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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Start

바닥을 찍어야 올라간다?

by 돌이

달리기를 오래 쉬었다. 무엇 때문에 나는 2025년, 한 해 동안 그렇게 달렸을까. 나에게 가장 좋은 도피처였다. 나 스스로에게 "너 요즘 뭐 하냐? 생산적인 일을 하나라도 하긴 하는 거야?"라고 물었을 때, "나 달리기 열심히 하거든?"하고 대답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일도, 글도, 사랑도. 뭐 하나 잘 풀리지 않던 긴 시간 동안 내가 잡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달리기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달리기 밖에 생각하지 못했던 가장 큰 원인은 여유가 없었다. 매일매일을 열심히 살아도 다음 날이면 해야 할 일이 또다시 한가득이었고, 그 시간 속에서 달리기도, 글쓰기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주는 일도 모두 해내기에는 마음이 턱없이 각박했다. 욕심을 버렸어야 했는데, 욕심을 버리지는 못하고 모든 것을 잘 해내지 못하는 나를 채근했다. 다른 누구도 나에게 못한다고 하지 않았는데, 나는 나를 못살게 굴었다. 인정해주지 않고 더욱 몰아세웠다. 그럴 때마다 "나 달리기는 꾸준히 잘 해내고 있는데?"라는 변명이라도 해야겠다는 듯이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밖으로 나섰다. 달리기를 마치 온 내 몸은 한껏 달아올라있었고, 육체적 여유마저 점점 잃어갔다.


몇 주전 이미 수명이 다 되어버린 모임에 나갔다. 다녀온 뒤엔 몸에서 뭔가 훅 빠져나간 것만 같았다. 모임에 억지로 나가는 나도, 그렇다고 이제 그만 나가겠다고 말하지 못하는 나도 너무나 한심스러웠다. 신기하게도 다음날부터 달리기가 싫어졌다. 일주일이 되고, 이주일이 지나자 다시 허리에 살이 붙고 달리러 나가지 않는 삶이 너무나 안락하게 느껴졌다. 이러다 영영 다시는 달리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문득문득 들었지만, 그 불안감보다 안락함의 힘이 더 강했다.


몸이 편안하니 여유가 좀 생겼다. 글을 쓰려고 브런치도 자주 들락거리고, 어떤 소재로 글을 써볼까 생각하는 시간도 늘었다. 주변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 내년에는 꼭 결과물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며, 시간을 내서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조언을 그대로 듣지는 않겠지만,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수는 있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정말 책을 쓰길 원하는가. 그저 이렇게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하는가? 내가 쓴 글을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은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생각은 꼬리를 물고 물어 결국 나는 써낼 수 있는가, 까지 이르렀다. 사실 나는 내가 완결된 하나의 글을 결국 써낼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고, 한 번도 흔들린 적은 없다. 다만 그 시기는 내가 '준비'되었을 때가 되어야 가능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준비'만 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사실 '준비'가 되었을 때,라고 조건을 붙임으로써 현재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준비'를 하느라 나는 많은 시간을 보냈고, 때때로 '준비'가 덜 되었다는 핑계에 숨어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기도 했다.


그러나 달리기를 멈췄던 기간을 끝내고, 오늘 나는 다시 달렸다. 달리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부스에 튕기는 물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내일부턴 다시 아침에 달려보자. 그리고 저녁에 글을 쓰거나 읽기 위해 노력해 보자.'


매일이 새로운 시작이다. 조급해할 것 없다. 분명한 것은 나는 또다시 시작점 앞에 설 것이라는 점이다. 몸으로 느껴진다. 어제의 시작점에 섰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업그레이드되었다는 것을.


어제는 잠에 들기 전에 조지 손더스의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를 읽었다. 시작하자.


2025.12.11 365개의 글 중 77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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