝 놀란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를 몽로익(Mont-Roig)의 여름 별장에 데리고 갔다. 육체에게 완전한 배신을 당한 나는 약할대로 약해져 있었다. 밤마다 어두움이 찾아오면 얼마 살아보지도 못하고 이름마저 괴상한 장티푸스에 걸려 생을 마감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는 내리쬐는 달빛아래 짐승같은 소리를 내며 울었다. 달빛이 정신병에 좋지 않다는 소문을 들은 부모님은 창문을 어두운 커튼으로 가렸다. 고열은 나의 뇌세포를 달구다 결국 끓게 해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때때로 열이 식을 때면, 나는 무시무시한 무기력증에 빠졌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몽로익(Mont-Roig)의 온화한 날씨도 나를 쉽게 낫게 하지는 못했다. 순수한 정신의 차원에서 보면 나는 이미 죽어있었다. 힘을 잃은 육체는 생각보다 빠르게 영혼을 무너뜨렸다. 아무 것도 원하지 않고 느끼지 않는 ‘무욕’의 상태로 몇주가 흘러갔다.  

 




 몇 주간 그렇게 아메바, 혹은 구더기와 같은 상태로 살아내는 사이, 어느새 바르셀로나에서 나의 짐이 도착했다. 평소에는 내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 부모님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화구를 가지고 왔다. 내가 조금이라도 기운을 차리기 바라서였겠지만, 당시의 나는 완전히 무의 상태였다. 그릴만한 것이 단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나 지났을까, 그날 아침도 수프를 가까스로 삼키고 방에 누워 있던 나는 커다란 바퀴벌레가 캔버스 위를 지나가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지저분한 것, 특히 바퀴벌레라면 질색을 하는 나는 의식할 새도 없이 일어나 벌레를 쫓아내고 가제수건으로 화구를 깨끗하게 닦았다. 



 그 다음부터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다. 일단 손에 연필을 쥔 나는 텅비었던 육체를 채우기라도 하듯 그림을 그려나갔다. 정말 무언가에 홀린듯 그리고, 또 그리며 나는 어느새 예전의 에너지를 찾아갔다. 혹 갑자기 배가 고파질 때는 입에 아무거나 마구 넣으며 또 그림을 그렸다. 




 그게 나의 운명이었던 것 같다. 알아차리지도 못한 사이 나의 영혼과 육체는 회복되어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약국의 계원으로 일하던 날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리고, 또 그리는 것 만이 장티푸스가 비우고 간 내 영혼을 채우고 나를 살아가게 하는 유일한 행위였다. 몽로익(Mont-Roig)에서의 여름이 지났을 때, 나는 앞으로 남은 생의 단 한순간도 낭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때때로 나는 약국의 일상이, 규칙적인 하루가 생각났다. 그러나 그립지는 않았다. 나의 하루를 기쁨으로 가득 채우는 그림이 약국에서의 일상을 대신했을 뿐, 크게 달라진 건 없었기 때문이다.




⋇ KUA Conte 는 쿠도스 아틀리에에서 발행하는 단편입니다

⋇ 위 글은 호안 미로의 이야기를 소재로 재구성한 픽션입니다

⋇ And more..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 호안 미로는 14세까지 미술학교와 경영학교를 함께 다닌,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그가 회계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실제로 회계사가 되기 위해 약국의 계원으로 일합니다  

    14세가 되던 해 호안 미로는 심각한 장티푸스에 걸려 거의 목숨을 잃을 뻔 합니다  

    그의 부모는 Mont Roig에 있는 별장으로 그를 옮겨 회복을 돕습니다  

    호안 미로는 병이 나은 이후에도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걸려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는 이 기간을 통해 그의 길이 그림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후 경영학교를 그만두고 미술에 매진하기로 합니다. 아들을 잃을 뻔 했던 부모님도 그의 선택을 지지합니다   

    자유분방하고 생기 넘치는 그의 작품과 달리, 그는 (마치 회계사처럼) 매우 성실하고 꼼꼼하며,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부지런히 다작한 화가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살아 생에 이미 성공을 거둔 그는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재료와 화법을 시도하며 90세가 넘는 나이까지 왕성하고 성실하게 활동했습니다  




<The Farm>, 몽 로익에서 호안미로가 그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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