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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레 Mar 21. 2022

장면 셋, 원스텝 차차차

아무렇게 춤추고 부르는  

핫핑크 바지 아주머니의 등장. 경쾌한 발걸음에 펄럭이는 핑크바지. 나도 모르게 따라 흥얼거리며 따라 걷는다. 지루했던 퇴근길이 하마터면 무대가 될 뻔했다.




오늘은 좀 걸어야겠다 싶어 역에서부터 집까지 걸었다. 역에서 카드를 찍자마자, 그냥 타고 갈 걸 그랬나, 하는 마음이 튀어나왔다. 아니지 아니지, 걸어서 15분 정도면 괜찮잖아. 걸어가는 길이 어쩐지 더디게만 느껴졌다. 신호등을 기다리면서도 빨간 불빛이 파란색으로 변하기를 간절하게 기다렸다. 띵-. 초록색 불이다. 뇌 속에 알람이 켜지는 듯, 발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옆 사람이 빠르게 걸으니 덩달아 내 발걸음이 빨라진다는 것을 알아챘다. 제 속도로 걸어보자 의식하며 걸었다.


불쑥-. 핫핑크 바지를 입은 아주머니가 내 앞을 빠르게 지나갔다. 헐렁한 스웨이드 재질의 핫핑크 바지의 경쾌한 펄럭임이었다. 가벼우면서도 재치 있는 발걸음. 원 투 차차차. 쓰리 포 차차차. 무미건조한 일상에 불시착처럼 날아든 그녀의 스텝. 나도 몰래 시선을 빼앗겼고, 따라 해 보려다 고꾸라질 뻔했다. 핫핑크 바지도 뿐 아니라 오렌지 장갑을 낀 손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두 손을 앞뒤로 흔들흔들. 오렌지빛이 몸의 흐름을 지휘하는 게 분명했다.

 

나는 그녀와 걷는 방향이 같아 동행을 하게 됐다. 보도블록 중앙에는 나무들이 심겨 있었는데 그녀는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걸어가는 것을 택했다. 차차차에 이어진 다음 무대는 S자로 걷기. 스키를 타듯 땅을 타며 걷는다. 나무들을 요리조리 지나가면 된다. 오른쪽으로 크게 돌고, 다시 왼쪽으로 돌고. 오! 매일 걷던 곳이 새롭고 어질어질, 어지럽게 보였다.


다시 곧게 걷자니 지루했다. 다시 S자로 걸었다. 이대로라면 목적지에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늘은 선명하게 푸르렀고, 가로등마다 가는 길을 비췄다. 그 아래서 신나게 걸었다. 도로에 차들도 쌩쌩 달리며 힘차게 지나갔다. 단지 이 발걸음에도 자유가 있었다. 살면서 추고 싶으면 자유롭게 춤추고, 노래도 부르고 싶으면 아무렇게나 불러야지. 휴대폰을 꺼내 볼륨을 높였다. 무슨 노래가 나올지 모르지만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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