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 비닐장갑을 어머님께 건네고, 나도 손에 꽉끼게 잘 맞는 실리콘 장갑을 챙겨 손에 꼈다.
"너나 껴라! 팔십넘은 노인네 손가락좀 시커멓게 된다고 먼 흉이냐? "
저는 좀.....ㅋㅋ
어머님께서 주말에 우리집에 오시면서 커다란 비닐봉지에 뭔가를 담쁙 담아오셨다. 뭔고 하니, 아가씨네 주말 농장에서 뜯어온 고무마순이다. 그 양에 입이 딱 벌어진다. 밭에서 고구마줄기를 이렇게 손질해 오는데만도 시간이 꽤 걸렸을 것 같다. 이렇게 챙겨주시는 건 너무 감사한데, 항상 반갑기만 한 건 아니다 .ㅎㅎ
한여름!
고구마순이 너무 우거지게 잘 자라면, 정작 고구마 뿌리에 갈 영양분이 줄기와 잎사귀로 다 가게 된단다. 그래서 이때쯤이면, 고구마줄기를 적당히 골라 따내면서 관리를 해줘야 하는데, 이 작업이 바로 고구마순 자르기다. 그렇게 관리차원에서 아가씨네 주말농장에서 따낸 고구마 줄기가 일부 우리집으로 온 것이다.
일단 고구마순은 잎사귀를 따내고 줄기만 손질해왔다 해서 바로 먹을 수가 없다. 그 줄기의 껍질을 잘 벗겨내야만 먹을 준비가 되는 것이다. 헌데 이 껍질 벗기는 일이 만만치 않다.
어머님이랑 거실에 마주 앉아서 고구마순 껍질을 벗기는데만도 한참이 걸렸다. 그나마 재료가 싱싱해서 껍질 벗기기가 좀 수월했다. 살짝 시든 고구마순의 껍질은 소금물에 절였다가 벗기면 쉽다. 어머님이랑 도란도란 얘기하면서 하다보니, 지루하지 않게 금새 손질이 다 끝났다.
양이 얼마 안됐으면, 끓는물에 살짝 데쳐서, 들기름에 달달 볶아 진간장으로 간해 이렇게 한두번 먹고 말았을텐데...... 이렇게 짭쪼름하게 볶아먹으면 여름밥도둑이다.
들기름에 달달 볶아, 진간장으로 간맞춘 고구마순볶음
양이 제법 많아서 고구마순김치를 한번 담아볼 엄두를 내보았다.
고구마순김치라 하면 많이 낯설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고향에서는 여름철이 되면 흔하게 담아먹는 김치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도 어렸을때 여름이면 많이 먹어봐서 아주 익숙한 김치다. 우리 엄마는 여름 장마에 김치거리값이 비싸지면, 이렇게 고구마순으로 김치를 담고, 부추로도 담고, 때론 억세져서 쌈으로 싸먹기 곤란해진 쌉쌀한 상추로도 김치를 담곤 하셨다. 오이, 깻잎, 고추, 참외, 수박속껍질도 이름 붙이면 모두 김치가 됐다.
여름철, 텃밭에서 나는 각종 채소는 엄마가 솜씨를 발휘하는 족족 색다른 김치가 되곤 했다.
고춧가루, 파, 마늘,생강, 멸치액젓, 설탕, 매실액기스를 골고루 넣고 섞어서 되직한 양념장을 만든다.
김치 양념장
김치양념장과 잘 머무려진 고구마순
필요하다면 양파나, 부추, 고추 같은 제철 재료를 채썰어 함께 넣어도 좋고, 그냥 고구마순만 달랑 넣어 버무려도 좋다. 부족한 간은 소금으로 맞춰주면 좋다. 멸치액젓의 향이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면, 액젓을 조금씩 추가해 가면서 간을 맞추면 더 감칠맛 나는 김치를 맛볼 수 있다.
김치는 본 재료의 절이는 정도에 따라 간이 제각각이기에 딱 잘라 이정도라고 하기가 좀 애매한 것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