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렁뚱땅 감상문1
멜라니 로랑 감독의 영화 <Voleuses>(2023) 얼렁뚱땅 감상문1
경험가기 전에는 알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 내가 이런 걸 좋아한다는 걸 해보고서야 아는 것인데 민트초콜릿이 그랬고, 헤드폰이 그랬다. 물론 겪어보고 나서 없던 편견이 생긴 것들도 있지만 좋았던 것을 생각하자면 그렇다. 내 취미는 넷플릭스 구경하기인데 일차적으로 원하는 건 콘텐츠 감상하기이지만 고르는 데에만 오래 걸려 결국 나는 그냥 콘텐츠 제목들만 실컷 본 사람이 된다. 그래서 구경이 취미가 되었다. 오랜만에 이를 즐겨볼까 하여 들어갔더니 아델 씨가 새로운 영화를 찍었다는 것이다.
<Voleuses>, 곧 도둑들이라는 정직한 제목으로 반가운 얼굴들이 나오는 작품이다. 물론 들어가자마자 흥미로운 콘텐츠를 본 건 알고리즘 때문이겠지. 똑똑한 알고리즘이다. 그러고 보니 이 글은 영화를 보고 좋아서 쓴 감상문인데 스포를 해도 되는 것일까. 그렇게 부주의해도 되는 것일까. 하지만 스포를 하지 않고 그 좋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세상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나눌까. 조심스럽게 나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알고 싶다. 최대한 스포를 덜 하며 그래야할 텐데. 이 글을 적는 건 어디선가 이 영화를 보고 비슷한 부분에서 웃음이 터지고 비슷한 대목에서 감동을 받은 당신을 위해서다. 당신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랍니다, 하는 식의 주접이랄까.
보시지 않았다면 추천드린다. 불편한 것 없이 편히 볼 수 있는 작품이니까. 그렇다. 영업하는 것이다. 이런 작품이 많아야 세상이 더 살기 좋아질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기대하시면 안된다. 취향은 다양하고 나는 재밌게 본 거라 영업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연성이 호불호의 크나큰 기준이기 때문에 스타일이 아니실 수도. 하지만 보셨으면 좋겠다. 봐서 나쁠 게 뭐가 있겠어요. 한 번 트라이트라이.
그럴 수도 있다. 명작이라 불려서 나도 보게 된 케이스. 그렇게 해서 역시 클래식은 클래식이라고 인정하게 된 작품이 많다. 하지만 작품을 보다가 불편한 구석을 발견하면 나만 그렇게 느끼나 싶을 때가 있다. 이전에 최고 중 하나라 일컬어지는 작품을 그 기회에 나도 재미있게 잘 보았지만, 시대상 그랬다고 하더라도 인종차별적이고 혐오적인 그런, 거슬리는 부분이 있어 나만 그런가 싶었던 때가 있었다. 나만 불편한가, 스토리와 음악 자체도 뛰어난데 굳이 그 부분에서 그랬어야 했었을까, 그것이 시대가 주는 한계인가, 스스로를 이해시키면서 손으로는 인터넷 검색을 미친듯이 했다. 칭찬만 가득했던 정보의 바다에서 결국 나는 나와 같은 부분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을 발견했다. 그 시점에서 딱 10년 전의 댓글이었는데 그분은 내가 그분 덕분에 편히 잠들었다는 것을 아실까. 선생님 고마웠습니다. 당신의 한 줄 글이 내 불편한 마음을 가라앉게 했어요. 이건 좀 더 특별한 경우였다. 대부분은 작품의 이런 부분이 좋아 같이 그 기쁨을 나누고 싶어 찾아보는 때가 많았다. 우연히 나와 비슷한 소감을 가진 걸 발견하면 너무 기쁘다. 이게 바로 기술의 발전의 힘! 하며 감탄하다가도 부작용에 낙담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오랜만에 새로 본 영화가 마음에 들어 얼렁뚱땅 감상을 적는다.
우선 미감이 뛰어나다. 화면에 담긴 장면들이 아름답다. 신경써서 아름다움을 담은 게 보인다. 불필요하게 징그러운 부분이 없으며. 불필요하게 사람의 옷을 벗기지도 않았다. 굳이 불필요한 장면들을 넣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그런 게 없다. 물론 사람들이 꽤 죽긴 하는데 자극적인 미디어에 익숙해진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도 좀비영화를 볼 수 있다. 우리는 훈련이 되어있다. 우리는 강하다.
작품의 주인공은 세 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우정과도 같은 사랑이 보기 좋다. 사랑과도 같은 우정이라고 해도 되겠다. 하는 일은 잔인하고 터프하지만 동료이자 친구로서 서로에게 보이는 관심과 언행이 부드러워 좋다. 그런 따뜻함이 느끼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뭐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은가. 작은 변화에도 세심하게 반응하고 계속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안위를 잘 살피는 것 그런 거 말이다. 코미디답게 알면서도 웃게 되는 부분들이 재밌다. 중간에 아델 씨의 영화를 오마주한 듯한 부분이 있어 반갑기도 했다. 그들은 프로이지만 계획한 대로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인물들은 우당탕탕 헤맨다. 그러다가 목숨이 걸린 문제에서 의외로 잘 풀리는 이상한 일을 목도할 수 있다.
내가 마음을 열게 된 결정적인 부분이 바로 결말인데 감독과 제작진의 재량이 돋보인 대목이다. 이는 영화의 여정을 잘 따라와준 관객을 위한 결말이다. 나는 새드엔딩을 견딜 수 없는 몸이다. 현실이 각박한데 가상의 상황에서마저 슬퍼야 한단 말인가. 내가 제작진이 된다면 등장인물들이 그딴식으로 죽을 일이 없을 것이다. 아끼던 캐릭터들이 허망하게 사라진 걸 겪어본 분들은 아실 거다. 몰입을 하게 된 이상 그 캐릭터들은 이미 나의 가족이다. 나는 내 가족이 개죽음을 당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 로또를 사지 않지만 로또가 된다면 죽임당한 캐릭터들을 되살릴 것이다. 그러려면 열 번은 당첨되어야겠지... 그런 나의 성향을 이해한다는 듯 영화는 아름답게 마무리를 한다. 그 과정에서 개연성은 각자의 믿음따라 부여가 될 것이다. 나는 이미 결말에서 모든 걸 이해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떠한 말을 하고 포옹을 한 장면이 좋았다. 비어있는 시간을 관객이 만들 수 있도록 소설적 장치를 심어주어서. 감독의 재치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런 영화가 많았으면 좋겠다. 가벼우면서도 무게가 있는, 사람들이 멋있고 귀엽고 재치있는, 늘 위험한 일이 있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괜찮게 풀리는 그런 영화. 삶은 영화와 소설보다 더 개연성 없을 때가 많으니까.
p.s.
거의 2년만에 벅차는 마음으로 브런치에 다시 오게 한 작품에 치얼스. 읽어준 분들께도 무한한 치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