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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래 Dec 17. 2021

(또다시) 퇴사 일기

(또다시) 퇴사 일기 上

- 마지막 1도     


나는 ‘열 받는’ 상황이 생기면 실제로 머리에 열이 오른다. 그러니까 스트레스를 받으면 머리가, 두피가 알람이라도 울리듯 뜨거워진다. 그렇게 열 받은 머리에는 쿨링 스프레이를 뿌리거나 선풍기를 쐬어 주어야 서서히 열이 내린다. 

올해 하반기에 잠깐 다닌 회사는 내게 (나쁜 쪽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곳이었다. 그곳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고 배울 점이 많았는데, 문제의 인물이 하나가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 회사에 제 발로 기어들어갔지만 사실 그는 이미 소문이 자자한 사람이었다. 폭언으로 고소를 당할 뻔했다더라, 밤늦게 전화해서 소리를 지른다더라, 가스라이팅 천재라더라…. 

입사하고 나서야 이 소문들을 접했는데, 그때만 해도 난 꽤 긍정적이었다. ‘요즘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 소문이 부풀려졌겠지.’ …긍정적인 게 아니고 안일했던 것 같다.

심지어 그는 내 직속 상사였다. 일한 지 일주일 정도가 되었을 때, 왜 이 자리가 일 년 동안 사람이 일곱 번 바뀌었는지 깨달았다. 친한 작가들과의 단톡방에 ‘오늘의 그분 어록’ 시리즈를 연재했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근무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눈에 띄게 안색이 어두워진 나를 보며 엄마도, 친한 작가들도, 친구들도, 상담 선생님도 회사를 그만두라고 했다. 하지만 이상한 오기가 생겨 그만두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결연하게, 쓸데없는 다짐을 했다. 여기서 1년 버틴다.


1년을 버티겠다는 목표는 매일매일 위기를 맞았다. 근무한 지 3개월쯤 되었을 때는 미용사가 깜짝 놀랄 정도로 두피가 붉은 상태였다. 자려고 누우면 베개에 닿는 부분이 아파서 엎드려 자야 할 지경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쿨링 스프레이는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했다. 그럼에도 습관적으로 머리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통에서 아무것도 분사되지 않았다. 통을 세차게 흔들어 봤지만 빈 통인 게 확실했다. 벌써 다 썼네. 집 근처 올리브영에 다녀오려고 체크카드를 찾아 책상을 더듬는데, 갑자기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한테 띄어쓰기도 하지 않고 카톡을 와다닥 남겼다.

[내가이렇게착취를당하고]

[니가하는게뭐가있냐는소리들으면서돈벌어야될까?]

[근데그돈으로쿨링스프레이사러가야돼ㅡㅡ머리에또열올라서]

친구의 답장을 기다리며 괜히 팔짱을 끼고 천장을 노려보고 있는데, 불현듯 한 명언이 떠올랐다. 

‘99도까지 열심히 올려놓아도 마지막 1도를 넘기지 못하면 영원히 물은 끓지 않는다.’

김연아 선수가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으로 했던 말이다. 이 말은 당시 중학생이었던 내게 줄넘기 한 세트, 공부 10분 더 할 힘을 줬었다. 

시간이 흐르며 그때만큼 열정을 쥐어짤 일이 없어진 탓인지 이 말은 자연스레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그래도 그렇지, 내 학창 시절의 열정을 뜨겁게 데워주었던 이 소중한 명언이 떠오른 게 하필 지금이라니….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멋진 은유는 사라지고, 정말 100도까지 빡쳐버려서 이 문구가 다시 생각났다니. 가스라이팅 천재의 능력은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1년은 버텨보자는 스스로와의 다짐이 무색하게 나는 이내 사표를 던지고 말았다. 11월 중순의 초겨울 밤이었다. 내게 퇴사는 언제나 그렇듯 꽤 짙은 씁쓸함을 동반했다. 좋았던 직장을 단 한 명의 빌런 때문에 그만두는 게 억울했던 것도 같다. 

그럼에도 퇴사는 2021 베스트 선택 5위 안에 드는 선택이었다. 나는 퇴사를 응원해준 친구들한테 메시지를 보내고, 같은 동네에 사는 찰리 선배에게도 카톡을 보냈다.

[선배 저 진짜로 그만뒀어요!]

선배는 이내 답장을 보내왔다.

[간단하게 축하 파티?]


