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 해가 또 갔어. 한두 해 산 것도 아닌데, 매년 해가 바뀔 때마다 시간이 빠르다며 새삼스러워하는 게 좀 이상해. 아니, 오히려 가면 갈수록 시간의 빠름을 더욱 절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중에는 시간이 롤러코스터처럼 빨라져서 심하게 멀미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은 12월 7일이고, 나는 친구들과 속초에 와 있어. 속초에 비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기꺼이 이곳을 찾았어. 속초에서의 첫 번째 일정은 막국수와 수육을 먹는 것. 해마와 하늘소는 벌써 세 번째 이곳을 찾았대. 해마가 처음에 여길 왜 오게 됐는지 말해줬어. 인터넷에서 어떤 사람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이곳에서의 식사라고 했다는 거야. 나의 마지막 식사는 뭐가 될까?
밥을 먹고 우리는 카페로 갔어. 속초 바다 바로 앞에 자리한 카페야. 모든 좌석이 창가를 향해 있어서 바다를 감상하기에 최고야. 생각보다 비는 많이 오지 않고, 흐릿한 하늘에 닿을 듯이 높게 철썩이는 바다가 꽤 멋져.
나는 소파 자리에 앉아서 이걸 쓰고 있고, 네 시간을 내리 운전한 하늘소는 내 오른쪽에 앉아서 자고 있고, 해마는 저쪽 테이블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어. 평일인 데다 비가 와서 그런지 카페가 엄청 조용해. 창문 밖에서는 시원하게 파도가 치는데, 나는 담요를 덮고 있어서 그런지 따뜻하다고 느껴. 은은한 노란색 조명이 포근함을 더해주는 것 같아.
문득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게 낯선 기분이 들기도 해. 그러니까 평일 낮에,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느슨하게 앉아 있다는 사실이 생경했어. 이 공간에 분명하게 살아있는 나를 느끼고 싶어져서 내 숨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았어. 그러다 생각했어.
지금 유서를 써야겠다고.
정확히 말하자면, 유서는 아니고 유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 처음 유서를 써본 게 고등학생 때니까, 꾸준히 유서를 쓰게 된 지 벌써 10여 년이 되었더라고. 사람들은 내게 왜 매년 1월 1일마다 유서를 쓰냐고 묻지만, 이유 같은 건 딱히 없어. 그냥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연례행사 같은 게 됐을 뿐이야. 하지만 분명한 건 한 해를 갈무리하는 이 작업을 통해 남에게 더 친절해졌던 해가 있고, 나에게 더 친절해졌던 해가 있었다는 거야. 모든 삶에는 끝이 있다는 걸 쉽게 잊게 되는데, 이 행사가 시작된 이후로는 누구에게나 마지막이 있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가게 된 것 같아.
올해는 어떤 유서를 쓰게 될까? 2021년은 나한테 정말 의미 있는 해였거든. 내 일상은 안이 썩어 있는 잔잔한 물웅덩이 같았는데, 그 부패하고 평화로운 수면 위로 내 손으로 돌을 던졌다고 느껴져.
그동안 꽤 많은 입사와 퇴사를 반복한 나지만, 올해는 처음으로 퇴사를 하고도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았어. 신기하지 않아?
나는 방송작가라는 직업에 깊이 뿌리내리고 싶었어. 그런데 이곳은 내 상식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곳이기도 했던 거야. 아슬아슬한 상태로 출근을 해내다가 결국 회사를 그만뒀던 작년 가을, 난 스스로의 나약함에 치를 떨고 슬퍼하는 밤을 매일매일 보내야 했어.
마음이 조금 추슬러졌을 때 다시 일을 시작했고, 그 팀에서 올해 상반기를 보냈어.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좋았고, 프로그램도 나랑 잘 맞아서 일을 해나가는 게 재밌었어.
그러다 하반기에 이직을 하게 됐지. 아마 다들 알겠지만, 그 팀의 관리자는 꽤 지독한 인물이었잖아. 나는 그에게 갉아 먹히면서도, 버텨내고 싶어 했어.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이곳이 썩은 흙이 담긴 화분이라면, 굳이 여기에 뿌리내릴 필요가 없겠다고. 더 비옥한 흙이 담긴 화분으로 옮겨 가는 게 좋을 수도 있겠다고. 어려워 보여서 미뤄놨던 분갈이가, 막상 해놓으면 언젠가는 식물을 훨씬 더 푸르게 성장시키는 것처럼.
지금 나는 내 상태가 만족스러워. 퇴사하고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바다를 두 번이나 봤어. 나는 바다를 좋아하는 걸 인정하기로 했어. 왜 좋은지 이유를 잘 모르겠어서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웠지만 이유 없이 마음이 가는 것들이 분명히 있으니까.
그래서 파도 사진이 담긴 2022년 일력도 샀어. 푸르지만 다 같은 푸른색이 아니고, 반짝이지만 다 같은 반짝임은 아닌 바다의 다양한 모습이 담겨 있어. 그 종이들을 떼어내며 내년의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 거란 게 기대돼.
그러니까 나는, 내년에도 살고 싶어. 바다를 보고, 엄마와 해안선을 따라 걷고, 파도소리에 섞이는 친구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흙먼지를 뒤집어쓴 강아지를 씻겨 주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일을 하면서 그냥 그렇게 매일을 보내고 싶어. 작년 이맘때에는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두려웠는데, 언제 이렇게 삶을 사랑하게 됐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유서를 쓸 거야. 죽음은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피해가 주는 배려 따위 하지 않으니까. 삶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유서를 굳이 남기는 이유는, 남은 사람들의 시간이 마저 잘 흘러가길 바라기 때문이야. 비가 멎고 맑아진 날의 잔잔한 바다처럼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