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의 힘
매년 이맘때부터 9월까지 우리 마을 바닷가에는 오징어들이 몰려온다. 해안가 가까이 오징어가 오는 날은 오징어 파티가 벌어진다. 잡아온 오징어로 오징어 회를 먹기도 하고, 오징어를 넣고 해물파전, 버터구이, 오징어순대, 그리고 오징어 볶음까지. 오징어 하나로 무궁무진한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다.
저녁나절 부둣가에는 남녀노소 낚싯대를 든 사람들이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오징어가 오기를 기다린다. 오징어가 오고 안 오고는 순전히 오징어 마음이라 어떤 날은 다섯 시간을 기다려 오징어 두어 마리를 보기도 하고, 어떤 날은 바늘만 내리면 오징어가 채가는 바람에 십 분도 안돼서 양동이를 가득 채우기도 한다. 간혹 오징어가 너무 많아 해변가에 올라와 드러눕기도 하는데 그런 날은 그저 손으로 주워 양동이에 채우면 되니 아이들과 함께 가기도 좋다. 물과 먹물을 번갈아 뿜어대는 오징어들은 꼬맹이들이 손에 들고 물총놀이를 하게 만들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오징어 낚는 어른들의 흐뭇함이 해변에 가득 차게 한다.
오징어가 해안으로 몰려오는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이는 보름달이 오징어를 유인한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해 질 녘 노을이 밀물과 만날 때 먹이를 따라온다고도 한다. 하지만 오징어는 보름달이던 그믐달이던 상관없이 올라오고 어떤 날은 해 질 녘에 어떤 날은 한밤중에 올라온다. 이 오징어들이 언제 해안가로 몰리는지 알 수가 없으니, 어떤 날은 큰 기대를 하고 나갔으나 한 마리도 못 보는 경우가 있고, 어떤 날은 별 기대를 안 하고 작은 양동이를 가져갔다가 순식간에 가득 차서 일찍 돌아오기도 한다. 가장 나쁜 경우는 오징어가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집에 있는 날 친구가 전화를 하는 것이다.
"여기 지금 오징어가 올라오고 있어, 빨리 와야 해!"
나는 안다. 짐을 챙겨 가면 이미 오징어 떼가 물러난 뒤가 된다.
이쯤 되면 오징어의 출몰은 미신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어제는 좀 늦게 갔으니 오늘은 일찍 나가볼까? 빨간 루어에는 반응을 안 하니 초록색을 써볼까? (하지만 오징어는 색맹이다.)
올지 안 올지 모를 오징어 떼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봤지만 가장 확실하고도 간단한 방법은 매일 가는 것이다. 어떤 날은 전혀 오징어 얼굴을 보지 못해도, 매일 바닷가에 가다 보면 한두 번 얻어걸리는 날이 있다. 이런 날은 백 마리 던 이백 마리 던 손에 잡히는 대로 주워 가는 날이다. 이 하루의 조과가 지하실의 냉동고를 가득 채운다.
쓰고 보니 오징어 낚시는 우리의 삶을 닮았다. 매일 매일 꾸준히, 오늘이 힘들어도 그 길목에 서 있다 길이 열리는 날이 있다. 하지만 오늘 집을 나서지 않으면 우리는 그 기회를 영영 놓쳐버린다. 어떤 이는 오징어에서 주식을 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오징어에서 대박 난 유튜브를 찾기도 한다. 나는 오징어가 잡히던 잡히지 않던 매일 가는 것을 택했다. 꾸준함의 힘을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