밤 10시쯤이었다. 집에 냉동 붕어빵을 구비해둔 나는 팥과 슈크림 중 무엇을 들고 갈지 고민하다가, 둘 다 한 봉지 씩 챙겨 선배의 집으로 갔다. 대문을 노크하기가 무섭게 선배는 현관문을 벌컥 열고 “축하합니다!”라고 외쳤다. 선배는 상을 펴고, 냉장고에서 녹차 아이스크림을 꺼내 왔다. 퇴사만 하면 머리 위에 폭죽이 터지고 등 뒤에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이 들릴 거라는 환상이 깨진지는 이미 오래였다. 역시나 화려한 선상 파티는 열리지 않았지만, 그 대신 간소한 야식 파티가 시작되었다. 호스트인 선배는 잠옷을, 게스트인 나는 무릎이 늘어난 트레이닝복을 입고 자리에 앉았다. 


나는 팥 붕어빵을 좋아하는데, 선배는 슈크림 붕어빵이 더 좋다고 했다. 각자 다른 맛의 붕어빵을 한 입 베어 물고, 녹차 아이스크림을 한 숟갈 떠먹었다. 달달하면서도 쌉싸래한 맛이 입안을 감쌌다. 우리는 새벽까지 이어질 대화를 시작했다. 나는 보따리를 풀어놓듯 해묵은 이야기를 하나 둘 꺼내놓기 시작했다. 평소 자정이면 잠드는 선배는, 그날 나의 말 한마디 한 마디를 주의 깊게 듣고 대답해주느라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다.


*

       

(또다시) 퇴사 일기 下

- 쿨 다운


퇴사를 하고 2주 정도는 폭음을 했다. 제주도에서도, 남의 집에서도, 중국집에서도, 위스키 바에서도, 치킨 집에서도, 이자카야에서도…. 단기간에 오만 주종의 술을 양 껏도 마셨다. 보고 싶은 사람만 만나서 마셨다. 즐거웠다.


2주를 신나게 놀기만 하니, 슬슬 정신을 차려볼까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바뀐 밤낮을 되돌리고, 알바를 시작하고, 몇 년 동안 쉰 운동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우선은 집 근처에 점찍어둔 헬스장을 등록해야겠다 싶었다. 전화를 걸어 지금 등록하러 가도 되냐고 물으니 밤 9시쯤 상담을 받으러 오라는 답을 받았다. 시계를 보니 네 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다. 전화를 끊고 부엌으로 가 시리얼을 한 그릇 말아 왔다. 

시리얼을 한 숟갈 뜨며 티브이를 켰다. 밥 로스 아저씨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저씨는 세상을 떠난 지 오래지만 그의 영상은 남아 지금까지도 재방송이 되고 있었다. 12월답게 밥 아저씨는 설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하얀 설원을 완성한 아저씨는 이내 그 위로 침엽수를 그려 넣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붓 안에 나무가 있어서, 종이 위로 스치기만 해 주면 나무가 그려지죠.”

나는 “와”하고 소리를 냈다. 나도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원고를 쓴 뒤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제 손가락 안에는 글이 있어서, 키보드 위에 손을 얹기만 하면 원고가 나오죠.”


<밥 로스의 그림을 그립시다>가 끝나고, TV쇼 몇 편을 더 보니 헬스장 상담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패딩을 걸쳐 입고 집을 나서 10분 정도를 걸었다. 처음 가본 그 헬스장은 기존에 다니던 곳보다 멀고 작았지만, 직원들이 친절했다. 그거면 됐지, 나는 결제를 마치고 헬스장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운동을 시작했다.

근육질의 사람들이 자기들 얼굴보다 큰 아령을 들고 씩씩대며 팔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 틈에 슬그머니 들어가 내가 들 만한 아령을 찾았다. 예전에 그래도 3kg씩은 들었던 거 같은데… 3kg짜리 아령을 드는 순간 무리라는 걸 깨달았다. 고작 몇 년 운동에 소홀했다고 이토록 퇴보한 몸이 야속했다. 나는 별 수 없이 너무나 앙증맞은 1kg 아령을 집어 들었다. 오히려 딱 좋다는 생각이 들어 머쓱해졌다.

