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목련이 피었다. 우리 학교 문과대학 건물 앞에는 ‘미친 목련’이 있는데, 개화 시기보다 훨씬 이르게 3월 초부터 만개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나무 뒤에 보일러실이 있어서 늘 따뜻하기에 그렇다나 뭐라나.
새내기 때 MT를 출발하기 전, 미친 목련 앞에서 동기들과 찍었던 사진이 생각난다. 만우절과 맞물린 날짜 때문에 삼삼오오 교복을 입고, 어색한 듯 노랗게 물들인 머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전날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다가 옆 동네 대학교의 과잠을 빌려 입고 퉁퉁 부은 얼굴로 간신히 학교에 도착했다.
미친 목련이 필 때 즈음, 과 단톡방에는 소개팅과 미팅을 구하는 글이 꾸준히 올라왔다. ‘XX대학교 XX과 남자 3명이랑 미팅할 사람?’, ‘소개팅 생각하는 사람 개인톡 주세요.’수업이 끝나고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저녁에 미팅이나 소개팅을 나가는 친구들이 꼭 한 명씩은 있었다. 심지어 학교 잔디밭에서 같이 술을 마시다가 얼굴이 빨개져 부랴부랴 취한 상태로 미팅을 나간 친구도 있었다.
과잠을 입고 얼굴이 벌게진 상태로 연신 잔에 막걸리를 채우며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나 걔랑 잘 되고 싶어.’라고 짝사랑을 토로하던 동기가 있었다. 그는 남중, 남고를 나와 연애와는 담을 쌓은 사람이었지만, 치기 어린 마음에 용기가 생겼는지 당장 고백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이제 우리는 고시공부와 취업준비에 치여 우연히, 혹은 사진으로만 미친 목련을 만난다. 최근 1년간 과 단톡방의 알람이 울렸던 횟수는 손에 꼽을 수 있다. 막걸리를 마시던 동기는 이제 값비싼 칵테일을 마시며 연거푸 한숨을 쉬며 말한다. ‘인턴을 했는데, 스펙이 될지 모르겠어. 남들보다 늦은 건 아닌지 걱정이 되네.’
미친 목련이 우리 학교의 명물이 된 것은 다른 꽃보다 이르게 피고, 또 이르게 지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만개해 흩날리는 벚꽃을 보러 이과 캠퍼스로 갈 때, 미친 목련은 이미 지기 시작해서 그 달큰한 향이 희미해진다. 다른 꽃과는 다른 속도로, 그 만의 환경에서, 그 만의 향기로, 며칠간 마음껏 존재감을 과시하고는 하나둘씩 떨어지는 꽃잎과 함께 내년을 기약하는 미친 목련.
미친 목련의 향기를 맡을 때면, 향수에 젖고는 한다. 그때만의 느낌, 환경, 나, 너, 우리가 있었기 때문에 소중할 수밖에 없는 추억들.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더 생각나고 그리운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가수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 ‘졸업’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그 어떤 신비로운 가능성도 희망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청년들은 쫓기듯 어학연수를 떠나고
꿈에서 아직 덜 깬 아이들은 내일이면 모든 게 끝날 듯 짝짓기에 몰두했지
난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으려 헤매었지만 갈 곳이 없고
우리들은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글픈 작별의 인사들을 나누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행복해야 해"
미친 목련이 필 때쯤이면, 내가 사랑했던 시간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이 미친 세상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