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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해 Apr 23. 2024

시각장애인과 밥 먹는 사이


시각장애인이 된 남자 친구를 가족으로 만들어 버린 동생이 B를 가족으로 들여놓기 위한 행보가 시작되었다.


첫 순서는 추석날 밥 먹기 프로젝트이다.  

인근에 있는 한식 고깃집을 잡아놓고 우리 가족을  초대했다.

12살 우리 집 막내가 허옇게 된 공을  보면 놀랠 것이라며, 우리 두 부부만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이미 우리는 캐나다에서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살아서 문제없다고 거듭 말했다.


남들이 보기에 무서울까 봐 까만 안경을 쓰고 다닌다는 B의 모습이 과연 어느 정도이길래 저렇게 엄살인 건가 정말 나도 놀래서 자꾸 그의 눈동자만 바라보면 어쩌지 걱정도 되긴 했다.

그간 맘고생을 했는지 뾰쪽해진 동생과 누군지 기억도 안 날 만큼 세련된 B와 고깃집 앞에서 재회를 했다.




가까이서 자세히 시각장애인인 B의 얼굴을 본 것은 처음이다.

그런데 너무나 친근한 그의 얼굴에 그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것도 잊었다.

안경은 너무 까맣지도 않고  눈 시릴 때 쓰는 그런 선글라스일 뿐이었다.

그래도 젊은 동생이라 안경이 세련된 걸 해줬네 기특했을 정도.

다정한 부부처럼 팔짱을 낀 채로 엘리베이터를 향해가는 두 인을 보니 어찌 그리 생소한지.


엘리베이터에 타자 B는 익숙한 듯이 쓰윽 버튼 쪽을 손등으로 훑었고, 5층을 눌렀다.

아니.. 이런 신공이~ 얼마나 많이 와본 음식점일까?

우리를 대접하기 위해 사전 답사를 한 것인가?

원래 엘리베이터에 5층 버튼은 저 위치일까?

수많은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5층에 도착했다.


고기 맛도 모른 채 우리는 시각장애인과 도우미가 밥 먹는 상황에 대하여 관찰 기록을 할 기세로 뚫어져라보고 있었다. 차려놓은 샐러드, 생선요리, 반찬, 소고기를 원 없이 먹고 냉면인지 된장인지를 고를 타이밍이었다. 후식을 먹을 상황이지만, 조용한 조카가 사뭇 신경 쓰였는지 자꾸 고기를 더 먹으라고만 재촉했다


식사를 하는 내내 보조하느라 동생이 잘 먹지 못하는 것에 신경이 쓰였다.

B가 먹을 만한 음식들을 접시에 놓으며, 여기 고기 세 점 있어, 된장국 오른쪽이야. 물 채웠어, 동치무 국물은 밥 앞에 있어. 라며 연신 귀띔을 해줬다. 기억을 하기 좋으라고 그런 건지 5가지 정도만 앞에 간추려 놓았다.

더듬더듬 밥그릇인지 국그릇인지 숟가락 젓가락으로 가늠하는 B의 모습은 매우 신중했다.


시각장애인이 이렇게 밥을 먹는구나 처음 알았다.

나도 B에게 밥을 준다면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 하며 명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잊지 않고 잘할 자신도 생겼다. 왠지 모르겠지만 동생이 자기 없으면..이라고 했던 얼마 전 그 말이 나에게는 유언 같아서 말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동생이 본인이 결제하겠다고 한사코 데스크에서 비키지 않는다.

그래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의식이라고 생각하자 했다.

많이 왔던 곳이라 그런지 쿠폰인지 외상장부인지 알뜰한 할인 프로그램인지 모르겠지만 몇 분이 지체되었고, 우리는 오던 길과 반대로 다시 내려갔다.

B군이 손등으로 훑어준 엘리베이터를 통해 1층에 안착했다.


동생네 집에서 차 한잔 하자고 한다. 우리 동생네 집에 처음으로 가봤다.

깔끔하게 청소된 집에 아늑한 곳.

그들에게만은 너무나 익숙한 공간.

눈이 안 보인다고 해서 이렇게 조용할 필요까지 있을까 싶었지만, 둘의 그렇게 조용하게 살았던 모양이다.


형부와 언니, 조카에게 보여준 그 집은 주인의 갑질 덕분에 곧 나가기로 되어있던 집이다.

온갖 갑질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웃고, 떠들며 두 어시간을 그 집에서 보냈다.


B군과의 대화는 너무 유쾌했다. 정신적으로 불안한 내 동생에게는 과분한 남자라는 생각을 내내 했다.

밥 먹는 사이를 "식구"라고 했잖는가.

우리는 이제 밥을 먹어 식구가 되었고 고작 한 끼지만 그냥 나는 B가 마음에 들었다.  

남편도 B하고 말을 나누며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커피면 커피, 부동산이면 부동산, 공적인 사적인 이야기 모두 척척 받아치는 B는 정말 됨됨이가 된 사람, 머리 든 사람이다.


본인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모든 기사를 읽고, 관련 자료도 찾으면서 회사에 6시 반에 출근해서  남들이 출근하는 아침 9시가 될 때까지 화면에 있는 글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돌려서 미리 듣는다 했다.  B는 하루 12시간을 근무하고 있었다.

남들보다 일을 덜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 싫어서 말이다. 


하루 8시간을 분, 초까지 재어 가며 퇴근 시간에 맞춰 가방을 가슴팍에 품고 달려 나가는 졸렬한 직장인인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B군과 여동생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것에 대해 감사할 있었다.


눈물 나게 고마운 감사는 아니지만, 그들을 미워하지 않을 감사라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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