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가볍고 경쾌하게 받아들이는 법
첫 회사에 들어갔을 때를 떠올려보면 그렇게 묵직할 수 없었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 탓에 오히려 일을 그르치기도 하고, 여기를 얼른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은 마음대로 붕 떠다녔다. 퇴근을 하자마자 이것저것 나의 것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다가 때 이른 대상포진을 겪기도 했다. '퇴사'에 천착해서 관련한 글을 쓰다가 아예 책도 내버렸다. 그땐 '일'이라는 주제가 그토록 중요했다.
사실 새로운 회사에 들어간 지금에도 이런 마음은 변함이 없다. 다만 이젠 회사도, 일도, 퇴사도, 심지어는 '나만의 것'이라는 목표도 조금은 가볍게 다가온다.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부담감이 줄었다는 거다. 그저 내 삶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찬찬히 관조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에 불과하다 정도의 그림이랄까.
일상적인 수준이라면 세상에는 꼭 해야 하는 일도,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없다고 믿는다. 모든 선택에는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결과가 따르고, 이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회사를 다녀도, 퇴사를 해도, 이직을 해도, 사업을 해도, 크리에이터가 돼도, 무직 백수의 삶을 누려도 괜찮다. 어차피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젊은 나이에 명을 달리하는 극단적인 경우부터 시작해서, 회사도 커리어도 직업도 사업체도 꿈도 목표도 다 변화하고 사라진다. 철밥통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몸이 아프거나 사고를 당해서 일을 하지 못할 수도 있고,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를 할 수도 있다. 설령 연금 수령 시기까지 악착같이 버텨내도 그 후에 관련 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내 신변에는 어떤 위협이 닥칠지 알 수 없다.
사업을 하면 성공하는가? 크리에이터가 되면 자유롭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가? 대기업에 들어가면 평생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가? 이직을 하면, 혹은 하지 않으면 커리어가 꼬이는 건가? 소위 명문대에 들어가면 인생이 펴는가? 개발자만 되면, 의사만 되면, 회계사만 되면, 판검사만 되면, 사장만 되면, 유튜버만 되면, 베스트셀러 작가만 되면, 국회의원만 되면 만사가 형통한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대개는 아니다.)
이제는 안다. 일에서 비롯되는 대부분의 문제는 그 선택 자체가 아니라, 선택에 대한 마음가짐에서 온다는 걸. 어떤 선택을 한들 매번 그보다 나은 결과와 비교한다면 어차피 구원은 없다는 걸. 그렇다고 현실에 자족하면서 대충 살라는 말은 아니다. 그냥 좀 슴슴하게 지금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거다.
이번에 구직을 하고, 또 재입사를 하면서 많이 느꼈다. 전보다 회사라는 조각이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걸. 예전부터 해보고 싶은 직무였는데도 그렇다. 물론 업무를 하면서는 최선을 다 할 테지만 내 삶의 명운을 걸고 악착같이 살지는 않으려고 한다. 30~40대에 건강이 무너지거나 안타깝게도 돌아가시는 분들의 소식을 들을 때면 모든 걸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말자고 다짐하게 된다. 그 어떤 것도 내 삶의 전부는 아니다. 심지어 삶 자체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