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홍학의 자리>를 읽고
*리뷰에 스포가 담겨있습니다.
추리 스릴러라는 장르를 좋아한다.
추리가 주는 서스펜스를 바탕으로 작가가 걸어놓은 트랙이 무엇인지 파헤치는 것도 재밌고,
그 트랙에 걸려 상상치도 못 한 결론을 맞이했을 때의 황당함도 좋아한다.
이 책을 접하게 된 건 ‘절대 스포 하면 안 되는 책’이라는 출판사의 마케팅 덕분이었다.
‘왜 스포 해서는 안 될까?’
‘아무래도 엄청난 반전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는 적당한 궁금증을 안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홍학의 자리>는 적당한 궁금증을 완벽히 해소시킨 책이었다.
앉은자리에서 약 세 시간 만에 해치울 정도로 흡입력이 대단했으며,
연이은 반전은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를 때까지 긴장의 끈을 못 놓게 만들었다.
나는 소설 첫 장을 읽을 때 어떤 캐릭터가 어떠한 상황에 마주하고 있는지를 머릿속에 그리고 시작한다.
그리고 나에게 채다현은 당연한 듯, 여성 캐릭터였다.
초반에 ‘채다현이라는 학생’과 ‘김준후라는 40대 선생님’이
금기시되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대목을 보았을 때 당연히 여학생일 줄 알았다.
다현이라는 이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김준후가 남자 캐릭터 터니까 무의식적으로 여학생이라 착각했던 걸까?
채다현이 남자라고 밝혀졌을 때, 이미 편견은 내 무의식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독자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이다.
‘편견은 또 다른 편견을 낳게 한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인정 욕구는 있다, 하지만 이 욕구가 변질되는 순간 불행을 초래한다'
이번 스릴러의 경고는 인정욕구였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잃어가는 과정으로 변질되었을 때
어떠한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는지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다.
마지막 반전을 마주하고 책 첫 페이지로 돌아가 인물들을 다시금 떠올렸다.
분명 예측할 수 있었던 내용이었는데,
무의식 속에 사로잡힌 내 편견이 채다현의 인정 욕구를 무시한 것만 같았다.
책을 애정하는 사람들이라면 각자 책을 선정하는 본인만의 이유와 기준이 있을 것이다.
난 무슨 이야기인지 차마 짐작할 수 없는 제목을 가지고 있을 때,
그리고 ‘여운이 가득한 책이다’라는 리뷰를 봤을 때 그 책을 고르곤 한다.
<홍학의 자리>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짧은 찰나에 여러 메시지를 전해주는 책, 책을 덮고도 곰곰이 그 메시지를 곱씹어 보게 하는 책
이 두 가지만으로도 <홍학의 자리>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한 것 같다.
호수는 모든 것을 잊은 듯 잠잠해졌다. 바람이 불었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엉망으로 자라난 풀들이 부딪히며 자극적인 소리를 냈다.
준후는 어깨를 흠칫 떨었다.
뒤돌아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이곳에서 생명을 가진 것은 그가 유일했다.
홍학은 동성애가 굉장히 많이 발견되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수컷과 암컷이 새끼를 낳으면 다른 수컷이 암컷을 밀어내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채다현 학생이 권영주 씨에게 전했다고 합니다.
‘애는 잘 키워줄 테니 선생님과 헤어져달라고’
‘아루바라는 섬이 있어요’
‘네덜란드에 있는 곳인데, 거기에 가면 홍학을 볼 수 있대요.
다른 곳에서도 볼 수는 있는데, 거기서는 홍학한테 직접 먹이를 줄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대요'
다현이 죽지 않았다면, 하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준후는 조금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