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보내지 못한 마음들에 대하여

내향인 리더의 연말 고백

by 제임이

연말 송년회, 크리스마스, 휴가 생각으로 설레는 12월을 보내는 직장인들이 많지만 나는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가 연말과 연초이다. 항상 바쁘지만 바쁜 것에 바쁜 것이 더해지는 시기랄까. 올 한 해의 회고, KPI 점검, 팀원들과의 연말 면담과 연봉협상 준비, 사업부와 회사의 내년 계획, 고민하고 결정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다. 차라리 복잡한 마음을 비우고 쳐낼 수 있는 일들이라면 좋으련만, 진득하게 앉아 머리를 싸매야하는 일들이 많은데 마음까지 붕 뜨는 시기이다보니 더욱 어렵다.


바쁜 시기 중에 내 마음 속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불편한 숙제가 있다. 바로 연말연시 인사다. 내향적인 성향의 나에게 스몰토크는 늘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였다. 한 해 동안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일은 아닐 텐데, 메시지를 보내는 그 순간까지 참 많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는 어렵지 않다. 오히려 내가 보낸 인사를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고민이 더해져 내 엄지를 멈추게 한다.


작년에는 서비스 1년 차를 마무리하면서 우리 팀과 함께했던 모든 아티스트들에게 직접 쓴 손편지와 선물을 보냈다. 거의 100장에 달하는 엽서에 한 명 한 명 다른 메시지를 담았고, 그에 대한 감동적인 답장들은 내년에도 꼭 이 마음을 이어가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올해는 더욱 바빠진 일정 속에서 그 결심을 지키지 못했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있지만, 사실 이런 관계 맺기가 나에게는 여전히 쉽지 않은 도전이다.


돌이켜보면, 예전의 나는 연말 인사가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업무적 성과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것을 놓친 것에 대해 깊은 아쉬움을 느낀다. 이러한 변화는 어쩌면 내가 리더로서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팀을 이끄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단순히 업무적 성과를 내는 것을 넘어,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배워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진심 어린 마음은 차고 넘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은 나의 성향은 여전하다. 상대방이 내 연락을 부담스럽게 느끼지는 않을지, 혹시 거절당하지는 않을지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때로는 이런 고민들이 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떨쳐내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런 고민들 역시 내가 더 나은 리더가 되어가는 과정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고민하고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는 성장의 증거일 것이다.


연말연시 인사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축복받은 일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책임감으로 다가온다. 한 해 동안 받은 도움과 신뢰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단순한 예의를 넘어, 앞으로도 계속될 관계에 대한 약속이기도 하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관계의 중요성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나의 불편한 지점과 마주하는 것. 이것이 바로 리더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또 하나의 숙제가 아닐까. 비록 올해는 작년만큼의 정성을 담지 못했지만, 이런 고민과 아쉬움조차 내가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믿는다. 때로는 완벽한 실행보다 이런 진정성 있는 고민과 노력이 더 가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창밖을 찾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