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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Oct 20. 2024

주인의식을 외치는 리더, 자유의지를 꿈꾸는 직원

리더와 직원의 동상이몽

A 대표는 유통사에 밀키트를 납품하는 B 회사를 이끌고 있다. 처음에는 생존을 걱정할 정도로 불안했지만, 이제 어엿한 중소기업으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하지만 언제나 위기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한 거래처에서 매입을 차일피일 미루더니 급기야 계약 해약을 통보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당장은 문제가 없지만,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재정에 악영향을 미칠 게 뻔하다.

그동안 회사의 영업은 사장인 그가 전담해 왔다. 워낙 마당발인 데다 유통사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살려 성공적으로 회사를 이끌었던 그다. 하지만 이제 혼자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렇다고 영업 전담팀을 꾸리기에는 인건비가 부담이다. 그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물끄러미 직원들을 바라본다. 이런 회사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멍하게 시키는 일만 하고 있다. 이대로는 다 함께 침몰하리라는 사실을 정말 깨닫지 못하는 걸까?

그는 직원들을 불러 모은다. 다들 어리둥절한 모양새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주인의식'이나 '영업 마인드'를 강조한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브리핑만 하고 끝내려고 했는데,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니 잔소리가 계속 불어난다. 결국 월요일 아침부터 2시간 동안 장광설을 늘어놓게 되었다. 그동안 쌓인 것도 포함해서 쏟아놓다 보니 말이 점점 길어진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경영진의 시선은 안으로 향하게 된다. 생존의 문제가 닥치다 보니 시야가 좁아지는 탓이다. 평소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탕비실에서의 잡담이나 사원증 패용 여부도 거슬리기 시작한다. 차마 월급을 깎을 수는 없으니 복지를 줄이고 잔소리를 늘리기 시작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흔히 등장하는 단어가 '주인의식'이다. 즉 자신이 회사의 주인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업무에 임하라는 말이다.


사실 주인의식은 비단 조직뿐만이 아니라 직원 개인에게도 긍정적이다. 상사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고, 자신의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 '내가 이 회사의 주인이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궁리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책임감을 기를 수도 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주인의식이 이상적으로 작동했을 때의 얘기다.


보통 주인의식이나 영업 마인드라는 단어가 나오는 시점은 사내 분위기가 흉흉할 때다. 조직만이 아니라 직원 개개인도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므로, 이미 다음 행선지를 찾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을 확률이 크다. 혹은 겨울에 몸을 웅크리는 동물처럼 한파가 지나가기만 기다리거나.


주인의식에 대한 대표적인 반론은 '주인이어야 주인의식을 가지지'라는 문장이다. 시민이어야 시민의식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어느 정도는 맞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주인의식을 가지면 주인이다'라는 문장 역시 성립하니까. 회사의 대표라고 해서 매번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건 아니다. 어느 순간엔가는 직원이 모든 걸 다 해주길 바라면서 뒤로 빠지는 사장 역시 존재한다. 반대로 자기 업무를 정말 '내 일'로 체화하여 누구보다 나은 퍼포먼스를 내는 사람도 있다. 이런 직원은 비록 피고용인일지언정 실질적인 주인으로 보는 게 맞다.


C 과장은 B 회사의 식품 MD로 일하고 있다. 유통사나 광고 대행사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최적의 판매방안을 찾는 게 그의 일이다.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지만 A 대표는 그의 말을 묵살하기 일쑤다. '영업 출신이어서 그런가 독선적이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경쟁사가 유사한 방향의 캠페인으로 대박을 터뜨리는 걸 볼 때마다 속이 부글부글하다.

그러다 월요일 아침부터 주인의식이니 영업 마인드니 하는 단어를 마주하니 화가 난다. 저런 말을 듣다 보면 도리어 일하고 싶은 마음도 쏙 들어간다.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직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다. 그동안 꾸역꾸역 정리해 둔 포트폴리오 파일을 꺼낸다. 오랜만에 이직 플랫폼에 들어가 구직을 시작한다.


다만 권리 없이 주인의식을 계속 가져갈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회사의 지분을 나눠주든, 업무에 있어서 자율성을 부여하든 뭔가 오가는 있어야 한다. 사회생활은 계약에 의해 이루어지고, 계약이란 쌍방 간에 책임과 권리를 지우는 행위다. 탑 다운(Top-down) 방식으로 책임만을 전가한다면 그 중압감을 버텨낼 수 있을까?


게다가 '주인의식'을 가진 능력 있는 직원은 대개 '자유의지'를 강하게 가지고 있을 확률이 크다. 영화 <타짜>의 주인공 고니가 내뱉는 "어떻게 늑대가 개 밑에서 일하겠습니까?"라는 대사는 이런 아이러니를 그대로 비춘다. 스스로 알아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아예 조직을 나가 주인이 되고 싶지 않을까?


리더가 생각하는 인재는 램프의 요정 지니와도 같다.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내 말에는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하지만 지니에게도 자유에 대한 갈망이 있다. 언제까지고 내 곁에 남아 있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이걸 받아들이고 직원에게 실질적인 정신적, 경제적 보상을 준다면 조금씩 길이 보이지 않을까? 그렇게 해도 떠날 사람은 떠나겠지만 남을 사람은 남는다.


직원의 회전율(?)이 한없이 높아진 시대다. 이제는 덮어놓고 헌신만을 바랄 게 아니라, 남고 싶은 조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대표의 시선이 아니라 직원의 입장에서. 원하지 않는 선물을 줬을 때 진심으로 고마워할 사람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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