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경이 변기에 빠진 것이었다. 스르륵 가라앉는 안경을 나는 보고만 있었다. 안경이 물 위에 떠 있던 그 찰나에 재빠르게 건져낼 대담함과 순발력은 내게 없었다. 우유부단함의 대가로 나는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변기의 밑바닥까지 짚어야 했다.
삼재는 삼재인가 보네.
나는 주운 안경을 박박 닦으며 불운의 서막이 열렸음을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임인년 음력 1월 1일, 삼재가 시작되던 날이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또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유독 미신에 이끌리는 사람이었다. 교복을 입던 시기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떡볶이를 먹을 돈을 아껴 타로집을 찾았다. 스무 살이 되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사주, 관상, 손금을 보러 다녔고 애인이 생기면 궁합을 보러 갔다. 회사를 다닌 이후로는 연말마다 신점을 보는 게 연례행사가 되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서 온갖 점을 보고 다녔을까. 아마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나를 명확한 단어로 설명해주는 게 듣기 재밌었던 것 같다. ‘너 정말 예민해.’, ‘끈기가 좀 없네.’, ‘왜 그렇게 오지랖이 넓어?’ 누군가가 했으면 무례하다고 느꼈을 나에 대한 판단들을 무당이 하면 흥미로웠다. 또 내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말을 들으면 지난한 과거와 현재가 위로받는 기분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점괘를 맹신하는 편은 아니었다. 무당들은 연애를 하라고, 또는 연애를 하지 말라고, 회사를 그만두지 말라고, 문신을 그만하라고 조언들을 건넸지만 나는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다.
무당의 말을 듣고 처음으로 두려운 기분이 들었던 건 26살의 신년운세를 보러 간 날이었다. 무당은 자신이 모시는 신과 교감하는 듯한 행동을 취하더니, 한숨을 푸욱 쉬며 말했다.
“너무 안 좋아.”
“네?”
“올해 너, 회사 일도 잘 안 풀리고, 심하게 우울해져. 몸 고생 마음고생하다가 26살이 다 갈 거고. 그럼 이제 27살부터 29살까지는 삼재고. 남은 20대가 힘들기만 하겠어.”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은 채 앉아 있었다. 그럼 어떡해요? 내가 묻자 무당은 기다렸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굿을 하면 좋은데, 아직 나이가 어려서 굿 할 돈은 없을 거고. 부적을 쓰든가 살풀이를 해야지.”
부적은 30만 원부터, 살풀이는 50만 원부터…. 이어지는 무당의 말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생각해보고 다시 올게요, 나는 풀이 죽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날의 찝찝함은 오래 지속되었다. 26살이 얼마나 끔찍할지, 27살부터 시작될 삼재는 얼마나 끔찍할지 상상하며 스스로 만든 그 괴로운 공상 안에서 허덕였다. 피곤하면서도 잠들지 못하는 밤에는 옆으로 누워 포털사이트에 ‘삼재’를 검색했다.
삼재는 9년 주기로 돌아오는 세 가지 재난이다.
한 번 오면 3년 동안 이어진다.
역산해보니 나의 첫 삼재는 3세부터 5세까지였고, 두 번째 삼재는 15세부터 17세까지였다. 첫 삼재에는 내게 어떤 액운이 들이닥쳤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확실한 건 15세부터 17세까지는 끔찍했다. 특히 17세가 그랬다. 나는 열일곱 살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도 열일곱 살이었던 해에 묶여 있었다. 나의 고장 난 부분을 발견할 때마다 이게 다 열일곱 살 때 망가진 부분을 수리하지 못하고 지나왔기 때문이라 생각해왔다. 그때 같은 재해가 또 벌어진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삼재에 대한 두려움은 날로 몸집이 커졌다.
그런데 26살의 해가 반 이상 지나는 동안, 이상할 만큼 별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일들이 이어졌다. 회사 생활은 원만했고 동료들과는 회식이 싫지 않을 만큼 마음이 잘 맞았다. 나를 위하는 척 나쁜 영향을 끼치던 사람들과는 시원하게 관계를 끊어냈다. 결정적으로 여름에는, 절교했던 해마, 하늘소와 화해를 했다. 이렇게 좋은 일들이 이어졌는데도 나는 여전히 경계 태세였다. 언제 내릴지 모를 비를 두려워하느라 내게 찾아온 좋은 날씨를 마음 편히 누리지 못했다.
