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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 율 Oct 21. 2022

친절한 영덕 Sea

게 눈 감춘다.

그렇다. 몇 해전 바닷가 갯바위에서 게와 눈이 마주친 적이 있다.

빤히 쳐다보길래 널 잡을 생각이 없다고 선량한 눈빛을 보냈다.

안심한 게의 눈은 한번 깜박이더니 이내 바위틈 사이로 사라졌다.

빨랐다. 눈 깜박임보다 게걸음이... 더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영덕 씨는 참 친절한 사람이다.

그와 만나면 기분이 좋아졌다.

카랑한 쉰 목소리로 뭐 잡술 건지부터 물어본다.

영덕은 대게인데 한우보다 비싼 몸값에 지갑 닫은 지가 오래다.


바다는 뭐

장성한 자식이 내 뒤에 서 있는 가족사진처럼

등 뒤에는 이미 푸른 바다가 펼쳐져있다.

감상은 언제라도 방향만 바꾸면 할 수 있다.

자식이야 내 맘대로 안되지만 바다는 늘 그곳에서 넘실 댔다.

바다는 보고 싶으면 보고 싫증 나면 안 보면 되니까

내 맘의 컨디션에 따라 어쩔 땐 환영을, 어느 땐 위로를 하며...

영덕 씨는 그곳에 있었다.




영덕 씨의 안내로 작은 항구를 찾았다.

좁은 도로 하나로 바다와 상가가 경계를 이루고 있고

낮은 건물보다 더 큰 고깃배가 넘실넘실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사이로 차를 몰고 들어간다.

내 왼쪽엔 공격적인 바다가 오른쪽엔 그 바다를 바라보고 사는 친절한 상인이

그리고 이방인은 그 가운데로 들어간다.

바닷가 쓰레기처럼 둥둥 든 채로...

언제나 그렇듯 흥정은 유쾌하다

대게는 역시 패스다.

활어를 먹어야겠지.

사장님은 쥐치 세꼬시를 권한다.

전에 먹어 봤던 고소하고 달큼한 육질이 맘에 들어 계산을 했다.

처음에 사장님이 당연히 대게를 먹을 줄 알고 수족관에서 꺼내

박쥐 날개처럼 다리를 잡고 펼쳐 보였던 게는 그대로 수족관으로 다시 들어갔다.

아쉬움에 다시 한번 쳐다본다.

녀석도 날 보고 있다. 눈이 마주친다. 녀석이 게눈을 감춘다.

예전에 봤던 갯바위 게의 눈과는 차이가 나는 눈 깜박임 속도다.

아마 눈에 물이 들어가서 그럴 것이다.




영덕 씨와 함께 숙소로 향했다.

아직 날이 저물지 않아 바다를 더 보고 싶었지만 스티로폼 속 쥐치 회가

발길을 재촉했다.

후포리쯤에 영덕 씨를 내려주고 숙소로 가는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찍었다.

한 20분은 더 가야 한다. 그동안 쥐치 회는 좀 더 맛있게 숙성할 것이다.

소주는 가져왔으니 이제는 숙소로 가는 것이 좋은 생각이다.

첨 가보는 숙소라 설렌다.




숙소는 생각보다 더 깊은 산속에 있었다 소나무길 사이로 한참을 올라왔다.

향긋한 솔내음이 머리를 맑게 한다.

피톤치드 단어가 자연스럽게 입안에 맴돈다.

좀 더 공기를 흡입해야겠다.

산속으로 들어가는 SUV는 그 맑은 공기를 가르며 천천히 움직였다.

그 높은 길을 올라왔는데도 오히려 차의 소음이 줄었다.

쇳덩어리 전자장치 네 바퀴 자동차도 삼림욕을 하는 것 같았다.

아니, 확실히 공기를 느끼며 달리는 듯했다.

내리막길이 시작될 때쯤 영덕 씨에게 전화가 왔다.

숙소 위치와 방호수를 알려 달란다.

영덕 씨가 숙소로 오겠다니 나는 사양했지만 전화기 넘어 영덕씨 목소리는

왠지 미안함과 뭔가를 숨긴 듯이 묘한 뉘앙스로 호수를 재촉했다.

숙소의 방 이름을 알려주고

숙소의 컨테이너 앞에 주차를 했다.

공기가 더 좋다.

한참을 벤치에 앉아 공기를 먹었다.

스티로폼 속 쥐치가 생각난 건 한참 후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연속 두 번 울어 될 때였다.



짐을 풀고 잠시 경제적인 걱정을 할 때쯤 자동차 소리가 났다.

흙을 밟고 미끄러지듯이 컨테이너 쪽으로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영덕씨는 쥐치 회의 스티로폼보다 더 큰 스티로폼 상자를 트렁크에서 꺼냈다.

"공기가 정말 대끼리죠!"

스티로폼 박스를 든 채로 영덕씨는 말했다.

"네.. 정말 공기가 맑네요..."

"여기서 주무시면 아마 머리가 깨끗해질 낍니더!"

머리가 깨끗해지면 좋지만 머릿속 글감까지 지워지면 낭패인데...

"기억은 남았으면 좋겠네요... 머리만 맑가지게..."

둘은 웃었다.


영덕씨의 스티로폼 박스 안엔 예상대로 큼지막한 대게 두 마리가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찜기에 얼마나 있었을까?

미안하고 동시에 그 맛이 기대된다.

소주를 땄다.

쥐치 회와 대게의 향연!

만찬은 길지 않았다.

대게가 금방 해체되어 껍데기만 남았다.

그야말로 게눈 감추듯 대게가 분해됐다.

거하게 취기가 오른 내 얼굴을 보며 영덕씨가 말한다.

"아마 머리도 안 아프고 푹 주무실 수 있을 거라 예..."

그렇다. 공기 좋은 산속에서의 음주라 취기가 없다.

"참 희한하네요... 기분이 정말 좋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영덕씨와 술을 마셨다.


나는 지금 '장미와 김목수'에 있다.

친절한 영덕씨는 그새 곯아떨어졌다.

영덕씨는 참 친절한 사람이다.


다음날

높이 올라오긴  했나보다

저멀리  능선 너머 바다가 보인다

이른바 동해일출

장관이다.

영덕씨는 온데간데 없다.

어젯밤 누가  왔다갔는지 기억이 없다

덩그러니 횟집 영수증과 명함이 가지런히 숙취음료와 놓여있다.

난 어젯밤 바다와 음식에 취했었다.



-장미와 김목수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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