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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레 Mar 10. 2022

장면 둘, 다가가는 뒷모습

자신에게 나아가는 

노란 조명으로 물든 카페였다. 구석 자리에 앉아 있는 그녀가 보였다. 나는 소파에 앉자마자 말했다. “정말 그만두는 거예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이라도 빨리 그만두는 게 나을 것 같아, 너한텐 좀 미안하네.” 울 것 같기도, 안도하는 표정 같기도 했다. 우리는 카페를 나섰고, 길을 걸었다. “아쉬워요.” 내 말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돌아섰다. 나는 빌딩 사이로 들어갔고, 그녀는 빌딩 숲을 빠져나갔다. 뒤를 돌아 뒷모습을 보았다. 홀가분하기도 하고,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비가 올 것 같은 흐린 날, 그녀는 회색빛으로 물든 거리를 빠져나갔다.




작년에는 엘리베이터에서, 올해는 카페에서 알 수 없는 표정을 마주한 일이 있었다. 일터를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을 많이 보았던 계절과 한 해. 누군가의 뒷모습을 떠올린다. 그 뒷모습이 어쩐지 쓸쓸해 보여서 빤히 바라본 적이 있었다. 한편으로 그녀가 부러웠다. 그만둔다는 건 늘 패배자가 되는 거라 느꼈다. 그 마음이 항상 나를 옥죈다는 걸 몰랐다.


나 또한 그녀의 모습이 된 적이 있었다. 뒷모습을 떠올리며, 떠나던 마음을 그려본다. 시원하기도 섭섭하기도. 수채화 같은 마음이었다. 눈물 몇 방울에 번져가던 모습들. 지워질 듯 지워지지 않는 말들과 얼굴들이 있었다. 붙잡을 수 없는 마음이 둥둥 떠다녔다. 고생했다, 잘했다, 앞으로 더 나아가기를. 막연한 말들을 주고받았다.

     

사실은 떠나는 모습이 아니라, 자신에게 다가가는 모습이라는 걸 몰랐다. 내가 보는 방향만이 시작점은 아닐 테니까.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 일찍이 알았더라면 아쉽다는 말 대신, 힘차게 팍팍 응원해 주었을 텐데.

      

오랜만에 받은 답장에서, 어디서든 잘 살면 된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 맞아. 어디서든 잘 살면 지. 그 말을 곱씹었다. 말의 단단함이, 상대의 단단한 믿음이 든든하게 다가왔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다짐하듯 내뱉어 본다. 어디서든, 나답게, 오늘도,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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