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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나영 Jan 20. 2022

설렘이라...

풍요

30대 초반 매출이 정체되어 있던 브랜드의 마케팅을 책임지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때 프리미엄 이미지를 부가해서 내가 갖고 싶은 브랜드로 리뉴얼하기 위한 전술의 일환으로 다양한 아티스트, 전문가, 셀럽들과의 컬래버레이션을 적극 진행했었습니다. 대상은 패션 디자이너, 그래픽 아티스트, 포토그래퍼, 스포츠 선수, 배우 등 다양했죠.


그중 한 분은 50대 설치 미술가셨습니다. 브랜드 페르소나에도 맞아떨어졌고, 뉴욕 한 복판에서 아트 퍼포먼스를 보이시기도 했고, 다른 아티스트들이 잘 활용하지 않던 희귀 재료들로 작품 활동을 하시는 점에 눈길이 끌려 협업을 요청드렸었습니다.


50대셨던 작가님은 스무 살 어린 저보다도 에너지가 넘쳐 보이셨습니다. 회의 때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쏟아내셨습니다. 워낙 아이처럼 호기심도 많으셔서 대화가 끊이지 않아 즐거웠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우리는 일 년에 두어 번 얼굴 보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분과의 만남을 통해 자기 생각을 표현해 버릇해야 하는 이유부터 다른 나라 투자 시 주의할 점까지 다양한 삶의 지혜를 들을 수 있었는데요. 그중에서도 지금껏 꼭 간직하고 있는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햇살 좋은 오후에, 굳이 직접 개발한 스파게티를 해주시겠다며 초청하셔서 스튜디오로 찾아뵈었을 때입니다. 식사를 하며, 여느 때처럼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나누다가, 당신께서 꼭 하고 싶은 전시가 있어 오랫동안 준비 중이시라며 싱긋 웃으셨습니다. 주제를 들어보니, 매력적이었습니다. 준비도 거의 완료되었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내년이나 내후년이 아니라, 당신께서 환갑이 되는 해 - 그 해 기준으로 약 십여 년 후- 개인 전시회를 개최할 거라고 하시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여쭤 보았습니다.


"선생님, 준비 다 되시면 바로 선보이셔도 될 텐데, 왜 굳이 늦추세요?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으세요?" 


어려도 한참 어린 저에게 꼬박꼬박 존대를 해주시던 선생님께서는 웃으며 이렇게 말씀 주셨습니다.


"다들 그런 질문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더 완성도를 높이고 싶어서라고 얘기해요. 그런데, 솔직한 내 맘은 그게 아니랍니다. 사실 제가 좀 오랫동안 설레고 싶어서에요. 전시를 10년 후에 하면, 그동안 쭉 이런 설렘을 가질 수 있잖아요.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다가, 일 떨어지고 대외활동도 떨어질 때 즈음하려고요. 날 설레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실장님도 알죠?"

 

설렘이라...


저도 설렘이란 게 있긴 한가 떠올려 봤습니다.


저에게 새로운 도전은 성장을 위한 의무이자 책임이지 설렘이 아닌 경우가 잦았습니다. 그러니, 상을 받아도, 승진을 해도, 연봉이 올라도, 합격을 해도, 출간을 해도, 졸업을 해도 그 감사함과 뿌듯함이 크기와 지속시간 면에서 지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의무와 책임을 하는 것에 대한 대가일 뿐이니, 당연히 받아야 했던 것으로 폄훼하며 교만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천성적으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새로운 크리에이티브를 보고, 열심히 사는 분들을 만나는 걸 참 좋아하는 저에게 세상은 호기심 천국입니다. 무한 긍정이라 웃음도 많고요. 하지만 설렘이란 이와는 다른 것이잖아요. 그래서, 저도 선생님처럼 꼭 설레는 대상이나 일을 찾아보리라 맘먹었었습니다.


그런데, 바쁘다는 핑계로 또 이를 잊고 그냥 그냥 또 그냥 살아댔습니다.




설렘이라...


나를 설레게 하는 것들은 무얼까 최근 생각해보았습니다.


전 초등학교 6학년 때 운 좋게도 학교 대표 두 명 중 한 명으로 선발되어 영재교육을 받았습니다. 주관을 서울시로 기억하는데, 하도 오래된 일이라 혹시 다른 정부기관 주관일 수도 있겠습니다. '치맛바람'이란 말이 유행했고, 어머니회, 아버지회가 횡행했던 초등학교 시절, 매년 학급 임원으로 선출되었음에도 엄마는 바쁘셔서 학교에 한 번도 오시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성적만으로 절 선정해준 학교와 담임 선생님의 결정이 지금 생각해보면 참 감사하면서도 신기할 따름입니다. 초등학생 성적이 좋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비슷했을 텐데, 그런 좋은 기회가 저에게 쓰윽 주어졌습니다.


교육의 주제는 대부분 과학이었습니다. 모형 비행기도 만들고, 땜질도 해서 전구 불도 켜보고, 탄산수도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꼭 발명해보고 싶은 것들이 하나둘 생겼습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었죠.


하나. 누르지 않아도 심이 나오는 샤프

둘. 바르자마자 굳는 시멘트

셋. 각도를 틀 때 곡선으로 움직여야 하는 한계를 극복하고, 직선으로 즉시 빠르게 방향 전환이 되는 비행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행성을 연결하는 다리였습니다.



