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분들이라면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때로는 고향친구보다 직장친구와의 대화가 더 잘통한다는 것을.
이번 명절을 맞이하여, 고등학교 졸업후 타지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 고향으로 내려왔다. 내 친구들의 경우, 아직 가정을 꾸리지 않아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 항상 술집에서 모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20대 초, 친구들 간 이야깃거리는 대체로 비슷했다. 대학교, 연애, 군대 등이 주요 주제였다. 그 시절에는 서로 비슷한 상황인지라 공감대 형성이 쉬웠다. 소주 한병만 테이블 위에 있다면, 시간이 가는줄 모르고 웃고 떠들어댈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20대 중후반이 되면서 공감대 형성하는 것이 점점 어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각자의 가치관과 현실이라는 도구들에 맞추어, 미래를 그리는 스케치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친구는 워킹홀리데이를 위해 호주행 비행기 티켓을, 어떤 친구는 공무원 시험 합격을 기원하며 노량진행 버스 티켓을 구매했다. 어떤 친구는 대학원 진학을 위해 원서를, 어떤 친구는 취직을 위한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서로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사실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그 상황을 진심으로 공감하고 이해하기에는 우리들의 경험이 풍만하지 못했다. 괜히 본인의 가치관을 상대방의 상황에 대입했다가는 서로에게 오해의 불씨를 남겨줄 수 있기때문에 말을 아끼기 시작한 것이다.
30대가 들어서면서, 서로 간 인생의 방향과 속도에 점차 간격이 벌어졌다. 결혼한 친구, 직장에서 승승장구 하는 친구, 직장이 본인과 안맞아 이직을 준비하는 친구, 취직을 못하고 방황하는 친구, 이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찾는 것은 여간 쉬운게 아니다. 서로의 상황에 대한 사실적인 내용만 주고받을 뿐, 이에 대한 서로의 피드백을 주고 받기에는 부담감이 컸다. 서로가 조심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그러자 명절때 점점 얼굴을 드러내는 친구들이 하나둘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렵게 얼굴을 내밀었다해도, 깊은 얘기를 나누기는 힘들고, 그저 옛시절 추억만 회상하고 웃고 떠드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렇게 떠들다 헤어지고 집에 돌아가는길에는 공허감이 내 마음을 돌고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는 반면, 직장에서 사귀게된 친구들과의 교집합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비록 고향친구와 비교해서 알고 지낸지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지만, 직종에 대해서 서로의 고충을 공감해주기 쉽고, 벌이도 비슷하니 각자의 투자 전략과 정보에 대해서도 공유했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연애도 하고, 결혼 준비도 했으며, 퇴근 시간도 비슷하니 취미를 함께 즐기기도 했다. 그러면서 서로가 만나 이야기를 하는 빈도와 시간이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되었다.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 같다. 본인이 속한 환경에 따라 만나는 사람이 달라지는 것이다. 직장 친구들 사이에는 서로에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크기 때문에 서로에게 자석처럼 이끌려지는 것이다.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직장친구와의 대화가 더 재밌어진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사실, 이는 당연한 현상이긴 하다. 하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는 고향친구에 대한 정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버티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고향친구와의 끈을 놓치기 싫다. 고향 친구들에게 어떤 이익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어린시절 같은 추억을 공유하는 사진첩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향 친구들을 만나면 부담감이 없다. 그래서 그들과 만나면 어린시절 순수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던 추억을 회상하며 웃음을 만끽할 수 있고,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서로에게 또 다른 인사이트를 줄 수 있다. 점점 서로의 교집합이 줄이들기는 하겠지만, 각자의 영역에 대한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풀어놓는다면, 오히려 직장친구들보다 얻는게 더 많을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고향친구든 직장친구든 모두 다 친구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추억이 있거나, 이익이 되는 것을 떠나서 이들 모두다 내 삶, 인간관계를 구성하는 하나하나의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겠다. 중요한 것은 그 소중한 존재 한명 한명을 만날때마다 온전히 내 마음을 기울여 최대한 그에게 집중하려는 자세다. 이전 글에도 언급했지만 그래야만이 내 삶이 더욱 풍만해질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