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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문 Nov 02. 2021

체면이 밥 먹여줄까요?

남을 대하는 도리 : Shall I feed you dignity?

빚을 내서라도 공을 치러간다는 계절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오래간만에 지인들과 K 컨트리클럽을 다녀왔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라운딩 중에 캐디피를 걷기 위한 명분으로 게임을 합니다. 오늘은 '조폭' 게임입니다. 18홀 라운딩 중에 마지막 3홀을 남기고 당홀에서 제일 타수를 적게 낸 사람이 게임머니를 독식하는 살벌한 게임입니다. 그전 홀에 샷을 망쳤다 해도 결국 마지막 3홀만 타수가 좋다면 돈을 버는 방식입니다. 이 게임 방식은 여간 친분이 있는 사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게임입니다. 마지막 홀을 마치고 누군가는 열심히 잘 쳤는데도 불구하고 마지막 홀에 실수를 해서 그만 돈을 전부 잃게 될 수도 있는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전반전에 돈을 엄청 잃고 있던 A 씨는 마지막 티샷이 엄청 잘 맞아서 후반전에 돈을 전부 회수하였습니다. 전반홀에 이기고 있던 B 씨는 마지막 퍼팅 실수로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을 전부 잃었습니다.


A 씨 : 미안하게 되었네요. 돈을 내가 많이 땄으니 제가 저녁밥을 사겠습니다.

B 씨 : (기분은 상했지만) 네. 그 돈이 제 돈이었던 건 알고 있죠? 감사합니다. ㅠㅠ


이렇게 의기양양해진 A 씨는 온갖 생색을 다 내며 동태전골 집을 데려갔습니다. 맛있게 식사를 마친 후 밥값을 계산해야 하는 시점에 묘한 상황이 연출이 되었습니다. C 씨가 갑자기 지갑을 열어 밥값을 계산하겠다고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C 씨는 아주 오랜만에 만나 같이 라운딩을 하게 되었고 제일 나이가 많으신 분입니다.


C 씨 : 자. 그럼 밥은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하하.

B 씨 : 아이고 왜 이러십니까.. 돈을 딴 A 씨가 계산하기로 했는데..

A 씨 : 그래요.. 제가 밥을 사기로 했는데..


A 씨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리에 계속 앉아 있습니다. 계산을 먼저 하려고 일어선 C 씨는 약간 머뭇거렸지만 계산대로 발을 옮기며 계산서를 챙겼습니다.


C 씨 : 에이. 이거 밥값 얼마 나오지도 않았는데.. 아무나 내면 되지 뭘 그래요.. 하하..

A 씨 : 허허 참. 내가 밥값을 내야 하는 건데.. 암튼. 잘 먹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못마땅하게 지켜보던 B 씨는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자 안 되겠다 싶었는지 한마디 쏘아붙였습니다.  "누구는 돈도 벌고 밥도 공짜로 먹고. 아주 부자 돼서 좋겠네요" 하며 대놓고 감정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런데도 아랑곳없이 A 씨는 마지막 남은 후식까지 다 챙겨 드신 후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자료 : 순풍산부인과 SBS



골프 동호회에 A 씨는 소문난 재력가입니다. 매년 매출이 평균 이상을 하고 부동산 보유도 많이 하고 있어서 여유가 넘치는 분입니다. 그런데 오늘 처음 저녁식사를 같이 하면서 지켜보니 소문처럼 지갑을 여는 일에 무척이나 인색했습니다. B 씨는 이런 상황이 처음은 아니었는지 나에게 귓속말로 속삭였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뭐하냐고. 돈이란 쓰는 만큼만 가지고 있는 거야"

"죽어서 가지고 갈 수도 없는 돈. 왜 그리 아끼는 건지 모르겠어"


'체면'이 밥을 먹여 준 건가요?



자료 : 순풍산부인과 SBS





최근에 스피드를 가해 나름대로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열심히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내 글을 항상 읽어주고 피드백과 서평을 해주는 '로운' 선배님은 내 글이 장문으로 늘어지거나, 중복된 뜻을 가진 단어들이 섞여있어 구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 종종 있다고 합니다. 건축에 관한 칼럼이 많다 보니 전문용어는 그렇다 치고서라도 한글 표현이 가능한 단어도 한자를 인용하고, 교과서에 수록될 듯한 부사어들이 많아 자칫 지루하거나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는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로운작가'의 글은 읽기가 편합니다. 삶의 이야기, 쿡킹에 대한 이야기, 육아에 대한 이야기 등은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편안한 주제입니다. 필력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 국어 문법을 제대로 배우지 않아서 그런가 보지.'라며 으름장에 가까운 넋두리를 했지만 잘 읽히는 글쓰기에 자신감이 떨어져 그런 듯합니다.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다 보니 일단 쓰고 보는 글 버릇이 있습니다. 제발 한 문장을 길게 늘여 쓰지 말고 단문으로 쓰라고 조언하지만, 쓰고 싶은 말은 많고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생각한 내용을 잊을까 싶어 일단 쓰고 봅니다. 로운*은 '라테'스럽고 '꼰대'스러운 한자어나 어르신들이 사용할 법한 어휘를 줄이라고 하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치. 언제는 쓰고 싶은데도 마음대로 써보라고 하고선..."

"그렇지... 어렵게 쓰니까 글도 재미없어지고 이해가 안 되지."


글쓰기에 멋을 내지 말고 담백하게 쓰라고 아내는 말합니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려니, 멋있고 지식 있어 보이는, 적절한 전문용어도 써 가며 글을 써야 할 것 같은 편견을 깨야 할 것 같습니다. 읽기 쉬운 글이라고 그 글이 가벼운 글이 되는 것이 절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로운*의 말을 들으면서도 쉽게 공감이 되지 않습니다. 글이 너무 가벼워서도 안된다는 생각이 드니, '글 쓰는 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최근 자주 듭니다.




"글쓰기 문법을 배워야 해요?"

글쓰기에 욕심이 생기면서 제대로 한번 써 보고 싶은 승부욕이 생겼습니다. 건축 관련 신문사에서 칼럼을 정기적으로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고민이 더 많아졌습니다. 부담 없이 편안하게 쓰기 시작한 글쓰기가 신문 칼럼으로 연재되는 글을 쓰게 된다니 부담이 백배입니다. 편하고 이야기하듯이 글을 써야 자연스럽게 읽히는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체면'을 앞세운 인생살이가 쉽지는 않습니다.




이미지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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