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말을 좀 더듬으면 어떤가.”

<고글래퍼 이호문>, 이서윤 작가

by 돌이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미간에 오돌토돌한 것들이 솟아올랐습니다. 여드름이었어요. 그 해 여름은 좁쌀보다 작고 빠알간 여드름을 거울 너머로 확인하고 짜내기를 반복하며 흘러갔습니다.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저는 담임선생님께 메일을 보냈습니다.


“선생님, 저 이마에 여드름이 났어요. 짜내도 짜내도 다시 또 생겨요.”


저의 젊은 날을 성숙하게 만들어주었던 최대의 콤플렉스, 여드름과의 인연이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중학생을 지나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여드름은 점점 더 커졌고 많아졌습니다. 미간에만 났던 여드름은 학년을 올라갈수록 미간에서 이마로, 이마에서 곧 콧대를 타고 내려와 양쪽 볼까지 퍼졌어요. 커다랗고 시뻘건 여드름은 제 얼굴을 모두 뒤덮었습니다. 저는 여드름을 그대로 두지 못했어요. 제 손을 수시로 얼굴로 가져가 툭 튀어나온 것을 더듬거리며 찾았고, 엄지와 검지로 쥐어짰지요. 여물지 않은 여드름은 큰 고통을 동반했지만 결국 터졌고, 고름과 피가 솟구치기를 몇 해 동안 반복했습니다.

여드름이라는 꽃이 활짝 피면 필수록 저는 더 움츠러들었어요.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얼굴을 똑바로 들지 못했고, 상대의 눈을 바라보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지요. 길을 걸을 때는 사람들이 내 얼굴을 보고 비웃을 것만 같아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저는 갈수록 말 수가 줄었고, 보다 더 내성적이고 소심해졌습니다. 여드름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한 공간에 있는 일 자체가 고통이었어요.

며칠 전 저의 콤플렉스, 여드름 시절이 떠오르게 만드는 책이 나왔어요. 이서윤 작가의 <고글래퍼 이호문>입니다. 책은 정신없이 말을 더듬느라 자기 이름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호문이의 등장으로 시작합니다. 호문이에게는 커다란 비밀이 있었어요. 아무도 없는 자기 방에선 누구보다 빠르게, 누구보다 정확하게, 자기의 생각을 리듬에 실어 뱉을 수 있는 아이였지요. 이야기는 말더듬이 호문이와 방구석 래퍼 “헤스”가 하나가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호문이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내내 저는 궁금했습니다. 호문이와 “헤스”가 합쳐진다면 어떤 모습일까.


합쳐진 모습이 궁금했던 건 부러웠기 때문입니다. 호문이가 콤플렉스 때문에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들을 “헤스”의 입을 빌려 해내는 모습들이 대견했거든요. 저는 여드름에 시달리는 동안 용기가 없는 저를 참 많이 자책했었습니다. 그럴수록 저는 점점 더 작아졌고, 사람들을 더 피해 다녔거든요. 저의 콤플렉스는 시간과 호르몬이 해결해 주었습니다. 고3이 되자 여드름이 차츰 가라앉았고, 여드름이 그득했던 그 자리엔 여드름 흉터가 자리했어요. 여드름보다는 여드름 흉터가 나았습니다. 그때가 되어서야 저는 조금씩 고개를 들었고, 사람들과 힘겹지만 눈을 맞출 수 있었어요.


누구나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보통 자기가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가 세상에서 제일 커 보입니다. 너무 커 보이기에 우리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해 낼 용기를 갖지 못해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고글래퍼 이호문>이 바로 그런 친구의 이야기예요. 호문이는 콤플렉스에 압도되어 용기를 내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말합니다.


“말을 좀 더듬으면 어떤가.”

2025.05.26 365개의 글 중 61번째 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간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