이런 것들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고, 만들어지고 있고, 만들 필요가 없는 것들입니다. 올드해진지 올드해졌죠.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 꿈꿨던 이 발명 리스트는 여전히 저에게 설렘입니다. 그래서, 이제 전 다시 설레기 위하여 얼토당토 한 발명 리스트가 아닌 황당무계한 창작 리스트를 적어봅니다. 그 리스트가 황당무계한 게 아니었다고 판명날 때까지 품어 보렵니다.




또 생각해보았습니다.

설렘이라...



4년 전인가 중고서점에서 4,000원 주고 산 <진주(The Pearl)>의 양장본 원서를 읽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내 맘 깊은 곳에서 박하사탕처럼 화해지는 정신적 포만감이 밀려왔습니다. 작가가 직접 선택한 단어와 이를 활용한 표현이 아름답고, 그가 표현하고자 의도했던 감정이 내 맘과 같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 심지어 감격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다음 장을 넘기기 전에 느끼게 되는 설렘은 내 머리와 맘이 최고급 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해 주었습니다.


<월든(Walden)>이란 작품을 읽을 때도 그러했습니다. 인생을 바쳐 사유해서 얻은 깨달음을 글로 옮긴 책들을 볼 때면 설렘이 박동 소리로 연결됩니다. 요즘에는 이곳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도 절 설레게 해 주시니, 매일 설렘이 배가되고 있습니다. 제가 쓰는 이 부족한 글과 그림이 혹시나 누군가에게 기다려지는 설렘이길 바라는 욕심도 부려 봅니다.




또 생각해보았습니다.


설렘이라...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설렘도 있더군요. 우리 딸을 놀라게 할 때의 설렘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림 그리느라 밤 10시나 되어 녹초가 되어 들어오는 딸아이에게 큰 웃음을 주는 즉효약입니다. 현관에 들어오고 있다는 걸 알면, 몰래 숨어있다가 날 찾는 딸아이를 놀라게 하는 거죠.. 그럼 제 딸은 여지없이 빵 터집니다. 어떻게 매번 그렇게 재밌어하고, 그렇게 좋아하는지.


딸아이가 "엄마! 엄마!" 부르며 날 찾아다닐 때, 전 무지 설렙니다. 매번 똑같은 반응이 또 궁금해서 또 두근두근 댑니다. 그래서 오늘도 숨어봅니다.




또 떠올려 보았습니다.


설렘이라...


10년 후 내 모습을 상상하는 순간이었습니다. 20대 후반, 한 리더십 교육과정에서 10년 후 자기 모습을 그려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전 수천 명의 사람 앞에서 제 브랜드를 론치 하고 제 전문 영역을 영어로 강연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당시 제가 희망하는 공적 이미지를 그린 것이지요. 그게 뭐라고,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습니다.


이런 저의 딸은 초 6학년 때 카네기 리더십 교육을 받으며, 30년 후 자신의 모습을 그려서 저에게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요. 가족과 해변가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대단하죠. 당시 "딸은 왜 나와 다를까."라고 무척이나 궁금했었는데, 저보다 철이 더 들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바빴을 때 두 분의 할머니께서 사랑으로 잘 돌봐주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젠 저도 딸아이와 똑같은 꿈을 꿉니다. 찬란한 햇살 아래, 해변에서 가족과 지인들과 신나게 노는 모습입니다.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오래전에 사서 늘어나고 헌 싸구려 흰 티와 청바지를 입었지만, 운동해서 탄탄한 근육을 갖고 있으며,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비싼 액세서리도 두르지 않았지만, 최고의 치장인 환한 웃음에 못생김이 가려지는 내가 과연 되어 있을까 아닐까 상상하면 전 설레어집니다.




욕심쟁이가 되어버렸는지, 예전엔 설레는 게 그렇게 없더니, 지금은 이 외에도 나열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그중 가장 저를 설레게 하는 한 가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사무엘 베게트의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의 주인공 블라디미르 에스트라공은 매일 고도(Godot)를 기다립니다. 그는 고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기다립니다. 매일같이 '오늘 오겠지'라고 기대하지만, 매일같이 '오늘 못 온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됩니다. 그래도, 또다시 기대합니다. 그렇게 계속 기다리지만, 결국 끝까지 만나지 못하고 이야기가 끝나버립니다.


평론가들은 그 주인공이 우린 인간의 모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고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결론짓는 분들이 많습니다. 혹자는 고도가 'God'란 단어에 'ot'를 붙인 이름이라고도 주장합니다. 작가 자신은 스스로 고도를 모르니, 묘사하지 않았다고 해설하는 글을 읽었던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전 고도가 있다고 믿으려 합니다. 고도가 없다고 가정해버리면, 우리는 매일 설렘 속에 살아갈 수 있을까요. 고도란 존재가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놓지 않고, 늘 깨어서 기다려 볼까 합니다.


 



여러분의 설렘은 무엇인가요?


설렘은 풍요입니다. 설렘 없는 풍요가 과연 있을 수 있나 생각해보니 'Yes'란 답이 나오지 않더군요.


우리는 돈이나 권력이나 세상의 인정이 없으면 풍요롭지 않아 예전의 설렘이 없어지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있는데도 우리가 풍요롭지 않다고 느끼는 이유 또한 혹시 설렘이 없어졌기 때문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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