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잡초는 없다.
어린 시절 방학숙제로 선생님께서 내주셨던 독후감 쓰는 일은 일기 쓰기와 함께 가장 힘든 숙제였다. 결국 책에 있는 줄거리를 베끼거나 몇 줄로 책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전부였다. 한 학급 학생수가 65명 정도였는데 정상적으로 독후감을 써 온 애는 두, 세명 정도였다. 다른 애들은 나와 같은 수준으로 독후감을 작성했거나 아예 숙제를 하지 않은 애들이었다.
글을 쓰는 일은 어렵고 또 행복한 일이다. 세상 어디에도 펼칠 수 없는 내 감정을 오롯이 글에는 모두 쏟아부을 수 있다. 거짓 없는 감정을 나타내는 것은 글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그래서 글은 세상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가장 사랑받는 행위이다.
글을 쓰고자 마음을 먹은 이후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글감을 찾는다. 회사 출근 준비를 해야 하는 20여분 동안에, 버스에 오르고 회사까지 이동을 하는 시간에,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는 중간에도 글에 대한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켜면 모든 것이 지워진 느낌이다. 백색 공포다. 여러 선배 작가들이 글을 쓰는 중간에 누구나 한 번쯤 백색 공포를 겪는다고 했다. 나는 아닐 줄 알았다. 글에 대한 목적이 강했고 글을 쓰는 행복이 누구보다 크다고 생각했다. 생각의 오류였다.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회사 일이 갑자기 바빠진 탓도 있었지만, 내가 가진 글에 대한 순수성이 사라진 이유도 있었다. 늘 글은 순수하고 맹목적이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다 글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꾐에 빠져 돈을 위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결국 실패했다. 무언가 바라고 글을 쓰면 글은 순수하지 못하고 목적화된다. 그런 글쓰기는 결국 자신이 가진 능력과 감정을 빼앗아가고 또 다른 굴레로 빠져들게 한다. 오랫동안 이러한 진실을 잊은 채 살다 보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백색 공포가 나를 작가에서 글쟁이로 만들었던 것이다.
글 쓰는 공포를 행복으로 바꾸는 일은 역시 실천이다. 오랫동안 쓰지 못했던 글을 다시 쓰게 된 것은 아무 이유 없는, 단지 쓰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누군가 그랬듯이 나는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하고, 가장 많이 웃고, 가장 힘이 난다. 어떤 글을 쓸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마저 이젠 행복하다. 오늘 쓸 글 주제가 정해지면 입가에는 미소가 생긴다. 이것이 내가 글을 쓰며 살아야 하는 이유가 아닌가 한다.
이젠 글을 쓰는 버거움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글을 쓰면서 느끼는 행복이 더 크기 때문이며, 내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정답이 없는 삶에서 해답을 찾기 위해 글을 쓰고, 오늘 느낀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글을 쓰고 또 쓸 것이다. 글을 통해 행복을 느낀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여름이 오면 시원함이 생각나 듯 내가 살아가는 동안 글은 아픔과 기쁨을 함께 해야 할 친구다. 결과는 다음 일이며 지금 이 순간을 글과 함께 즐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