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알려주신 것
어렸을 때 나의 어머니는 괴한을 만난적이 있다.
하루는 퇴근하시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형과 나, 아버지 세 식구가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때였다. 아버지가 전화 한통을 받으시더니 부랴부랴 움직이셨다.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일이 생긴 것 같다고 하시며 빠르게 집을 나가셨는데, 그 당시 추운 겨울이어서 파카 하날 걸치시고 나가셨다.
이야긴 즉슨 어머니가 돌아오시는 골목 길에 흉기를 든 괴한들이 차에 어머니를 강제로 태우려 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어머니가 손을 뿌리치고 달아나셔서 괴한들이 어머니를 태우지 못했는데, 그것 때문에 손에 상처가 나신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린 나는 완력으로 이길 사람이 별로 없으니 모든 사실들을 받아들이며 그저 장면을 상상할 수만 있었다. 지금도 그때 느꼈던 떨림, 아버지가 입으셨던 노란색 파카가 기억에 남아있다. 어머니는 경찰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셨고, 그 와중 아버지도 함께 하셨다.
성인이 된 지금, 난 가끔 내가 으슥한 곳을 지날 때 누군가에게 위협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그만큼 나는 몸과 정신이 자랐고, 같은 상황이라면 아버지처럼 옷하나 걸치고 뛰어나가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만큼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하루는 고향에 돌아와 예전에 지냈던 장소를 돌아보고 지역의 어른들과 만나게 되었다. 그간 충남을 시작으로 강원도, 경기권까지 거처를 옮기며 지냈더니 나를 꾸준히 보아온 사람을 만나기가 힘든 터였다. 그런 중에 지역의 어른께서 '상규야, 네가 벌써 이렇게 컸구나'라는 한마디를 지나가며 던지셨는데, 순간 가슴에 처음 느껴보는 듯한 감정이 밀려왔다.
고향에 오기 전엔 누굴 만나도 나를 잘 아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려니하며 살던게 무뎌져 '이 정도 살아내는 게 나라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 분의 말 때문에 나는 스스로는 확인할 수 없는 나의 궤적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는게 놀라웠나? 아니다. 그것보다도 더 깊은 무엇인가가 있었다. 직업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남자로서 느끼는 자존심과 더 비슷했던 것 같다.
괴한이 와도 아무 손 쓸 수 없었던 꼬맹이가, 이젠 누군가를 지켜줄 만한 사람이 되었다는 게, 당연하면서도 새삼스럽게 여겨졌다. 나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나와 동갑인 한국인들이 요즘엔 우울증으로 괴로워 한다고 한다. 나 역시 공황 비슷한 것을 겪은 적이 있었는데, 이와 같은 경험이 내겐 깊은 치유를 가져다 주었다.
오늘도 수고한 당신에게, 아니 꼬맹이에서 지금까지 잘 자라온 자신에게 한마디 해주면 좋겠다. '너 잘 컸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