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va B Nov 08. 2024

모래로 만들어진 세상(3) - 유리

유리는 너무 흔해서 그 중요성을 깨닫기 힘들지만, 모래로 만들어진 재료 중 콘크리트와 비견될 만큼 중요한 물질이다. 매일 아침 세상을 똑바로 보기 위해 안경을 쓴다. 유리창 밖을 보며 날씨를 확인하고 텔레비전과 핸드폰 액정을 통해 뉴스를 본다. 유리잔에 물을 따라 밤새 마른 목을 축이고 출근길에 만난 길고양이를 카메라 렌즈로 찍는다.


일상 곳곳에 녹아있는 유리는 주로 모래를 녹여서 만들어진다. 일반적인 콘크리트 모래보다 더욱 세심하게 선별한 산업용 모래나 실리카 모래 계열을 사용한다. 일반적인 유리창의 경우 실리카가 70%정도의 비율을 차지한다. 실리카 모래는 섭씨 1600도 이상의 고온에서 녹는데, 소다(탄산나트륨)를 섞어주면 녹는점이 크게 낮아진다. 여기에 칼슙을 부스러기 형태로 더해주고 녹인 뒤 식히면 가장 기본적인 유리가 탄생한다.



과거 유리공들은 귀중한 대접을 받았다. 1291년 베네치아 소속 유리 장인들은 모두 무라노 섬에 가야 했다. 경쟁 국가에 유리 제조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들은 알프스 산맥으로부터 밀라노로 흐르는 티치노 강에서 순도 높은 모래를 가져와 식기류와 장신구를 만들었다. 비록 유리 장인들은 그 섬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귀족처럼 대접받았다.


유리는 음식을 담는데도 완벽한 재료다. 수분이 스며들지 않고, 용기에 담긴 음식물과 화학반응을 하지도 않는다. 녹슬지도 않고 환경 호르몬을 배출하지도 않으며, 플라스틱 맛이 나지도 않는다. 19세기 후반 유리 공장에서는 견고한 석영 모래를 녹이기 위해 엄청난 열이 필요했다. 석탄을 녹여서 고열을 얻어야 했는데 공장 안의 온도는 섭씨 38도를 넘기기도 했다. 새벽 5시부터 10시간씩 일주일에 6번 출근하며 노동자들은 날마다 재와 검댕이를 뒤집어 써야만 했다. 노동자 중에는 어린 아이도 많았다.


미국의 유리 용기 제조회사인 오언스 일리노이의 창업자 오언스도 어린 시절 유리 공장에서 일했다. 가난했던 소년공 오언스는 훗날 유리병 제조기계를 만들었다. 사람보다 6배 빠르게 유리병을 만들어내며 생산량이 증가하고 고임금 유리공 인력이 감축되었다. 기계가 발명된 뒤 유리병 제작 원가는 1.8달러에서 12센트로 급감했으며, 미국에서 생산되는 실리카 모래 양이 전년도 대비 4배(110만톤 -> 440만톤)로 뛰었다. 1903년 발명된 기계는 1911년이 되면 미국, 유럽의 9개국, 일본에 총 103대가 배치되었다. 1917년에는 고숙련 유리공의 숫자가 절반으로 줄었다. 유리공 협회가 기계를 들이지말자고 반대하고 몇 대를 파괴하기도 했지만,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생산량을 높이고 시장 규모를 키워나갔다.


유리병이 대중화되자 음료수와 맥주, 케쳡, 땅콩버터를 파는 제조업체들의 실적이 올랐다. 초창기 코카콜라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유리병 제조기술이 크게 향상되어 제품의 품질과 제작 효율이 증대된 것이 판매량 증가의 중대한 요인이었다고 밝혔다. 1900년대 초 맥주를 집에 가져오려면 집에서 직접 양동이를 가져와야 했다. 이렇게 거리에서 들고 다니는 맥주는 당시 하층민이 마시는 술 취급을 받았다. 1930년대 맥주 양조업자들이 이러한 이미지를 쇄신하고자 깨끗한 유리병에 맥주를 담아 팔기 시작하기도 했다.


유리병 제조기계는 유리 공장에서 일하는 아동 노동을 근절하는 역할도 하게 되었다. 아동들이 맡았던 위험한 반복 작업은 기계가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1880년 전체 유리공의 약 25%가 아동이었지만, 1919년에는 2%가 채 되지 않았다. 1913년 미국 아동노동 위원회는 자신들이 추진해온 입법 활동보다 오언스의 유리병 기계가 아동 노동 근절에 더 큰 공헌을 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유리는 망원경과 현미경으로 별부터 미생물까지 그동안 인간의 눈으로 보이지 않던 세계를 확장했다. 심지어 이보다 단순한 안경조차 인간 지식의 역사에서 큰 역할을 했다. 14세기 무렵부터 유럽의 지식계가 급부상하는데 안경의 발명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본다. 안경이 발명되며 지식 노동자들의 활동 기간이 약 15년 이상 증가했고, 섬세한 작업을 해야 하는 장인들의 활동 기간 역시 늘었다. 15세기 인쇄술의 발명으로 책이 보편적으로 보급되자, 나이가 들어서도 독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초고층건물의 외장재로 사용하며 도시를 이루고 광학섬유를 통해 빛의 속도로 정보를 전달했다. 역사가 앨런 맥팔레인과 게리 마틴은 이렇게 말했다.


"유리가 없었다면 사진도 영화도 텔레비전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의 세계에 대한 이해도, 항생제의 개발이나 DNA의 발견에서 비롯된 분자생물학의 혁명도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조차 증명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