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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정 Oct 22. 2021

고장난 본능의 스위치, 펑하고 터져버린 불만의 폭탄

영화 <들개> 리뷰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세상에 불만을 가진 채 살아간다. 그리고 정말 '가지기만 한 채'로 살아간다. 되지도 않는 이유로 온갖 트집을 잡는 상사를, 일하는 도중 만난 진상 손님을, 지하철에서 어깨를 치고 가는 승객을 보며 종종 험악한 상상을 하지만 정말 그것을 실행에 옮기진 않는다는 말이다. 기껏해야 속으로 참을 인 자를 새기거나 그렇게 해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친구들 단톡방에 뒷담화를 하는 정도일 것이다. 이토록 부득불 참고 사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결국 지금 당장 불만을 표출해서 얻을 쾌감보다 뒤따르는 책임이 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영화 <들개>는 그 쾌감과 책임을 사이에 두고 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들개 (Tinker Ticker,  2014)


  대학 조교로 일하는 정구는 고등학교 시절 무시와 폭력을 일삼던 선생에게 복수하기 위해 사제폭탄을 터트려 소년원에 다녀온 인물이다. 낮에는 유일하게 자신의 과거를 아는 교수의 비위를 맞추며 새로운 삶을 살고자 무던히 노력하면서도, 밤에는 여전히 폭탄을 제조하며 세상을 증오하고 비웃는다. 그런 정구 앞에 어쩐지 자신과 비슷해 보이는 효민이라는 인물이 나타난다. 수업시간에 껄렁한 차림을 하고 거만하게 앉아 교수와 입씨름을 하는 제적당한 학생. 어쩌면 매일같이 교수의 차량에 폭탄을 설치하던 자신의 상상을 실행에 옮겨줄 것만 같은 기대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렇게 정구가 효민에게 배달한 폭탄을 계기로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고 둘은 세상에 대한 불만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소하는 법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영화의 제목처럼 두 주인공은 마치 들개와 같다. 그러나 정구는 세상에 내몰려 바짝 엎드리고 살아가야만 하는 들개인 반면 효민은 스스로 목줄을 끊고 세상에 자신을 던져놓은 들개이다. 둘은 세상에 대한 불만을 기폭제로 삼아 질주를 시작하지만, 장애물이 나타날 때마다 뒷걸음질 치는 들개 정구는 앞만 보고 끝없이 질주하는 들개 효민의 속도를 좀처럼 따라잡을 수 없다. 이 위태로운 질주를 하는 동안 정구는 다시금 자신을 옥죄여오는 과거를 마주하고, 그토록 바라왔던 평범한 미래를 영영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결국 구르던 발을 멈춘다. 하지만 효민은 멈출 생각이 없는 듯 애써 감추며 살았던 정구의 본능을 계속해서 끄집어내고 그런 효민을 감당할 수 없어진 정구는 결국 그를 제거하는 데 이른다. 이 지점에서 효민은 마치 또 다른 정구처럼 그려진다. 본능에 충실한 채 있는 그대로 분노를 터트리고 말았던 고등학생 정구, 성인이 된 후 세상과 타협하는 듯 보이지만 여전히 숨죽여 세상을 증오했던 매일 밤 정구의 모습이 효민의 얼굴과 행동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정구는 그 누구보다 시시한 인생을 살기 위해 제 안의 미쳐 날뛰는 들개를 죽인 것이다.



  이제는 어엿한 회사원의 모습으로 지하철에 탄 정구를 따라가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러나 그 얼굴에는 여전히 그늘이 가득하다. 효민이라는 또 다른 과거를 묻고 살아가게 된 정구에게 언젠가 또다시 본능의 스위치가 쥐어진다면 과연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불만의 폭탄은 마음속에만 자리 잡은 채 세상 밖으로 터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안의 들개는 완전히 숨통이 끊어졌을까. 그것은 결코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정구 본인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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