화해를 하고 예전만큼, 어쩌면 예전보다도 가까워진 해마와 통화를 하던 가을의 한 새벽이었다. 우리는 예전과 다름없이 미신 토크를 즐겼다. 올 연말에는 어디를 가서 점을 볼까. 목동에 지금 신빨 최고조인 무당이 있다던데. 예전에 우리가 갔던 곳은 이제 별로더라. 수도권 전역의 점집들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는데, 해마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너 강남에서 점 봤을 때, 그 무당이 너한테 친한 친구들이랑 절교할 거라고 했잖아.
그때 니가 그 얘기하면서 우리랑은 절교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아”
“그 해에 절교했지.”
나를 놀라게 했던 건, 그때 그 무당의 예지력이 아니었다. 무당이 예지한 걸 수도 있는 우리의 절교를,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뒤집고 화해를 했다는 것. 그 사실이었다.
그걸 깨달았을 때의 기분은 뭐랄까, 무당의 아킬레스건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하긴 신의 아들도 약점이 있었는데 무당이라고 허점이 없을 리가 없었다. 무당은 틀린 예지를 하기도 한다. 예지가 적중하더라도, 우리는 그걸 뒤엎을 수 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또다시 삼재를 검색했다. 기존의 검색이 두려움을 동반했다면, 이번에는 전략적으로. 적을 알기 위해, 그 적을 이겨먹겠다는 마음으로 키패드를 눌렀다.
검색 페이지를 넘기고, 또 넘기고. 게시물을 한 개를 보고, 열 개를 보고, 백 개를 볼수록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말을 하고 있다는 것. 3년 내내 재난을 조심해야 한다는 사람. 첫 해에는 직장, 두 번째 해에는 가정을 살피고 세 번째 해에는 삼재를 잘 보내주기 위해 심신을 바르게 하라는 사람. 사실 삼재는 그렇게 나쁜 게 아니라는 사람. 오히려 삼재에 운의 흐름이 바뀌어 큰 복이 올 수도 있다는 사람. 복삼재 같은 건 없다는 사람….
쏟아지는 글자들이 나를 둘러싸고 자기들끼리 왁자지껄 언쟁하고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휴대폰을 협탁 위에 엎어놓았다. 한순간에 글자들이 입을 닥치고 방 안에는 차분함이 찾아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중에 맘에 드는 것만 믿는다. 내 삼재에는 큰 복이 올 것이다. 무탈하게 지나갈 것이다.
삼재에 관한 수백 개의 게시물을 읽은 그날, 나는 한 블로그에서 <간단하고 돈 많이 안 드는 액땜 방법>이라는 게시물을 발견하기도 했다. 글쓴이는 부적이나 굿처럼 돈이 많이 들고 전문가가 필요한 액땜이 아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액땜 방법을 몇 가지 소개했다. 그중에서 내가 골라 믿은 것은 규칙적인 운동이라고 쓰인 4번 항목이었다.
‘규칙적으로 땀을 흘리는 운동은 강하게 한 대 맞을 것을 여러 대 나누어 맞는 것과 같은 분산 행위입니다. 우리가 운동을 한다는 것은 격하게 몸을 쓴다는 것이고 이것이 비록 큰 흉액에 비할 바는 못 하지만 여러 번 자주 하게 되면 큰 고통을 나누는 효과가 되는 것입니다.’ 1)
운동은 내게 있어 고통스러운 일이 맞다. 유산소 운동을 할 때 숨이 벅찬 느낌. 근력 운동을 반복할 때 한계치에 다다르는 기분. 그리고 그다음 날의 근육통. 이런 걸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나는 딱히 그렇지 않다. 하지만 이것들이 내가 겪었어야 할 큰 불행을 잘게 쪼갠 액운이라면? 그 고통은 고통이라는 이름을 주기에도 민망한 귀여운 것들로 느껴질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즐길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안경을 변기에 떨어트린 건 내가 바보 같아서가 아니고 삼재 때문이다. 안경을 변기에 떨어트리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일이 3년 안에 일어날 수 있지만,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 삼재 때문이다. 나는 자책하고 싶을 때 적당히 삼재 탓을 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일단 헬스장에 간다. 부적도 굿도 아닌, 운동으로 액땜을 하기 위해서.
1) 네이버 블로그 - 탈도사의 역학나눔터 https://blog.naver.com/ionica/221210454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