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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아모르 Mar 03. 2024

일을 시작하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라면

홍콩 출신의 엔지니어가 합류하면서 이제 좀 숨통이 트인 듯했다. 적어도 영어로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다음 내가 한 일은 엉뚱하게도 과학 공부였다. 당시 우리가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무선충전 관련 제품이었다. 당시 삼성 갤럭시 S7의 발매로 무선충전이 점차 보급되고 있던 시기였다. 


배경지식을 좀 더 붙이자면 삼성 갤럭시 S6부터 본격적인 무선충전이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효율도 많이 떨어지고 5W(와트)의 저속 충전만 가능했기 때문에 실제 사용하는 사람들은 많이 없었다. 하지만 갤럭시 S7을 통해 무선충전이 삼성이 앞으로도 무선충전에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주었고 많은 중국 회사들이 앞다투어 무선충전 관련 제품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때 우리 회사도 월마트에서 큰 계약을 따내게 되어 무선충전 제품들을 계속 추가하고 있었다. 특히 갤럭시 S8이 발표되고 고속 무선충전이 대중화되면서 무선충전은 심천에서 가장 핫한 아이템이 되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과학공부를? 그 이유는 함께 일하는 엔지니어 때문이었다. 나는 경영학과 상담심리학을 전공한 문과생이다. 과학은 고1 이후로는 놓고 살았다. 그런데 갑자기 5V(볼트) 제품의 출력으로 5W(와트) 충전속도를 내는 무선충전 제품을 1.67V를 사용하는 9.5W 충전속도를 내는 제품으로 교체를 해야 한다고 하는 엔지니어의 말은 중국어도 아닌데 중국어만큼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다. 무선충전기를 열어보면 하얀색 코일이 감겨있는데 이 코일을 통해 저항을 만들어내고 자기 유도방식을 통해 충전하는 원리인데 이를 이해하는데 한참이 걸렸었다. (사실 지금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이제 직장생활을 2년 넘긴 주임인데 엔지니어 경력 10년 이상되는 직원들과 함께 제품을 개발해야 하고, 또 법인의 책임자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중국 직원들은 생각보다 자기 의견을 말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한국 문화로 보면 '감히'라는 말이 툭툭 나올 때도 많았다.


한 번은 엔지니어와 공장에 미팅을 하고 그 내용을 미국 본사와 간단하게 논의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밤 10시 가까이에 엔지니어가 전화를 해서 왜 내 맘대로 미국이랑 소통을 먼저 했냐고, 나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이 더 복잡해진다고, 제품 개발 책임자는 본인이기 때문에 그런 소통을 하려면 본인이랑 먼저 소통을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밤 10시에 가까운 시간이었고 나는 법인의 책임자였다. 그때는 너무 자존심이 상하고 어떻게 논리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지 밤늦게까지 혼자 시뮬레이션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나는 중국에 이러한 문화에 강력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정치에서는 그런 게 전혀 통하지 않는 공산주의적 정치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일하는 방식 즉 경제활동에는 상당히 합리적인 방식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한국보다 훨씬 위계질서보다는 효율성을 중심으로 일하는 것 같다. 이는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독특한 환경에서 나온 결과이다. 


예전에 미국에서 생활할 때 나는 미국에서 오랜 시간 지내신 분과 함께 코리안타운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그분이 몇 개 건물을 가리키며 저 건물들이 예전에는 한국인 소유였으나 이제는 모두 중국에게 넘어갔다고 하시며 이곳은 얼마 지나지 않아 코리아 타운이 아닌 차이나 타운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한국인들은 건물을 소유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중국인들은 건물을 소유하기 위해 서로 돈을 모아서 하나를 사고 또 돈을 모아서 하나를 하고 한단다. 그러면 나중에는 모두 건물주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얼마 되지 않아 실제로 코리아 타운은 점차 사라지고 미국 어느 주요 도시에 가도 중국인들이 모여사는 차이나 타운은 건실하게 유지되고 혹은 확장되고 있다.


혹시나 오해하실 수 있는데 나는 중국 정치체제를 싫어한다. 특히 2019년 중국이 홍콩을 탄압했을 때 그 중심에 있었고, 중국에 서버가 공개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카카오톡 네이버가 차단되고, 또 사드를 빌미로 한국 업체들을 쫓아내는 시기에 모두 중국에 있었기 때문에 공산주의의 무서움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편법과 사기를 통해서 이룬 것은 아니라는 것이 확실하다. 우리나라에 공무원 열풍이 불 때 중국은 창업 열풍이었다. 시장이 워낙 크기 때문이겠지만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분위기가 중국 경제에 만연했다. 


이 글의 부제처럼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라면 나는 훨씬 더 열린 마음으로 일을 했을 것 같다. 물론 소싱한 상품에서 대규모의 불량이 나오고, 사장은 어느 날 잠적하고, 공장에서 아무 문제없다고 했던 제품이 생산 완료일 하루 이틀 전에 딜레이 되는 등 그런 문제들은 당연히 발생할 것이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풀어보겠다). 하지만 본질은 실패를 덜한 것보다는 큰 성공을 한 번이라도 할 수 있는 시도를 계속하는 것이다. 특히 나는 개인사업자가 아니라 회사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이 기회를 활용할 수 있었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라면 꼭 했을 일 3가지를 적는 것으로 이번 화는 마치려 한다.


[1] 언어 배우기 - 이건 무조건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초반에는 영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나중에는 중국어로 이야기했다가 중국 직원들이 그것을 이용해 내가 말을 잘못했다는 식으로 본인들의 잘못을 나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을 보고 중국어 사용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이는 내가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만약 당신이 중국으로 가게 된다면, 아니 다른 어느 나라든 가게 된다면 무조건 어학부터 시작해라. 회사와 그런 부분을 미리 협의해야 한다.


[2] 사람 만나기 - 현지인, 한국교포, 주재원 이런 것을 상관하지 말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무조건 만나라. 나는 한국인들을 주로 많이 만났다. 물론 그분들과 지금도 교제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 다만 사람을 좀 가려서 만났다. 소개로 만나던 아니면 모임에서 만나던 새로 만나는 사람 중에 나를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그것이 무서워서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으면 그 나라에 적응하는 게 2배 3배 더 힘들다. 나는 특히 중국어가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어나 한국어를 하는 사람만 만나다 보니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 한계가 있었다. 


[3] 중심지에 살기 - 나는 한적한 것을 훨씬 선호하는 사람이라 회사, 집 모두 약간 교외 지역을 선호한다. 하지만 아예 이민을 작정한 것이 아니라면 가능하면 중심지에 사는 것이 좋다. 내가 말하는 중심지는 관광지나 한인들이 모여사는 좋은 아파트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 도시의 문화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지역을 말하는 것이다. 특히 주재원으로 주거 지원을 받는 다면 비싼 집보다는 꼭 중심지에 있는 집을 선택하라고 말하고 싶다. 우린 모두 편견을 갖고 산다. '이 나라는 이럴 것이다'하는 생각으로 바라보면 모두 그런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중심지에 살게 되면 아무래도 그 나라의 특수성을 관찰할 기회가 많다. 집 앞에만 나가도 그 나라에서 가장 잘 나가는 프랜차이즈들이 많이 들어올 것이고, 유행하는 트렌드의 스타일을 보기 쉬울 것이다. 이게 별게 아닌 것 같아도 그 나라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문화를 잘 이해한 사람만이 그 나라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다.


중국 심천 남산역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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