헬스장 고인물들 사이에서 혼자 초등학교 체육 활동 같은 운동을 하고 있는 나를 거울을 통해 보니 제법 귀여웠다. 실실 새어 나오는 웃음은 다행히 마스크가 가려주었다. 팔 운동이 20회 정도가 넘어가자 웃음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몇 세트를 더 하고 나니 팔뚝이 불주사를 맞은 것처럼 얼얼했다. 아령을 제자리에 두고 러닝머신으로 피신했다.

러닝머신을 이용하는 사람들 중 가장 느리게 걸으며 잡념에 빠져들었다. 회사 일이 딱 이 정도의 스트레스라면 얼마나 좋을까? 잘하지 못 한다고 해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면. 원고를 잘 쓰지 못 한 날에는 TV를 똑바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남들은 다 퇴근한 사무실에 혼자 남아 아무리 고쳐도 미완성 같은 내 원고와 씨름을 하면 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이상과 실력의 괴리를 절감하는 무한 굴레. 욕심을 내면 낼수록 괴로워졌다. 

그렇다고 해서 욕심을 내지 않으면 나의 결과물은 최악으로 구려졌다. 내가 욕심 없이 쓴 원고를 아나운서가 또박또박 정확한 발음으로 읽고, 전국의 시청자들이 보고 듣고, 마지막에는 피할 수 없이 스크롤에 내 이름이 박힌다는 것. 그러니까 아무리 고쳐도 미완인 원고가 방송에 나간다는 건, 대사를 까먹은 연극배우가 되는 느낌이었다.


며칠 후, 찰리 선배를 다시 만나 칵테일 바에 갔다. 대저택을 개조한 멋진 공간이었다. 2층에서는 거대하고 푹신한 소파에서 칵테일을 마실 수 있었고, 지하에서는 디제잉을 구경하고 춤을 출 수 있었다. 최근 하우스 댄스를 배우고 있는 선배는 내게 기본 스텝을 가르쳐주었다. 제자리에서 뛰며 양쪽 다리를 한 번씩 앞으로 찼다가 뒤로도 차는 동작이었다. 은근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동작에 이따금 비틀거리면서도 나는 외투를 벗어던지고 열심히 선배를 따라 뛰었다. 처음으로 모든 스텝을 박자에 맞춰 밟았을 때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재밌다고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몇 번이나 “재밌다!”라고 뱉었다. 정신없이 놀고 있는데, 선배가 갑자기 소리쳤다.

“막차!!!!!”

우리는 말없이 신속하게 각자의 외투를 집어 들고 버스 정거장으로 뛰어갔다.

다행히 막차를 사수한 우리는 버스를 타고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나는 가쁜 숨을 서서히 가라앉히며 잠시 밖을 바라보았다. 주황색 가로등에 비해 차가운 느낌을 주는 흰색 가로등들이 줄지어 빛나고 있었다. 난시가 심해진 탓에 하얀빛이 심하게 번져서 보였다. 바에서의 열기가 순식간에 식고,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호흡이 제 속도로 돌아온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렇게 연말을 재밌게 보내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왜? 왜 안 돼?”

그러게 왜 안 되지? 나는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다시 한번 내 머릿속을 뒤져보다가 답을 내놓았다.

“선배도 엄마도 친구들도 요즘 다 바쁘거든요. 저는 방학을 직접 만들다시피 연말만 되면 회사도 그만두고 노는데. 이 악습관을 깨야 어른이 될 것 같아요.”

여기까지 말했을 때, 내가 퇴사하던 날 선배와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똑같이 생긴 붕어빵들을 내려다보던 선배가 말했다.

“회의를 하면서 기획이 계속 바뀌어 가잖아. 그건 발전하는 걸까, 틀에 맞춰지는 걸까?”

선배가 내게 답을 기대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는 각자 곰곰이 생각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나는 선배에게 이어 물었다. 연말에도 일을 해야만 어른이 될 것 같은 마음은…

“성장하는 게 아니고 틀에 맞춰지는 건가?”

내 물음에 선배는 웃지도 않고 힘주어 답했다.

“어. 완전.”


선배가 버스에서 먼저 내리고, 혼자 집까지 가는 길에 올리브영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내 쿨링 스프레이가 어디 갔더라? 아마도 요즘은 잘 쓰지 않아 화장대 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 같았다. 언젠가는 또 일 때문에 괴로운 밤이 찾아올 거고, 그러면 다시 쿨링 스프레이를 꺼내 시도 때도 없이 뿌려대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당장은 두통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스프레이 없이도 열을 내리는 법을 조금씩 터득해가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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