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에 대한 단상
감정은 소모적이고 계산에 맞지 않는 것으로 쉽게 치부되는 세상.
내가 너를 볼 때 네가 아닌 너를 겹겹이 둘러쌓은 수식어들로 너를 평가하고 재단하는 사회.
그렇다면 우리 삶에서 사랑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사랑해야 할까.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 거지.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2003)”은 그럼에도 사랑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사랑해야만 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일반적인 사회 통념과 상식에서 벗어나 있는 존재들이다. 주인공 열네 살 모모의 눈으로 보아도 그들은 모두 ‘똥 같은 인생들’이다. 대부분은 빈곤하고 못생겼으며, 등장인물들 중 한 명은 성 정체성까지 남들과 다르다.
그래서 그들은 몸을 팔고 양심을 팔고 과거와 미래까지 모두 팔아 눈앞에 닥친 지금 이 순간만을 견뎌낼 뿐이다.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 사랑해야 한다.
사람이 죽어도 3주 후에 그저 참을 수 없는 악취에 열어본 방문으로 발견되는 곳.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지나가지만 그 누구도 관심을 보내지 않는 그 낡고 허름한 건물에 사는 그들이 서로를 사랑한다.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서였다.
세상에는 고통이 가득하고 삶은 죽음을 맞이한다.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삶들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왔을까.
그러니 사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