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KUA Joi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UA Apr 06. 2022

[전쟁]

KUA Joie #001

 전날 친구와의 수다로 이미 늦은 등교 시간. 이왕 늦은 것 허기진 배를 채우고 가겠다며 텔레비전 앞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아침 시간대의 방송은 중학생의 내가 좋아하는 영상 따위 나오지 않았지만, 적막한 아침을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소음으로라도 채우기 위해 습관처럼 으레 텔레비전을 켜놓았다. 텔레비전에서는 하늘 높이 솟은 빌딩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빌딩의 허리를 한 비행기가 가로질러 날아갔다.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에는 선명한 자국, 아니 커다란 구멍이 남았다.


‘영화 홍보인가?’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 앵커는 미국이 테러 공격을 당했다며 말하고 있었다. 당시 해외의 뉴스는 물론이거니와 국내의 뉴스에도 관심이 없던 중학생의 나였지만, 뉴스를 통해 쏟아지는 ‘테러’와 ‘전쟁’이라는 단어들이 내 귀에 신랄히 박혔다. 이 아침의 장면은 이십 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내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다.


흔히 이 사건은 911 테러 사건은 불렸고, 이 계기로 미국은 전쟁을 일으켰다. 나는 성인이 되어 그 테러가 일어났던 미국 뉴욕에서 대학교에 진학했다. 내가 뉴욕에 갔을 땐 테러에 대한 것들은 정리된 이후였지만, 학교를 오가며 보게 되는 지하철 광고 선전판에서는 911로 아직 후유증을 겪는 이들을 돕는 단체의 홍보나 테러에 대한 경각심을 알리는 문구들을 자주 접했다. 어느 날엔 학교 사진 수업을 듣는데, 까만 뿔테 안경을 쓰고, 까만 옷만 입고 다니던 (그는 ‘검은색'이 그를 대변해준다고 했던 것 같다) 독특한 외향의 교수님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911테러가 일어난 장소의 근처에 살고 있었는데, 정부에서 그 지역을 모두 봉쇄해 버리는 바람에 거의 2년 동안 자기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 했다.


2022년 3월, 현재.


한 번도 해외에 나가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SNS만 접속하면 외국의 다양한 뉴스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나는 중학생 때의 기억 이후로, 또 한 번 크게 내 기억에 남을 법한 전쟁을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아마 난 평생 동유럽에 있는 작은 나라, 우크라이나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SNS와 TV로 접하는 소식들은 가히 충격적이다. 러시아의 침략으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쟁터로 뛰어드는 모습, 피난 길 러시아의 공격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 지하 벙커에서 숨어있는 가족들의 영상과 사진과 그들의 이야기를 매일  접하며 마음 한구석이 아렸다. 뭉크의 <절규>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다를 것 없는 그들의 현재일 것이다. 전쟁은 이를 겪는 이들에게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처럼 그저 어둡고 참혹한 <전쟁의 얼굴>을 남긴다. 세계대전을 겪은 달리, 911테러와 이라크전을 겪은 사람들, 우크라이나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쟁에 참여하는 러시아 군인들 또한 이 참혹함을 비껴갈 수 없다. 전쟁을 겪는 이들의 두려움과 좌절, 비참함은 전쟁을 목격하는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을 안겨준다.


여덟 번 째 쿠아 콩테에 써 내려갔던 파블로 피카소의 비둘기 이야기와 그림이 생각났다. 만인이 아는,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가 우크라이나에도 날아들길. 그들에게도 평화의 빛이 내리쬐기를 빌어본다.


<절규> 에드바르 뭉크, 1893

<전쟁의 얼굴> 살바도르 달리, 1941 


세계 평화회의 포스터, 파블로 피카소 1949 

피카소의 비둘기 그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